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고 넓은 하늘 아래 살아있는 일

삶으로 돌아오는 길

by 볕드는 이야기

노는 것도 열심히 잘 노는데 공부까지 잘하는 사람 왠지 조금은 얄밉지 않나요?

제 친구 중에도 있었습니다. 매주 축구하고 놀면서도 성적은 이상하리만큼 늘 상위권인 희한한 친구입니다.

사실 제가 성적은 더 높긴 합니다만… 갑자기 제 자랑은 아니구요.

저는 열심히 노는 것은 못했던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적당히 잘 놀면서 공부까지 잘하는 저 친구가 그저 신기하기만 합니다.

아니, 부러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저 친구만큼만 했더라면 성적은 바닥을 쳤을 것 같거든요.

그 친구의 이름은 윤호입니다.

저와 윤호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모두 함께 나왔습니다.

심지어 학과도 비슷한 계열로 입학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도 많이 겹쳤고 서로의 친구의 친구들까지 모두 친하게 지냈습니다.

오랜 시간 같은 환경, 같은 교육을 받아서였을까요?

어느 순간 생각이나 가치관도 비슷해져 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이십 대 중반이 되었고 취업 준비마저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취업 준비 과정은 정말 녹록지 않았습니다.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은 점점 한둘씩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친구들과 한 번씩 만나면

“아직 어린데 뭐 어때. 백수일 때가 가장 좋은 거야. 즐겨.”

이런 식의 위로도 되지 않은 위로를 전해 받곤 했습니다.

제 마음은 편하지 않았죠.

취업 준비 기간은 이상하리만큼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시기였습니다.

어느 순간 뾰족한 칼이 되어 있었고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면서

스스로 점점 세상을 멀리 하게 되었습니다.

날카로운 칼로부터 주변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죠.

심지어는 가족들과도 멀리했습니다.

공부를 핑계로 1년에 한두 번 갈까 말까였죠.

그 시기 온전히 유일하게 마음 편하게 만났던 친구는 윤호였습니다.

윤호는 일단 저와 같은 상황이기 때문에 편했던 것도 있었고

모든 상황을 아는 친구이기에 어떠한 설명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은 윤호와 다른 고등학교 친구들 모임에서 술을 마시고

제가 힘들다며 펑펑 운 일이 있었습니다.

다음 날 이불킥을 얼마나 찼는지 모릅니다.

술을 마시고 운 것도 창피한 일인데

이 상황이 너무 힘들다는 말을 제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어찌나 창피하던지요.

꼴에 자존심인지 친구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잘 지내는 척을 하고 싶었나 봅니다.

그러고 한 6개월이 흘렀을까요.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도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윤호가 조용히 저에게 말했습니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어. 나도 혼자 이유 없이 눈물이 나서 울었었는데

그때 너 생각이 나더라.

그날 서럽게 울던 네가 생각이 났어.”

저에겐 그 어떤 위로보다 더 큰 감동이었습니다.

창피해서 지워버리고 싶었던 순간이었는데

윤호는 그 순간을 기억해 주었고 저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정말 강인하게만 느껴졌던 윤호도

혼자서 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윤호와 저의 취업 준비 기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20대 후반이 되었고

사실 저는 하고 싶은 것도 의욕도 없었습니다.

정말 철없는 백수였습니다.

남들이 바라던 ‘놀고먹는 백수 생활’인데 행복했을까요?

아니요, 정말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지겨운 삶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정말 잠이 병처럼 쏟아졌습니다.

눈을 떠 있는 시간이 무서웠던 걸까요.

이유 없이 몇 시간을 울기도 하며 그렇게 아프기만 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느 순간 정신 차려보니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통으로 느껴졌습니다.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도 아무것도 없는데

뭘 위해 살아야 하나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샤워를 하면서 문득 죽음을 떠올렸을 때

분명히 두려운 감정이 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평온함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정말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고 있었습니다.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실오라기 같은 줄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는 수요일 늦은 밤 11시쯤,

친구한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윤호의 안부를 묻는 전화였습니다.

“윤호랑 언제 마지막으로 연락했어?”

“월요일까지 연락했었는데 왜 무슨 일이야?”

“아, 지금 윤호 폰 전원이 꺼져 있어서.”

윤호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정말이었습니다.

‘술 마시고 폰을 잃어버린 건가? 얘는 왜 갑자기 사람 걱정을 시키고 난리야.

하… 내일 아침까지 연락 없으면 집에 찾아가 봐야겠다.’

그렇게 잠에 들었습니다.

다음 날 눈을 떠보니 친구들에게 부재중 전화가 여러 건 와 있었습니다.

평소에 없던 일이라 ‘뭐지?’ 싶었습니다.

“놀라지 말고 들어…”

“뭔데, 뭐길래 이렇게 서론이 길어?”

“윤호가 죽었대.”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돌이

제 심장에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왜!!!!!!” 소리를 쳤습니다.

저는 단 1초도 상상한 적이 없었습니다.

윤호의 죽음을요.

그런데 그 순간 윤호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너가 나보다 조금 더 힘들었구나. 얼마나 아팠어.

어떻게 참고 견뎠어. 차라리 나한테 같이 가자고 그러지.

그러면 덜 외롭잖아. 나는 어떻게 하라고.

나도 너 따라가고 싶은데, 나 혼자 어떻게 하라는 거야…”

미쳤냐고 왜 죽냐고 욕하고 소리쳐야 하는데

그저 윤호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아팠냐고 나도 같은 마음이라고 공감해주고 있는

제 자신이 너무 싫었습니다.

윤호의 죽음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늘 밝고 유쾌하고 사람을 좋아하던 아이였으니까요.

부모님은 장례식장에서 바닥을 구르고 울고 난리가 났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데 적어도 이 방법은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윤호도 아마 가는 길에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방법이 틀렸다는 건 아는데

살아야 할 방법도 모르겠었습니다.

저는 죽음을 생각했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도 아쉬움이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겪으니 미친 듯이 그립고, 보고 싶고, 얘기하고 싶고,

함께 맛있는 걸 먹고 싶고, 또 얘기하고 싶어 졌습니다.

정말 별거 없었던 지루했던 그 일상이 그립고 또 하고 싶어 졌습니다.

윤호를 보내고 정말 어떻게 시간을 흘려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길거리, 지하철, 도서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눈물이 멋대로 튀어나왔습니다.

지나가는 어린아이를 보면 그렇게 슬펐습니다.

윤호 부모님 생각이 나서요.

나도 이렇게 심장을 누가 꽉 움켜쥐어 짜듯이 매일이 아픈데

저렇게 어릴 때부터 28년간 사랑으로 키웠던 부모님의 마음은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었습니다.

이대로는 살 수 없었고 미친 듯이 책을 붙잡기 시작했습니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알아야만 했거든요. 살 수 있는 방법과 이유를요.

삶에 대한 열정이 강하고 성공한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어떤 이유로 살아가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책에 매달렸습니다.

살기 위한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그저 몸을 움직이고, 건강한 음식을 먹고, 하루를 돌아보고, 스스로를 안아주는 것.

1년이 지나고 나서야 이제는 이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내일 당장 이 모든 것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마음이 드니

매 순간이 아깝고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이제야 보입니다.

그 길고 길었던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칼이었던

매 순간 위험했던 저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주었던 사람들을요.

어둠을 지나고 나야 빛이 더 환하고 눈부시고 찬란하게 느껴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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