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 주는 즐거움
나는 하고 싶은 일에는 과감하게 다가간다. 하지만 아쉽게도 초보의 단계를 넘어설 만큼의 끈기가 없는 것이 크나큰 약점이기도 하다. 한때 배웠던 오카리나와 하모니카와 라인댄스와 요가 등 모두가 그랬다. 악기와 신발과 의상까지 구매했지만 매번 숙련자의 단계를 넘지 못하고 중간에 멈추어 서길 반복했다. 나의 약한 의지도 원인이지만 여의치 못한 환경도 한몫했다.
심한 변덕에도 이십여 년간 꾸준한 것이 하나 있다. 헬스다. 헬스장에 가지 못한 날은 뭔가 소중한 일정을 건너뛴 것 같아 자주 찾는다. 그곳에서 우연히 한 남자를 보게 되었다. 사십 대로 보이는 그는 팔과 다리가 가늘고 배가 나온 전형적인 거미형 몸매의 소유자였다. 이른 새벽 헬스장에 들어설 때면 그의 손에는 항상 한 권의 책이 들려있었다. 개인 맞춤 훈련을 받기 시작하더니 언제부턴가 그의 몸매가 서서히 변해갔다. 거미에서 탈피한 듯 팔과 다리에 근육이 생겨나고 볼록했던 배의 흔적이 사라지면서 근육질로 진화하고 있었다.
그는 러닝머신 위를 걸을 때나 근력운동 중간중간 쉴 때면 어김없이 한 손에 책을 펼쳐 든 채 읽고 있었다. 운동이 끝날 때까지 책 읽기는 그렇게 계속되었다. 최근 글쓰기와 독서에 관심을 가진 탓에 그런 그에게 더 눈길이 머물렀는지 모르겠다. 그의 손에 들린 책은 매일 달랐다. 크기와 두께와 표지가 다른 것임을 말해 주는듯했다. 아파트 같은 라인이라 가끔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칠 때도 같은 모습이었다. 진정한 독서광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그를 보기 전까지 독서는 앉아서 차분한 자세로 몰입하는 것인 줄만 알았다. 이런 나의 상식을 단번에 걷어차 준 사람이다. 도서관에서 한 권의 책을 빌린 날, 출입문을 나서면서 책의 내용이 궁금해 펼쳐보았다. 햇살 아래 천천히 걸으면서 실눈을 뜬 채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갔다. 속도는 느렸지만 중간중간 읽기를 멈추고 고개를 들어 그 속에서 만난 문장을 되뇌며 속에 깃든 의미를 생각하는 기회를 가졌다. 책상 앞이나 도서관에서 정자세로 읽는 것이 독서가 아니란 걸 그때야 깨달았다.
책을 사랑하는 헬스장의 남자를 떠올리며 나도 지하철 안에서 읽기 시작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지하철 내 안내 방송을 듣고서야 뒤늦게 인식할 정도로 빠져들 때가 종종 있었다. 책 속에 빠져있던 어느 날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라는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고개를 들고 보니 옆자리의 낯선 남자가 내게 한 말이었다. 모두가 휴대폰을 보고 있는데 종이책을 보고 있는 모습이 너무 대단하고 멋있어 꼭 이 말을 해 주고 싶었단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민망해 다시 책으로 눈길을 돌렸지만, 그의 말이 싫지는 않았다.
또 다른 습관도 생겼다. 집을 나설 때면 손안에 늘 한 권의 책을 챙겼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엘리베이터 내에서, 주차장을 지나 인도를 걸을 때,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도 펼쳐보자, 그 시간이 지겹지 않았다. 지난날 거칠었던 숨결을 토해내며 올랐던 비탈길도 책과 함께일 때는 평온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최근 집 안에서마저 걷거나 서서 읽는 습관이 생겼다. 가끔은 아파트 데크층으로 나가 햇살 아래 거닐거나 의자에 앉아서 읽기도 하였다. 나도 어느새 그 남자를 닮은 독서광이 되어가고 있었다.
걷는 독서나 지하철 내 독서에 빠질 때면 낯선 이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책 속 한 문장을 만나 사유의 시간을 가질 때면 그 속에 솟구치는 희열이 있어서다. 시간을 쪼개 짬짬이 읽는 것이 차곡차곡 쌓여 바탕이 되면 그 바탕에 힘입어 새로운 한 편의 글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이제 책은 나의 삶 전체를 단단하게 다지는 보이지 않는 그림자로 자리한다. 나는 오늘도 길 위에서, 지하철에서 독서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