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정을 웃음으로만 표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저는 처음 봤거든요. 슬플 때도, 짜증이 날 때도, 우울할 때도, 화가 날 때도 여전히 미소를 짓는 사람을요.
그 사람은 바로 제 직장 동료 지영입니다.
지영이는 정말 승무원을 하기 위해 태어난 걸까요?
저는 승무원 일을 시작하면서 세상에 불평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지 처음 알았습니다.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마음을 단련하는 중인데요.
지영이는 이미 신의 경지에 이르렀나 봅니다.
옆에서 보면 정말 신기할 정도로 늘 웃고 있거든요.
마치 세상에 태어나 불행을 단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사람처럼요.
오늘도 어김없이 진상 고객님이 등장했습니다.
고객님께 물을 가져다 드렸는데 물 기포가 너무 적다고 바꿔 달라고 하셨습니다.
새로 가져다 드리니 이번엔 미지근하다고 찬물로 바꿔 달라고 하셨습니다.
저의 부글부글 끓는 내면의 소리는 무시한 채 온화한 가면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정말 겉과 속이 다른 사람입니다.
이러려고 승무원 했나 싶을 때도 많습니다.
그래도 버텨야죠.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요.
오늘은 처음으로 지영이 집에 놀러 가는 날입니다.
3년 만에 드디어 지영이가 집에 초대를 해주었습니다.
지영이 집은 본인처럼 정말 깔끔하고 따뜻한 느낌의 공간이었습니다.
다들 퇴근하고 지친 몸에 배도 고픈 상태였는데
지영이가 센스 있게 배달 음식을 도착 시간에 맞춰 주문해 놓았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숨도 안 돌리고 음식을 허겁지겁 먹기 바빴습니다.
역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습니다.
배가 부르니 이제 하루 종일 마음에 담아두던 얘기를 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지영아, 아까 진상 손님 대박이었지 않아? 완전 사이코패스인 줄 알았어.
그런 사람들 때문에 서비스 직종을 다들 기피하는 거지.
우리는 무슨 감정이 없는 로봇이냐고!!! 우리는 왜 늘 웃기만 해야 해!!!”
열변을 토해냈습니다.
제가 분노하며 말을 쏟아내면 지영이는
“늘 맞아!!! 정말 화가 날 만해!! 그 고객은 오늘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해.”
라며 공감을 해주고 화를 내지만 단 한 번도 인상을 쓴 적이 없었습니다.
표정은 늘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말을 해주었습니다.
“지영아 너는 어떻게 화가 나는 상황에도 늘 평화롭게 미소를 유지할 수 있어? 너무 신기해서.”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아.
시작은 어른들한테 미움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던 것 같아.
울고 떼쓰면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했었나 봐.
그래서 늘 웃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렸어.
가짜 웃음이지. 어쩌면 진짜 웃음은 나에겐 없는지도 모르겠어.”
지영이는 본인 스스로가 짓는 웃음을 ‘가짜 웃음’이라고 정의하고 있었습니다.
가짜 웃음이라니. 예상치도 못한 답변에 생각에 잠겼습니다.
저는 지영이의 그 가짜 웃음에 진짜 위로를 받았기도 했었고
팍팍했던 하루가 따스하게 바뀌기도 했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하루를 무너지지 않게 했던 힘이 분명히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날 이후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습니다.
‘가짜 웃음’이 꼭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거친 세상을 조금 덜 거칠게 만드는
가장 부드러운 방패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