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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션펌킨 Dec 06. 2021

Booking Happiness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그 무엇.

소. 확. 행.

내가 행복한가 묻기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다.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 시작한 것도 얼마 전부터이다. 열심히 살고 있었고 그렇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내면 성공한 삶일 것이라 여겼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철이 들수록 답답하기만 했다. 달리고 있는데 왜 달리는지 모르겠고 나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들었다. 

나는 누구를 위해 이렇게 죽을 만큼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한 때는 나를 버텨줄 내면의 힘조차 사라지고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어질 때도 있었다. 내게 남은 무의미한 시간을 과연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지 막연하기만 하던 때도 있었다. 살아내고는 있었지만 내면에는 아무런 희망이나 기대가 없던 때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이 길었다. 인식하지 못했을 뿐 나를 돌보지 않고 그냥 살아내기만 했던 시간이 오래였다. 나의 무기력이 만성이 되었고 이 삶을 빨리 정리할 수 있다면 어떨까를 고민하는 시간이 빈번해졌다. 암흑 속에서 보이지 않는 그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애쓰기조차 버겁게 느껴지던 시기... 내가 노력해도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현실감으로... 잠시 멈춰보기로 했다.

노력하는 것도 멈추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도, 그것이 무엇이든 다 멈춰보기로 했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보고 싶은 영화 실컷보고.

처음엔 부모님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무력한 자식을 지켜봐야 하는 입장을 이해했다. 그런데 그 조차도 해명이나 설득을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나로서는 살기 위한 시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하고 싶은 것들이 하나 둘 떠오르고... 이젠 무기력감으로부터 회복이 되고 있다. 이렇게 내가 행복할 때를 적어 내려갈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아주대 김경일 교수의 강의를 자주 들으면서 소소한 행복에 대한 정의를 배웠고 내 삶에서 하나씩 찾아보기로 했다. Booking Happiness를 일상에서 적용하며 그것을 찾아가는 재미를 부여해 가고 있다. 삶의 의미는 큰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우치기 위해서라도.


라면, 내 취향에 맞는 라면이 따로 있다. 하지만 라면은 언제 어디서든 종류 불문 맛있다. 끓여서 예쁜 그릇에 담아먹는 것도 좋지만 즉석라면은 더 맛있게 느껴진다. 

즉석 떡볶이를 먹을 때의 기다림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어서 다소 귀찮지만 일부러 세팅을 해 보곤 한다. 

어릴 때부터 늘 가족이 많았다. 장남인 아빠는 동생들과 함께 친척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좋아하셨다.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도 진심으로 반기셨다. 소박하더라도 북적이며 여럿이 맛있게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을 행복해하셨다. 그래서 늘 사람이 많은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다. 하지만 가끔 홀로 조촐한 식사를 할 때 나만의 행복을 경험하곤 한다. 혼밥이 외롭지 않냐고 하지만 자주 오지 않는 기회라서 나는 그 시간을 오롯이 즐기고 싶다. 부모님이 부재하여 혼자 끼니를 때워야 할 때면 신난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만들어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중 하나가 라면이다. 

라면을 즐기지 않는 부모님은 어쩌다 귀찮을 때 식사 대용으로 라면을 선택하신다. 혼자 밥을 먹을 기회가 오면 라면을 즐기게 된다. 특히 즉석에서 끓여 먹는 라면은 캠핑을 하고 있는 기분도 들어서 즐겁다. TV를 틀어놓고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물이 끓는 것부터 조리하는 모든 과정을 즐길 수 있다. 꼬들꼬들한 면을 먹기 시작해서 끝에는 퉁퉁 불은 면까지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는 것도 즉석라면에서 경험할 수 있는 팁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침이 꿀떡 삼켜진다. 매번 먹는 메뉴는 아니지만 한 번 먹을 때 라면까지도 맛나게 먹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 산책하는 것, 코로나19 전에는 혼자 어딜 다니는 것이 가끔 신경이 쓰이곤 했다. 삼삼 오오 무리를 지어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늘 혼자인 내 모습이 초라해 보이지는 않을지 주변을 둘러볼 때가 가끔 있었다. 물론 그날의 기분에 따라서 그런 것이지 원래 나는 혼자인 것을 즐기는 성향이 있다. 그런데 요즘은 혼자 다니는 것에 구애받을 일이 없어서 좋다. 

