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엄마의 고백
30년 전 안경 쓰고 컴퓨터 앞에서 골똘히 집중하며 일하던 그 모습이 멋져 보였을까요.
아니면 내가 잠시 뭐에 홀렸던 걸까요.
뭐가 그리 급하다고 23살 그 어린 나이에 홀라당 넘어가 시집을 가버렸을까요.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닌데 말이죠.
어느새 30년이 훌쩍 흘러, 사실 잘 기억도 나질 않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늦었었죠.
어느새 다 커버린 막내딸이 엄마의 어린 시절이 궁금하다길래 추억 여행 한 번 떠나봤습니다.
30년 전 저는 겁도 없이 이 남자 하나만 믿고 왔습니다.
정말 ‘겁도 없었다’는 말이 맞습니다.
어린 자의 특권이었을까요. 뭐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정말 뜨겁게 사랑했었는지 예쁘고 고운 딸도 세 명이나 낳았고요.
마음으로 얻은 소중한 딸도 한 명이 더 있습니다.
지금이야 행복하게 웃으면서 ‘딸부자’라고 말하지만
키우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이 다투고 서로를 미워했는지 모릅니다.
더군다나 마음으로 얻은 딸은 지금은 세상 무엇과도 바꾸지 못할 만큼 소중하지만
과거엔 미워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의지가 아니었거든요.
우리 소중한 첫째 딸 이야기를 좀 해보자면요.
사실은 아주버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니까 제 신랑의 형님이시죠.
그런데 왜 제가 딸이라고 부르냐면요? 제가 네 살 때부터 키웠었거든요.
첫째 딸아이 이름은 별이인데 태어남과 동시에 어머니를 여의고
아주버님은 도저히 별이를 키울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희 남편은 별이를 데려오기로 결심했고
저는 덜컥 그렇게 아이를 키우게 된 것입니다.
그때 제 나이 26살이었습니다.
심지어 저는 세 살짜리 딸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었고요.
뱃속에는 또 다른 생명이 들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참 힘듭니다.
앞으로의 제 삶이 막막하게 느껴졌었거든요.
뭐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불과 3년 전의 저는 온데간데없고
온갖 불평과 화만 내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아기 세 명을 홀로 오롯이 감당하는 일이란
생각보다 벅차고, 외롭고, 지치는 일이었습니다.
“내가 당신이랑 살려고 왔지, 이게 뭐야?
내가 당신 아주버님 아기까지 키우게 될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어?
나도 잘하고 싶은데 나도 잘하고 싶다고.”
울분이 터져 나온 날도 있었습니다.
그때 어쩌면 문틈 사이로 소리가 흘러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때문이었을까요.
별이에게 제 나름대로는 정말 최선을 다했고
저의 친딸들이랑 똑같이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마음을 전부 내주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그게 내심 서운하기도 했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조금 더 성숙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당시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남편 집에서 아들을 원하셔서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아이를 가지게 되었는데 또 딸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막내딸아이를 가졌을 때
조금이라도 실망했던 제 마음이 너무 미안하고 후회됩니다.
지금은 너무나도 애교 많고 사랑스러운 딸이고,
‘없었으면 정말 어쩔 뻔했냐’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산답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늘 저의 부족한 모습을 발견해 자책하고, 실망하고,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분명 그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었는데도 말이죠.
그래서 그 시절의 저를 더 이상 그만 미워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소중한 우리 네 딸들을 앞으로 더 많이 보듬어주고
사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