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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션펌킨 Dec 06. 2021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오랜만에 새콤하고 향긋한 커피를 만나다.

두어 번 지나다니며 볼 때는 그저 그런 동네 카페로 보였는데 시간을 보내기 위해 들어갔다가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로스팅도 신선했고 향도 맛도 내 취향인 커피를 맛보았다. 입 안에 커피를 머금고 눈을 감고 있어도 좋았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도 커피가 맛있었다. 오래 음미하고 싶어서 천천히 조금씩 마셨다.

테이블과 의자, 방석, 조명 등이 무심한 듯 놓여 있지만 허전하지 않았다. 

커피를 좋아하고 잠시 커피에 미친 듯 몰두했던 시간이 있었다. 돌이켜 보아도 흐뭇하다. 좋아하는 어떤 것에 몰두하고 미친 듯 집중했던 기억은 언제나 행복한 추억으로 남는다. 

백수 생활을 접고 다시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과정이 험난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출발하고 싶다. 욕심을 내자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지금부터 시작하고 싶다. 경력을 쌓아서 내가 60세가 되었을 때에는 전문가가 되어 있다면 좋겠다. 그러려면 시작부터 잘 선택해야 하는데 어떤 것이 좋은 선택인지 모르겠다는 것이 문제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들 하지만 그 사람의 직업을 곧 그 사람으로 보는 사회 분위기는 늘 개인을 위축시킨다. 그 무게감을 이겨내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자 하지만 선택의 순간이 오면 늘 망설인다. 역시 나도 나약할 따름이다. 이 날도 무거운 발걸음으로 취업을 위한 교육을 받으러 나온 날이었다. 하루 종일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시험을 보던 생활을 벗어나 잠시 숨통을 트일 명분을 만들어 나온 것이라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수업 시작 전 1시간이 남아 있는 터라 강의실로 바로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눈에 들어오는 카페에 들어가 보자는 마음으로 찾다가 오래 고민하지 않고 곧바로 이곳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맛난 커피를 마시게 된 것이다. 40여분 앉아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기만 하면서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내뱉어 보았다. 

결국 그 교육은 백지수표로 돌아갔지만 또 하나의 경험이 추가되었다. 

동네 큰 도로가에 새로 생긴 카페다. 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부터 지나다니던 곳이었는데 카페가 들어올 것이라 예상은 하지 못했다. 양 옆으로 할인마트가 자리 잡고 있었고 기존 건물도 할인매장이었던 곳이라 비슷한 상품을 판매하는 매장이 생기겠거니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공사가 끝나 깔끔하게 정돈된 것을 보고 카페겠구나 했다. 간판이 걸리기 전이었지만 출입문과 조명, 전면 유리와 커튼 상태를 보았을 때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커피가 맛있었으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인과 함께 갔다가 아주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커피가 맛있었다. 

인테리어나 구조도 대충 놓인 것 같지만 동선을 잘 생각해서 놓았다는 느낌이 든다. 테이블마다 모양이 다르고 의자도 각양각색이다. 테이블마다 테마를 두고 세팅을 한 것 같다. 그래서 어디에 앉느냐에 따라 다른 분위기의 카페에 온 것 같은 효과를 얻는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과 함께 왔다가 두 시간 넘게 수다를 떨었다. 프랜차이즈 카페만 즐비하던 상권에 개인 로스터리 카페가 들어온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다. 혼자 가도 좋고 여럿이 가도 좋은 카페가 동네에 있다는 것은 나에게 뿌듯함을 느끼게 한다. 

커피를 알고 소비하는 사람들이 나와 같은 구역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도 기분이 좋다. 

겁 없이 카페를 열었던 나의 과거를 다시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내가 좋아하니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만 가지고 시작했었다. 함께 커피 투어를 떠났던 사람들조차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을 무시하고 내 방식대로 해보고 실패하면 접으면 된다는 가벼운 생각으로 임했던 것도 사실이다. 

해보고 내 뜻대로 풀리지 않자 여기저기 움직여보고 바꿔보고 하다가 결국 모두 접어버렸지만 한동안은 언급조차 어려운 실패였다. 

상권이 좋지 않았다, 상황이 어려웠다, 만족스럽지 않았다 등의 비겁한 핑계를 대며 현실을 회피했었지만 이제는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어설펐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신감만 충만해서 저질러 버렸던 꼴이다. 

5년 이상씩 준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밤새 들으며 그분들의 고충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새겼었지만 결국 나는 나 하고 싶은 대로 해버렸다. 그리고 결과는 참패였고 그 원인이나 이유도 되새겨보지 않고 기억 저편으로 보내버리려 했다. 

커피로 잘난 척을 할 때는 로스터리 카페만 찾아다녔었다. 가게를 접고 손에서 커피를 떠나보낸 후부터는 프랜차이즈 카페만 들어갔다. 검증된 커피 맛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굳이 내가 평가를 하고 검증할 필요가 없는 카페에만 갔었다. 그리고 더 솔직하게는 카페보다는 술집을 많이 갔다. 가볍게 맥주 한잔을 마시고 나오더라도 카페보다는 선술집, 맥주집을 가곤 했었다. 

그 지옥 같은 시간이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요즘 오히려 다시 로스터리 카페를 찾아 조금 더 걷는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있다. 그리고 묻어 두었던 실패의 기억들을 하나 둘 꺼내어 돌아보고 있다. 나는 왜 실패를 한 것일까. 다른 매장에서 눈에 보이는 성공의 요소들을 그때도 모르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왜 나는 실패를 한 것일까. 곱씹고 곱씹어 나를 반성하고 철저한 자기 검증을 마치고 나야 무엇이든 새로 시작하기에 안전할 것 같다. 실패한 나를 돌아보는 것이 부끄럽거나 두렵지 않다. 

객관적으로 실패의 요인을 분석하고 끄집어 내야 고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다. 

방어기제가 발동할 시간도 없이 빠른 찰나에 습관처럼 머신과 인테리어를 둘러보고 들어갔던 카페에서 옛 추억을 떠올리다가 폐인을 되새기게 되면서 오히려 멘털이 건강해진 나를 발견했다. 

남들에게 카페를 접은 이유를 말할 때는 거창했다. 내 탓보다 남 탓이 더 컸다. 

하지만 이젠 내 실수와 내 잘못만 들여다보기로 했다. 

긍정적인 발전을 위해서 말이다. 결코 나를 깎아 내리고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도약을 위해서 터를 다지는 기분으로 말이다. 

나는 반드시 다시 일어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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