힘겹게 산을 오르고 높은 곳에서 전망을 내려다보는 것은 그 나름의 희열이 있다. 그리고 평지에서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공원을 천천히 걷는 것도 즐겁다. 공원이 크면 클수록 더 좋다. 여러 번 같은 장소를 돌아 걸을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만보 걷기가 유행을 얻으면서 일부러 시간을 내어 공원을 찾아가 걷는 일도 있었지만 평지를 걸을 때는 빠르게 걷기보다 사색하며 걷기가 더 좋다. 풀잎 하나 낙엽 하나라도 들여다보며 사진을 찍고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해 나가는 시간이 나에겐 힐링이 되는 것을 알고 나니 걸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시간을 할애해서라도 걸으려고 한다. 

기둥이 큰 나무들도 낙엽이 떨어지고 있는 기온인데 가늘고 여린 풀이 새파랗게 꽃을 피우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어여뻐서 한동안 들여다보았다. 볕은 따뜻하지만 스치는 바람은 쌀쌀하다. 그늘을 지나칠 때는 옷깃을 여미게 되는 날씨이다. 철마다 피는 꽃이 다르다는 것이 새삼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 40년이 넘게 한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깔끔하게 매장을 유지하고 있는 족발집이 있다. 지금은 어머님에서 아들에게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다행스럽게 아직 그 맛이 변하지 않아서 손님들은 여전히 많다. 그래서 늘 바란다. 어머니의 기술을 잘 전수받아 아들이 운영을 하게 되더라도 그 맛은 변하지 않을 수 있기를. 

족발은 크기가 작은 것이라도 혼자서 먹기는 어렵다. 어쩌다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선뜻 선택할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지인이 동네로 나를 만나러 오겠다고 하면 메뉴 선정에서 우선순위에 놓인다. 

그리고 늘 지인들도 맛있다는 말을 연발하면서 남김없이 끝까지 먹고 간다. 소개한 나도 뿌듯하고 잘 대접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이 식당의 메뉴에 대한 느낌이 좋다. 

부추 무침도 주문 즉시 만들어지고 잘 익은 동치미는 시원함이 극에 달한다. 깻잎장아찌도 고기를 싸서 먹으면 감칠맛이 극대화된다. 야채가 듬뿍 들어있는 막국수도 단독 메뉴로도 인기가 있다. 

족발 고기를 먹고 나서 매콤 달콤한 막국수를 먹으면 새로운 메뉴를 시작해도 될 만큼 깔끔하게 떨어진다. 물론 배가 불러서 더는 음식을 먹을 수 없지만 말이다.

사진을 다시 봐도 즐겁다. 십 년 이십 년 후에도 족발은 이곳에서 먹고 싶다. 그만큼 맛이 변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보는 곳이다. 겉에서 보면 아주 오래된 매장임을 인증해 준다. 내부 인테리어도 젊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구조이기는 하다. 하지만 들어가서 맛을 보면 그 모든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장사를 한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도 저절로 하게 되는 곳이다. 

상품마다 메뉴마다 장사를 하는 방법은 다르다. 고객을 대하는 방식은 모두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주인의 기본적인 마인드, 운영하는 사람의 근본이 이 매장이 품고 있는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물론 시간은 오래 걸릴 수 있다. 그래서 그 인내심마저도 매장은 이미 품고 있다는 것을 가서 경험해 보면 느껴진다. 내가 운영했다가 실패한 카페도 이 매장과 같은 묵직함이 있어야 했다. 그랬다면 시간은 좀 걸렸더라도 자리는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때는 깨닫지 못했을까 아쉬움도 있다. 


