30대 초반에 결혼해서 첫째를 낳고, 2년 뒤에 둘째를 낳고, 이제 육아에서 벗어나 뭔가 해보고자 마음먹었을 때 막내가 생겨 또 새롭게 육아를 하기까지의 십몇 년은 정말 순식간에 휘리릭 지나가 버린 것 같다. 그 이후엔재취업을 하고, 내 꿈을 찾겠다고 뛰어다니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결혼기념일이 열아홉 번 지나는 동안 인생의 황금기 3,40대가 다 지나가 버렸다. 후회는 없지만 아쉬움은 많다. 그래도 우리 부부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전보다 더 끈끈하고 아이들이 모두 밝고 건강하니 그리 잘못산 거 같지는 않다.
전날 밤새 비가 내리더니 오전에 그치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남편은 회사에 휴가를 내고, 아침 일찍 건강검진을 받았다. 수면내시경 후에는 운전을 하지 말라고 하니 멀리 가지 말고 동네에서 점심을 먹자고 했다. 집 근처 사거리 건물 8층에 뷰가 좋아 보이는 이탈리안 식당이 있는데, 몇 년째 한 번 가보고 싶다고 벼르기만 했던 곳이다.
식당에서 바라본 풍경
"와, 아무도 없네. 자기가 통째로 빌렸구나!"
정말 우리가 빌린 것처럼, 식사를 마치고 갈 때까지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우리는 창가에 나란히 앉았다. 앞쪽으로 높은 건물이 별로 없어서 우리 동네가 한눈에 보이고 멀리 북한산도 보일 정도로 탁 트여 가슴이 후련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음식이 훨씬 맛있었고, 가격까지 비싸지 않아서 좋았다. 번화가에 우리가 가끔 가는 조용한 일본식 주점이 있는데 거기를 1번, 여기를 2번 아지트로 삼기로 했다.
한잔만 하려던 낮술이 한 병이 되었다
오랜만에 오랫동안 하늘을 바라봤다. 구름이 쉬지 않고 움직인다. 잿빛 구름이 몰려오는가 하면 어느새 흰구름이 잿빛구름을 몰아내고 맑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졌다가 빗방울이 흩날리기도 했다. 높은 곳에서 보니 잿빛구름이 온통 하늘을 뒤덮은 것 같은 순간에도 그 위쪽에는 맑은 구름이 자리 잡고 있는 게 보였다. 밑에서 보던 게 다가 아니었다.
구름의 모습을 관찰하며 와인을 마시고 있을 때, 내 눈이 의심되는 예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와, 무지개다! 빨주노초파남보, 정말 예쁘다."
무지개는 단 몇 분간 나를 홀리고 사라졌다.
20주년 결혼기념일에 뜬 무지개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모습처럼 우리의 20년도 흐렸다가 맑았다가 비가 내리는가 하면 저렇게 가끔 선물처럼 무지개가 뜨기도 했다. 내 머리 위의 하늘이 아무리 잿빛이어도 그 위에는 밝은 빛이 숨어있다는 걸 항상 기억해야지. 하늘이 내게 '무지개'라는 특별한 선물을 준, 잊지 못할20주년 결혼기념일이었다.
여기까지 쓰려고 했는데, 저녁때 선물을 하나 더 받았다. 느려서 속 터진다고 흉봤던 아들(후회하는 중^^;;) 이 예쁜 케이크를 주문했다. 20주년 결혼기념일 최고의 선물은 뭐니 뭐니 해도 우리아이들이지!!!(흉본 거 미안해서 느낌표 3개) 아이들이 있어서 아무리 흐리고 비 오는 날도 나는 맑을 수 있었고, 무지개 못지않은 특별한 선물도 자주 받으며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