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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Aug 29. 2022

내가 나에게, 행복을 선물하다

단양 패러글라이딩 : 생애 첫 나 홀로 여행


<나는 오늘 죽을지도 모른다>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내가 패러글라이더에 매달려 하늘에 떠 있는 장면이 떠올랐다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장면이 떠올랐다. 점심시간에 밥 대신 산책을 하면서 쓰지 않는 점심값으로 다달이 나를 위한 선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늘은 8월에 나에게 하기로 한 선물,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가는 날이다.

'나는 오늘 죽을지도 몰라.'

더 자긴 힘들 것 같아 살며시 일어나 평소처럼 명상과 스트레칭을 하고 30분간 책을 읽었다.

학교에 가는 고1 아들의 눈을 보며 말했다.

"눈이 많이 부었네. 저녁을 너무 늦게 먹었나 보다. 잘 다녀와~"

아침에 아들의 눈을 보며 인사를 한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잠시 후에 다정한 목소리로 중2 딸을 깨웠다. 안 일어난다고 버티면 맨날 밤늦게까지 핸드폰 보느라 늦게 잔다고 퍼부어 대던 잔소리도 오늘은 하지 않았다. 초2 막내에게는 평소에 한 번만 긁어주던 등을 됐다고 할 때까지 계속 긁어줬다. 오늘 죽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으로 나는 세상 다정한 엄마가 되었다.



<여행은 집을 나서는 순간 시작되었다>


평소처럼 8시 30분에 집을 나와 매일 타는 경의선 전철이 아닌 2호선 지하철을 탔다. 매일 같은 차를 타도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낯설다. 그런데 오늘 유독 2호선 안에서 눈에 띈 사람들이 낯설다는 느낌이 들면서 깨달았다. 나의 여행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5~7분 하늘에 떠 있는 패러글라이딩을 하기 위해 왕복 7시간을 차에서 보내는 것이 잘하는 것인가 잠깐 고민했었다. 하지만 나의 여행은 집을 나와 어제와 다른 길로 들어선 그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혼자가 이렇게 편한 거였구나>


동서울터미널에서 단양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탔다. 가족여행 갈 때 운전하는 남편 옆에 앉으면 졸려도 참아야 하고, 뒷좌석에서 아이들이 다투는 것에 신경 쓰며 몇 시간을 버텨야 한다. 홀로 버스에 탄 나는 등받이를 뒤로 젖혀 편안하게 앉았다. 책을 펼쳤다가 오랜만에 마주한 한강의 모습에 책을 덮었다. 창밖의 풍경을 보다가 졸리면 자고, 다시 책을 읽기도 하고 다운로드하여 온 영화를 보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2시간 30분이 금세 지나갔다.



<지금이 가장 좋~을 때야!>


버스가 단양 터미널에 나를 내려준 시간은 12시 30분. 패러글라이딩 업체가 날 픽업하기로 한 시간은 1시 10분. 식사를 하기엔 약간 부족할 수도 있는 시간이지만, 기운 내서 뛰어내리려면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빨리 나오는 음식이 뭐가 있을까? 국밥집이 보였다. 특별할 것 없이 뜨끈한 국밥을 정말 맛있게 먹어치웠다.


내가 예약한 업체명이 적힌 검은색 봉고차가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들 여섯 명과 20대 남녀 커플이 함께 차를 탔다. 여자아이들은 별거 아닌 얘기들을 내뱉으며 계속 낄낄낄 하하 호호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 웃음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돌며 드는 생각 '좋~~ 을 때다!' 20대 커플은 손을 꼭 잡고 곧 타게 될 패러글라이딩에 대한 이야기를 속삭이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미소가 돌며 드는 생각 '좋~~ 을 때다!'

그럼 난? 여기 혼자 앉아있는 마흔아홉 살 먹은 아줌마는? 나도 분명 '좋~~ 을 때다!'



<원하는 것에 집중하자!>


봉고차를 타고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 동안 올라갔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패러글라이딩 보다 이 산길을 올라가는 게 더 멀미 나고 위험한 상황이었다.

패러글라이딩 할 장소에 도착해 교육영상을 시청하고 신청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어떤 비행을 할 것인지 선택하는데 나는 미리 생각해 둔 기본비행을 선택했다. 짐을 맡기고 나에게 맞는 사이즈의 슈트를 찾아 입고 있었다. 다 입기도 전에 저쪽에서 강사님이 내 이름을 불렀다.

"벌써요?"

다른 사람들 타는 것도 좀 보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오자마자 뛰게 되었다. 너무 긴장한 나는 오른발 끼우라는 곳에 왼발을 집어넣어 놓고 뭘 잘못했는지도 파악 못하고 멍하니 서 있는 등 정신이 좀 없었다. 그때 잠깐 아이들 생각이 났다.

"이거 잘 채워진 거 맞죠? 저 오래 살아야 해요."