산에서 점심과 함께 마시는 막걸리 한잔은 갈증 해소와 허기를 동시에 채워주는 최적의 음료이다. 하산 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과음은 절대 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병은 배낭에 넣고 가서 함께 간 사람들과 조금씩 나눠 마시는 것은 즐긴다. 

그리고 두 번째로 막걸리를 즐기는 기회는 파전과 함께이다. 

김장을 하는 시기에는 배추, 무, 쪽파, 대파 등등 다양한 채소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온다. 날씨도 쌀쌀해지는데 넘쳐나는 식재료를 무심히 넘기기가 아깝다는 생각에 무엇을 해 먹을까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다. 김장 속을 만들고 남은 쪽파와 굴, 오징어 등을 가지고 파전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저녁 메인 메뉴를 파전으로 정하고 나니 막걸리는 옵션이 아니라  세트 메뉴로 따라 나왔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생전에 맛있다고 평가하여 보급화가 빨라졌던 대강막걸리가 마침 집에 있었다. 김치 냉장고에 남아 있던 대강 막걸리가 없었다면 마트에 가서 사 와서라도 곁들였을 것이다. 

부모님과 함께 신선한 식재료로 바로 만들어 먹는 파전, 술안주라고 생각하지 않고 식사 메뉴로 즐기기에도 딱이다. 달달한 제철 쪽파와 싱싱한 해산물로 해물파전을 만들어서 가족들도 신나게 먹었다. 그 기억은 오래도록 행복하게 남을 것이다. 


2021년 겨울 김장김치, 함께 곁들인 수육이다. 식구가 많지는 않지만 김장김치는 많이 하는 편이다. 올해는 시골집 밭에 심어 두었던 배추를 직접 뽑고 손질해서 김장까지 해서 가지고 올라왔지만 즐기는 것은 집에서 하게 되었다. 김장김치는 저장 후에 일정 시간이 지나서 먹어야 더 맛있기 때문에 겉절이 방식으로 양념한 김치를 우선 꺼내 먹는다. 같은 배추에 같은 양념으로 버무리기만 한 것인데 그 맛도 색다르게 좋다. 

그 김치를 즐기기 위해 일부러 수육을 삶아 식사 메뉴로 준비해서 여럿이 함께 즐겼다. 김장하는 날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닌데, 김장하는 날에 유난히 생각하는 메뉴이기도 하다. 생각만 해도 즐거워지는 메뉴다. 


코다리찜, 그 안에 돼지갈비, 우거지 무청.

꾸덕하게 말린 생선은 즐겨 먹지 않는 편이다. 코다리찜, 황태찜, 청어 말린 과메기 등은 찾아서 먹는 메뉴가 아닌데, 올 겨울 뜻밖의 경험을 했다.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기도 했지만 내 입맛에도 딱 맞게 맛있는 집을 발견한 것이다. 식구 중 먹고 싶다는 사람이 있어서 함께 몰려갔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입맛에 맞고 먹고 나서도 기분이 좋았다. 

과메기에 어색한 사람을 위해 돼지갈비도 같이 조리한 아이디어도 굿~. 처음엔 과메기 살을 발라 신선한 해조류와 함께 먹었고, 흰쌀밥에는 갈비를 올려 먹었다. 우거지 무청은 남은 양념에 적셔서 먹기까지 접시에 담겨 나온 음식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싹 비워냈다. 같이 식사했던 모두가 만족하며 먹는 내내 즐거워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집밥만이 좋은 식사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외식의 부정적 이미지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집밥에서 맛있게 만들기 어려운 메뉴는 특히 맛있는 집에서 먹어보는 경험이 중요하다. 코다리찜도 맛집이라고 해서 가 보면 내 입맛에 맞지 않아 두 번 찾아가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엔 가족 모두가 만족하는 식사를 하게 되어 좋았다. 이 집도 코로나19로 타격을 많이 받은 듯하다. 

