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으로 만나는 행복
친정 인근에 복지관이 있다.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세 살 위인 언니와 나란히 한 달에 한 번 지역 주민들을 위해 진행되는 수업을 듣게 되었다. 천연 향수 만들기, 캘리그래피, 마크라메 등 매번 달리 진행되는 수업은 37년간의 직장 생활에 지친 나에게 덤으로 주어진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어느날 복지사가 우리에게 슬며시 다가왔다. 장애인 2명과 지역 주민 10명으로 이루어진 제빵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란다. 두 사람이 부족해 일정이 지체되고 있다며 참여를 부탁하는 것이 아닌가. 별도 수강료는 없고 재료비만 내면 바로 수업이 진행된다는 달콤한 제안도 함께였다. 빵 배가 따로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인 나는 그 요청을 외면할 수 없었다.
첫 수업이 진행된 날. 스승은 복지관 봉사자라는 제빵사였다. 늘 웃음 가득한 통통한 체격의 호빵맨을 닮은 젊은 청년이었다. 70대인 열정남과 열정녀, 장애인 친구, 그리고 제빵 자격을 준비 중인 주부들을 만났다. 나는 장애가 있는 이십 대 그녀와 한 팀이 되었다. 말과 행동이 상처가 될까 봐 조심스러웠는데 이는 기우였다. 시간 날 때마다 혼자 노래 연습하고, 예명까지 있으니 이름 옆에는 꼭 예명을 적어달라고 강조하는 아이돌이 꿈인 아가씨였다. 갑자기 화가 나거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소리를 지를 수도 있으니 놀라지 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문제를 인식하고 이해를 바라는 솔직함과 당당함에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녀는 우리를 이모라 불렀다.
반죽은 한꺼번에 이루어졌다. 어린 시절 방앗간에서 보았던 큰 원통형의 틀 안에서 철컥철컥 소리를 내며 돌아갈 때마다 탄력이 더해졌다. 일차 발효된 직후에는 그릇에서 작은 동산처럼 부푼 모습으로 나타났다. 보들보들한 반죽을 나누어 계량한 뒤 서로 도와가며 모양을 만들고 틀에 담아 대형 오븐에 넣었다. 빵이 익어가기 시작할 때면 고소한 냄새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짬짬이 마주하는 여유 시간에 나눈 수다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아가는 친목의 장으로 변했다. 오븐에서 갓구워진 빵은 고소함의 극치였다. 한 조각을 베어 문 순간 우리들은 행복을 만나는 아이로 변했다. 집으로 가져간 빵은 다음 수업을 기다리게 만드는 마법사였다.
어느 날 귀갓길에 언니가 "재미있더라."라는 한마디를 했다. 캐나다에서 가족들과 생활하다가 십여 년 전 어머니가 갑자기 뇌 수술을 받게 되면서 한국에 오게 되었다. 그때부터 어머니를 돌보는 것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몫이 되어 버렸다. 제빵은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언니에게 활력의 도구였고, 내게는 더 자주 어머니를 뵐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갓 구워 집으로 가져온 빵을 맛보는 어머니의 표정도 덩달아 환해졌다.
사 개월간 이어진 수업으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직접 만든 빵으로 지역 어르신들에게 제공하는 나눔의 기회를 가졌다. 새로운 이웃들이 생겼다. 언니는 제빵사 도전이라는 목표가 생겼다. 수업이 끝난 지금도 제빵 동기들은 복지관에서 간간이 만남의 자리를 가진다. 그럴 때면 각자가 준비해 온 간식과 차를 나눠마시며 서로의 일상을 나눈다.
며칠 전 복지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올해는 제과 수업을 할 예정이란다. 그곳은 60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요란한 꿈보다 소박하게 살아가는 즐거움을 깨닫게 해 주는 소중한 공간이다. 복지관에서도 소소한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