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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Oct 01. 2022

나를 위한 선택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매달 15일, 엄마가 없는 아이들을 위해 기도 하겠습니다.'

이것은 지난달에 한 나와의 약속이다. 점심밥 대신 산책을 하면서 아껴지는 돈으로 나를 위한 선물과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한 후원금을 내기로 했다. 15일은 통장에서 유니세프 후원금이 나가는 날이다. 15일이 되자 종교가 없는 나는 분쟁지역에 있는 아이들이 따뜻한 밥을 먹고 아프지 않게 편안히 잠들 수 있게 해달라고 짧은 바람을 속삭이는 것으로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 생각했다.


며칠 후에 유니세프에 후원금을 내기로 했다는 것을 아들에게 말했더니 아들이 물었다.

"엄마가 후원한 아이가 나중에 해적이 되면 어떻게 해요?"

"해적?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아무도 돕지 않는다면 해적이 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을지 몰라. 엄마가 후원금을 내는 것은 아이들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내는 거야. 선택은 아이들의 몫이지. 우리한테 선택의 여지가 많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같지 않니?"


아무런 준비 없이 대답한 것 치고는 너무 멋진 말이 나와 버렸다. 스스로에게 감탄했며 생각했다. 오직 살아남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선택을 할 수가 있다. 선택을 미루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행복을 미루는 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을 해보자.


그리고 런 생각이 들었다.

'기도를 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내 마음 조금 편하자고 하는 나를 위한 기도 아닌가?'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은 분쟁지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선 가까운 곳을 돌아보자 생각했다. 내가 사는 지역의 보육시설을 검색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부모와 함께 지낼 수 없는 아이들을 돌보는 시설을 알게 되었고, 자원봉사 신청을 했다. 일주일 정도 지나 문자가 왔는데 8월부터 코로나로 인해 자원봉사 신청을 받고 있지 않다고 했다. 다시 가능해지면 연락을 준다고 하여 기다리고 있었는데 9월 29일에 교육을 받으러 오라는 문자를 받았다.


교육을 받으러 가기 위해 회사에 반차를 신청하고 일찍 퇴근했다. 면접을 보는 듯 설레어 옷을 차려입고 동네에 가끔 가는 작은 미용실에 들렀다. 염색이 끝나 자리에서 일어서는 데 파마 로트를 말고 뒤쪽 소파에 앉아 계시던 어르신께서 말씀하셨다.

"머리 색깔 참 예쁘다~"

웃으며 돌아서 옷을 갈아입는데 또 말씀하셨다.

"참 좋을 때다. 즐겨~. 좋을 때야. 어린애들 키울 때가 힘든 거 같아도 제일 좋을 때야."

생머리라 젊게 보셨나, 곧 오십 인 나한테?

"하하. 좋을 때죠. 하하."

어르신이 눈이 안 좋으신가? 실망시켜 드리지 않기 위해 얼른 미용실을 나왔다.




자원봉사 교육을 받으러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언니가 화를 냈다.

"야~~"

"왜?"

언니와 달리 자율을 빙자한 방임형 엄마인 나에게 너네 애들이나 좀 잘 보라고 하려나 싶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 거 있으면 진작 말을 했어야지. 같이 가. 거기 언덕이라 걸어가기 힘들어."

자원봉사 교육 담당자에게 연락해 언니도 자원봉사 신청을 했다. 나의 든든한 조력자인 언니의 차를 타고 편안하게 교육을 받으러 갔다.  열 정도의 여자분들이 교육을 받기 위해 모였다. 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까지 연령층이 다양했다. 사회복지 자원봉사 인증관리 사이트에 회원 가입을 하고, 자원봉사 지원신청서를 작성했다. 성범죄 등 범죄 관련 조회서 발급 동의까지 자원봉사 활동에 필요한 모든 절차를 마쳤다.


언니와 나는 매주 일요일 오전에 3세 미만의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기로 했다. 재능이 있다면 본인의 재능을 이용한 활동도 가능하다고 한다. 글쓰기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나중에는 이곳의 아이들에게 글짓기를 가르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려고 누웠는데 낮에 미용실에서 만난 어르신이 어린아이를 키울 때가 제일 좋을 때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내가 아이들을 오래 돌볼수록 나의 제일 좋은 시절은 오래 지속되리라. 결국 아이들을 돌보는 것 또한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드디어 내일은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

나태주 시인의 시 '기도'가 생각나는 밤이다.   

내가 외로운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추운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추운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가난한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더욱이 내가 비천한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비천한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때때로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하게 하여 주옵소서

나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나는 지금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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