부디 오래 견뎌주고 팬데믹이 끝나면 더 멋지게 되살아나 주기를 바라본다. 

평지 기온은 0도에서 -1도를 오고 가는 날씨에도 산 꼭대기에서는 땀을 흠뻑 흘리게 된다. 산을 오를수록 기온은 떨어지지만 활동량이 많기 때문에 덥다.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길에 전망 좋은 아늑한 장소를 찾아서 자리 잡고 앉는다. 그리고 배낭에 남은 음식들을 꺼내놓는다. 물론 맥주는 일부러 짊어지고 간 음료다. 하지만 몸 상태에 따라 마실지 말지를 결정한다. 내려가는 동안 다리가 풀려 힘들 것 같으면 마시지 않는다. 안전 산행이 최우선 순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리에 피로도가 견딜만하고 하산 후에도 문제가 없을 것 같으면 마시기로 한다. 특별한 안주도 필요 없다. 전망이 안주다. 함께 마시는 벗과의 대화가 안주이다. 

편의점에서 충동적으로 구매했지만 입에 달게 느껴지는 맥주 한 모금 마시고 그날의 산행에서 최고의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추억을 꺼낼 때마다 이때 먹은 맥주의 맛과 그날의 기분과 함께 바라본 전경을 이야기하게 된다. 그리고 같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된다. 그 기억은 죽을 때까지 공유할 수 있다. 


산을 타다 보면 날씨가 추워도 몸은 땀을 많이 흘린다. 하지만 열기는 금방 식어버리기 때문에 찬 물보다 뜨거운 물을 마셔주면 몸의 피로감이 덜 쌓이는 느낌이 든다. 쉬면서 마시는 뜨거운 커피도 몸을 데워주지만 식사 대용으로 먹는 뜨끈한 라면 국물은 머릿속까지 개운하게 만들어 준다. 

뜨거운 물을 보온병에 짊어지고 가는 것은 힘이 들지만 산 위에서 라면을 먹는 순간만큼은 그 수고로움이 뿌듯하다. 잘했다는 생각만 든다. 이래서 산에 오지~ 하며 감탄한다. 

대량생산으로 만들어낸 라면이 왜 먹는 장소에 따라 맛이 다르게 느껴지는가에 대한 물음은 우문이다. 경험해 본 사람들은 그저 웃을 일이다. 

이 사진을 찍으면서 광고주에게 돈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웃으며 이야기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벗과 함께 크게 웃으며 산에 올 때마다 광고 사진 찍어보자며 의미 없는 농담도 했던 그 기억, 지금 떠올려도 흐뭇한 추억이다.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먹으면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에게 다시 가고 싶은 카페를 찾는 것은 일이었다. 동네 상권조차 프랜차이즈가 가득하니 애정을 주고 싶은 카페 하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무심하게 바라보던 그곳에 굉장히 모던한 인테리어의 카페가 이미 있더란 말이다. 어?! 언제 생겼지??? 하는 궁금증이 생기고 가 봐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매장이 생겼다. 기회가 되면 꼭 가보자 다짐하던 그곳을 드디어 가 보았다. 

혼자 시간을 보내려고 가는 것도 좋았다. 지인이 찾아와도 소개해 주면서도 기분 좋은 카페라서 더 좋았다. 으리으리한 무엇이 있지는 않다. 가구도 심플하고 인테리어도 단순하다. 하지만 앉아있는 내내 편안하고 사진을 찍으면 실물보다 아늑하게 잘 나오는 곳이었다. 

GTX가 지나가면서 정차하는 역사가 지어질 예정이라 동네가 재개발 이야기로 시끌시끌하다. 과연 이곳이 그 후에도 남아있을까 걱정은 되지만 현재를 즐기기로 한다. 

있는 동안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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