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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션펌킨 Dec 08. 2021

설악산 공룡능선

마음으로 함께 한 가족여행

날 추워지기 전에 아빠랑 같이 설악산 공룡능선을 가자는 엄마의 제안에 놀랐다. 해마다 두 분이 다니던 여행인데 셋이 함께 가자고 하니 말이다. 21년 초부터 산을 다니기는 시작했지만 설악산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보니 내 실력으로 완주할 수 있을지 간음이 되지 않아 걱정이 되었다. 산을 다녀온 사람들의 글을 찾아서 읽어 보고 등산코스도 여러 방향으로 검색해 보고 나니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세 명은 각자의 역량이 달랐다. 속도와 힘에 있어서 아빠는 월등히 우등했고 엄마는 속도는 느리지만 20년 넘게 등산을 해 온 경험으로 노련함이 있었다. 나는 등린이로 힘은 있지만 지구력에서는 두 분에게 딸리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가족 여행에 취지가 있으니 함께 해보기로 했다. 

21KM를 하루 안에 걸어야 했다. 문제는 해가 짧은 겨울이라는 것이다. 해가 지는 산은 잘 아는 길이라도 헤매기 쉽고 날이 춥기 때문에 사고가 날 위험이 크다. 그래서 새벽에 출발을 해야 했다. 지난밤 저녁 일찍 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뜨끈한 방에서 숙면을 취하고 나오니 기온은 차가웠지만 산행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긴 산행에 대한 부담감이 컸던 만큼 출발이 순조로워서 안도감이 들었다. 

설악산은 높이가 높은 만큼 오르막이 길다. 가도 가도 오르막, 어디서 멈춰서 쉬어야 할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계속 걸었다. 그러다가 여명이 느껴져서 조금 속도를 높였다. 해가 뜨는 모습을 전망이 좋은 곳에서 보고 싶었다. 능선 위에서 볼 수는 없었지만 나름 해를 볼 수 있는 장소를 발견하고 사진에 담을 수는 있었다. 

첩첩산중에 골이 깊은 산이다 보니 꼭대기에 오를수록 산의 모습은 위용스러웠다. 힘들게 올랐지만 돌아보면 뿌듯했고 전망을 보면 피로감도 싹 사라졌다.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볼 때마다 장면의 배경들이 장엄해서 놀랍고도 좋았다. 영화의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보여주는 자연경관들이 처음엔 CG로 만든 가상인 줄 알았는데 네덜란드의 실제 있는 장소라는 것을 알고 놀랐었다. 그런데 공룡능선을 오르면서 돌아다보는 산의 경관도 그만큼의 감동을 주었다. 한국에도 영화의 가치를 높여 줄 수 있는 장소가 많이 있다는 생각을 하니 흐뭇했다. 작은 나라지만 곳곳이 명소인 버릴 것 하나 없는 나라라고 자랑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뚝 서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암석들은 마치 전장의 용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산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돌로 된 갑옷을 입고 칼을 잡고 전방을 주시하며 적이 오면 즉시 달려 나갈 것 같은 자세로 말이다.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다르겠지만 용감하고 과묵한 장군과 같은 기운이 느껴졌다. 

산의 능선 중간에 우뚝 서있는 봉은 세존 봉이라고 한다. 설악산 공룡능선을 다 돌아 정상에 설 때까지 우리 뒤를 따라온다. 돌아서서 사진을 찍을 때마다 세존봉을 볼 수 있었다. 

실제로 눈앞에 펼쳐지는 전망은 사진으로 다 담기지가 않는다. 능선 하나를 넘어 내려오다 보면 새로 시작되는 능선을 볼 수 있다. 산 전체가 돌로 되어 있기 때문에 멀리서도 능선의 윤곽은 볼 수 있다는 점이 설악산 공룡능선의 매력이다. 앞에 놓인 돌을 보면서 우리가 타고 넘어야 할 능선이지만 멋져 보였다. 이런 산을 오르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함도 함께였다. 

이곳은 마치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분위기가 풍겨졌다. 하늘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돌이 떨어져서 사방으로 쪼개지며 각자의 자리에 놓이게 된 것 같은 곳이었다. 바위의 모양이 다 달랐고 퇴적암, 현무암 등이 고루 섞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거대한 생명체가 손으로 만져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신화를 만들자면 쉽게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올 법한 장소이다. 외계인이 다녀갔던 것은 아닐까?

산을 타면서 부모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았다. 모여 앉아 대화를 하자며 판을 깔아 놓으면 어색해서 오래 대화를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몸을 움직이면서 노출된 환경에 맞춰 가다 보면 자연스레 이야기가 나오고 그 이야기를 연결해 가다 보면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게 된다. 