"아니, 즐기러 왔으면 재미있게 해달라고 해야죠. 왜 죽을 생각을 해요? 괜찮아요~"

강사님의 말을 듣고 깨달았다. 나 놀러 온 거잖아. 죽으러 온 거 아니잖아. 원하는 것에 집중하자!

"하하. 맞아요. 저 재미있게 해 주셔야 돼요~"



<너~무 좋다. 행복하다. 편안하다!>


패러글라이더를 장착하고 이륙을 위해 10m 정도 길이의 평지를 뛰어야 하는데 뒤에 글라이더가 펼쳐지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뒤로 밀렸다. 강사님이 뒤에서 나를 밀며 뛰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발이 닿지 않는 곳까지 밀려 뛰고 있었고 어느 순간 하늘로 솟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내 눈 아래로 남한강을 둘러싼 산과 마을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고, 위로는 푸른 하늘이 눈부셨다.

'너~무 좋다. 행복하다. 편안하다.'

그런 생각들만이 마음속에 맴돌았다.

"혼자 오셨어요?"

"네, 패러글라이딩이 너무 하고 싶었는데 같이 올 사람이 없어서 서울에서 버스 타고 혼자 왔어요."

"이야~ 오래 태워줘야겠다."

인심 좋은 강사님을 만나 5~7분가량이라는 기본 비행을 9분 넘게 탔다.


들고 있는 카메라로 패러글라이딩 하는 영상을 찍는다.


비행 내내 등에 맨 패러슈트 안에 몸이 안착되며 마치 요람에 있는 듯 편안했고, 착륙을 위해 방향을 바꾸고 속도를 조절할 때 약간 스릴이 있었다. 강사님이 착륙 시에 다리를 다칠 위험이 있으니 다리를 잘 들고 있으라고 강조했다. 착륙 후 차량을 타고 이륙했던 곳으로 다시 올라가 패러글라이딩 할 때 찍었던 영상도 전송받고, 업체 내에 준비된 공간에서 사진도 찍었다. 혼자 오니까 사진 찍어줄 사람이 없는 건 좀 아쉬웠다. 그래도 눈치껏 부탁해서 몇 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혼자 왔니?

업체 차량으로 나를 단양역에 데려다 주기로 약속한 3시 30분까지 한 시간이 넘게 남아 근처 카페에 가서 다른 사람들이 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파란 하늘과 푸른 산들 사이로 형형색색의 패러글라이더들이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고 있었다. 내가 타는 것 못지않게 기분 좋아지는 풍경이었다.



[패러글라이딩 체험자가 알려드리는 제일 중요한 유의사항]
 
패러글라이딩 안전교육에서도 그렇고, 강사님을 처음 만났을 때도 가장 강조하는 것은 딱 한 가지다. 이륙을 위해 달리기를 할 때 발이 땅에 닿지 않아도 그만 달리라고 할 때까지 계속 달릴 것!
패러글라이더가 위로 솟아오르기 전에 달리기를 멈춰버리면 하늘로 날아오르지 못하고 바닥으로 구르게 된다. 오늘 실제로 그런 사고를 목격했다. 이륙장 아래는 약간의 경사면과 평지로 되어있어서 크게 다치지는 않았으나, 앞으로 꼬꾸라져 구르면서 얼굴 전체에 찰과상을 입었다.



<두려움은 상상일 뿐>


단양역 근처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4시 20분 버스를 탔다. 단양으로 올 때 보던 영화 '심야식당'을 마저 보고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인간의 두려움은 상상력에서 온다고 한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다가 떨어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나를 두렵게 했고 머뭇거리게 했었다. 혼자 여행을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오늘 직접 해보지 않았다면 평생 두려워했을 것이다.



<좋은 엄마는... 행복한 엄마 아닐까?>


항상 어딘가를 가면 '○○하고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면서 아쉬워하곤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도 생각나지 않았다. 아이들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혼자 보내는 이 시간이 너무 좋고 행복하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나쁜 엄마일까?


아이들이 좋아하는 쿠키를 사들고 집에 도착한 시간은 8시 30분. 집을 나선 지 딱 열두 시간 만이었다. 아이들은 아침에 내가 일러준 대로 냉동 곤드레나물밥을 데워먹고 각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막내딸이 보기에 내가 여느 때의 퇴근 시 모습과는 달라 보였나 보다.

(패러글라이딩 하러 가는 것을 남편이 반대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엄마, 기분 좋은 일 있었어?"

"엄마야 지윤이랑 있으면 늘 기분이 좋지. 지윤아~사랑해~"

"갑자기?"

"원래 항상 사랑하고 있어."

"그건 나도 알지. 나도 사랑해~"


아무래도 난... 오늘만은... 좋은 엄마인 것 같다.




* 패러글라이딩을 하기까지 준비과정 이야기 읽어보세요~

https://brunch.co.kr/@c1ac4f95da4246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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