오랜 시간 함께 살았지만 건강한 가족은 아니었다. 가족 구성원 각자는 인간적으로 마음도 따뜻하고 정직하며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이지만 가족의 합도 잘 맞는 편이 아니었다. 부부의 합도 차이가 많았고 그로 인해 나와 동생도 집이 편안한 곳만은 아니었다.

자식에게 지극하신 부모님이었지만 두 분 모두 부모는 처음이라 자식 입장에서는 힘든 부분도 많았다. 그 힘든 부분을 말하고 대화로 풀어갈 방법을 배웠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우리 가족은 서로 참으면서 지냈던 것 같다. 꺼내놓아 보아야 좋아질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부터도 이야기를 시작하면 언성부터 높아지는 아빠가 피곤했다. 깊은 대화를 해보려고 하면 자꾸 화제를 바꾸는 엄마의 산만함에 화가 날 때도 있었다. 가족이 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힘든 일이라는 것을 매번 깨달으며 포기했었다. 그러다가 이번 산행을 하면서 깨달아진 것이 있었다.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다. 각자의 영역으로 스며들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함께하는 추억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서로를 바꾸려 하지 말고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 

험난한 공룡능선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드디어 그 끝에 왔을 때 돌아본 산의 모습이다. 공룡의 등과 같은 모습이라고 해서 공룡능선이라 불린다 했었다. 뾰족뾰족한 모습이 공룡의 등처럼 보이긴 했다. 뿌듯함이 몰려왔다. 잠깐이지만 하산하기 싫고 계속 산을 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대청봉까지도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4시까지는 하산을 해야 어두워지기 전에 안전하게 산행을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에 발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설악산의 전체를 볼 수 있는 곳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바람이 너무 거세게 불어와서 몸이 휘청일 지경이었다. 앉아서 쉰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산을 감상했고 오르는 동안 느꼈던 고단함을 풀어내며 한참을 감동하며 바라보았다.

산행을 하면서 부모님은 여전히 티격태격했고 나는 그런 두 분을 보며 웃으며 한두 마디 거들기도 했다. 

어릴 때는 부모님이 싸울 것 같으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린 나는 부부 싸움을 지켜보면서 두려움도 느꼈지만 무력감이 더 컸던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더 큰 좌절감을 느꼈다. 

나는 이상적인 가족을 꿈꿔왔고 부모님은 현실을 살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 간극이 너무 커서 부모님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큰 트라우마를 남겼다. 

평화롭고 화목해야 하는데 내가 목격하고 살고 있는 가족은 화목하지 않았다. 맏아들인 아빠와 딸 부잣집 네쩨딸인 엄마는 의견 차이가 많았다. 하지만 권위적인 아빠로 인해 가족 안에서 의견을 주고받는 대화는 없었다. 상명하복의 관계에 더 가까웠다. 

아빠가 법이었고 아빠가 정해놓은 룰은 무조건 지켜져야 했다. 가족을 위한 방식이라고 늘 주장하시지만 그 안에서 숨 막히는 고통을 느껴야 했던 것은 나머지 가족들의 몫이었다.  

상습적인 폭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한 번 부부싸움을 하면 냉전 시기가 길었고 부모님은 우리에게 화해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어떤 때는 싸우는 소리에 잠을 깰 때도 있고 어떤 날은 한참 냉전 시기였다가 갑자기 하하호호 웃음꽃이 필 때가 있다. 지금도 부부싸움에 대한 에피소드를 말할 때면 꺼내 드는 이야기이다. 언제 어떻게 화해를 했는지 알 수 없으나 부부관계는 참 모를 일이다 라며 혀를 내두른다. 

그러면서 나는 결혼에 대한 혐오는 아니지만 긍정적 시선을 갖지는 않게 되었다. 가족 안 엔서 벌어지는 일들을 가족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그 구성원들은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그나마 건강한 사람은 타인을 통해 치유받기도 하지만 온전치는 않다. 젊은 혈기와 열정에 눈이 멀어 불행한 공동체를 생산한다는 것은 인간의 가장 어리석음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년의 나이를 먹고 삶의 경험이 다양해지면서 결혼, 비혼, 이혼, 재혼 등 모든 선택은 개개인의 것이라고 누가 잘했다 잘못했다 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지옥을 살든 천국을 살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누가 어떤 형식으로 삶을 살든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 자신은 그 누구도 불행하게 만들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는 소망만 품으며 살고 있다. 

나의 부모님은 전쟁이 끝난 최악의 빈곤 시대를 살아내신 분들이다. 

특히 아빠는 맏이의 책임감까지 짊어지고 살아가야 했던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세상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과 불안은 항상 방어적 태도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 고생도 많이 했지만 타인에게 속아서 재산을 빼앗기듯 한 일도 많았다. 

대한민국 난방의 수단이 석탄이던 시절, 연탄배달을 하던 아빠는 경찰 간부 중 한 사람에게 1톤 차에 가득 실렸던 연탄의 반을 간부의 집에 내려주고 돈을 받지 못했던 적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신 적이 있다. 경위 정도는 되었던 사람이었고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 집으로 배달해 달라는 주문을 받고 바로 실어다 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돈을 요구하자 바깥양반한테 받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주겠지 주겠지 하고 기다렸지만 끝내 주지 않았다고 한다. 눈 뜨고 코 베인다는 경험을 직접 여러 번 당해야 했던 아빠는 가족을 지키는 방법으로 엄격한 규칙을 선택했다. 어쩌면 그때 아빠에게는 그 방법 외에 선택지가 없었다. 내가 당하지 않으려면 내가 지켜야 한다.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확인할 수 없으니 가족에 대해서는 당신이 모르는 것이 있으면 불같이 화를 냈다. 이해는 되었다. 나 역시 그랬을 테니까. 

그래서 지금도 아빠에 대한 원망은 없다. 다만 예외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모습 때문에 나는 진짜 내가 하고 싶고 원했던 어떤 것을 이뤄본 적이 없다는 것에 화가 나는 것이다. 아빠가 행복했으면 좋겠고 편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에 나의 우선순위를 포기했던 그 시기가 지금도 후회가 될 뿐이다. 하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나의 선택은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지금의 내 이성과 지성을 가지고 그 시절로 간다면 완전 다른 선택을 할 것이지만.

21KM의 긴 여정을 잘 마무리하고 하산 지점에 다다랐을 때 200M 정도의 거리에 금강굴이라는 관광명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잠시 다녀왔다. 산 자체가 모두 돌인데 그 중간 어디쯤에 굴이 파여 있고 그 안에서 스님이 수련을 하고 있다는 특이한 굴이다. 금강굴을 올라가는 계단도 움찔하지만 내려올 때의 비경은 지금도 눈앞을 아른거린다. 

산의 정상에서 볼 수 있는 모습과는 또 다른 매력이 느껴지는 전망이다. 이곳에서 매일 기도하고 마음 수련을 한다는 스님이 참 행복하겠구나 싶었다. 

비수기에는 산 아래 암자에서 올라와 스님이 수련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스님의 모습도 관광객을 위한 모형인가 싶어 손가락으로 찔러보는 사람도 종종 있다고 한다. 금강굴에 오르는 길 중간에 안내문이 쓰여 있는 것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스님을 만지지 말라는 뜻의 문구가 있었다. 그 상황을 직접 듣고 나니 안내문의 내용이 이해가 가서 셋이 모두 웃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눈에 담았던 단풍의 찬란한 색깔을 사진이 다 담아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다시 봐도 벅차다.

아찔한 속도감이 느껴지는 긴 계단을 내려와 비선대를 지나 신흥사로 하산을 시작했다. 

아빠 군 복무 시절에 만들어지는 것을 직접 봤다고 하는 불상이다. 청동으로 되어 있어 그 세월이 온전히 묻어있는 모습이다. 이마에 박힌 것이 다이아몬드라는 썰~이 있었다는 우스갯소리를 나누며 발길을 재촉했다. 

4시가 넘는 시간이었는데 산 아래에는 사람들이 붐볐다. 주차장에도 차가 꽉 들어차 있었다. 해가 질까 걱정해서 분주하게 내려왔는데 오히려 신흥사 아래에서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은 급한 것 하나 없어 보였다. 인파를 뚫고 주차장으로 내려오면서 보이는 단풍들도 볼만했다. 꼭 정상을 찍고 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니 가족들끼리 설악산 국립공원의 정취를 즐기는 것도 그들만의 단풍놀이겠구나.


가족이라는 단어는 늘 무겁다. 사실 지금도 무겁다. 

나이 들어가는 부모를 보며 같이 늙어가는 자식은 걱정이 많다. 나의 당면 문제이다. 

나의 건강도 지켜내야 한다. 그리고 부모의 삶의 질이 지금과 같이 유지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은 없다. 세상이 그리 녹록지 않기 때문에 나의 내일도 장담할 수 없는데 과연 나는 끝까지 잘 살아낼 수 있을까 걱정이 크다. 하지만 살아내 보려고 마음먹었다. 

그 험난한 시절을 살아내고 버텨낸 부모님에게 보답하는 길은 온전하게 살아내는 것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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