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발자 모드 속 마흔여섯 번째 이야기, 강릉 3부
강릉은 ‘카페로사’를 비롯해서 커피로 유명하다. 명소를 찾아다닐 차가 없는 나는 식사하면서 그곳과 가장 가까운 카페를 찾았다. 스키야키를 먹었을 때는 옆집 ‘초딩’ 카페를 갔고,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을 갔을 때는 길 건너 ‘강릉초당두부’를 갔다. 첫 번째 커피숍은 옥수수 푸딩으로 이미 지명했고, 두 번째 장소도 두부 티라미수로 TV에 나온 곳이었다. 비교적 쉽게 유소문한 카페를 방문했다. 옥수수 푸딩과 두부 티라미수 모두 자체 개발한 메뉴라서 서울에서는 맛볼 수 없다. SNS에 올리기 위해 시간 내어 찾아가는 지점을, 우연한 기회에 심방했을 뿐만 아니라 맛까지 좋았으니 일석이조다. 당초 계획은 커피 거리를 가려고 했으나, 너무 더워서 멀리 이동할 엄두가 안 났다. 엄마는 어느 카페를 가든 커피 맛이 좋다면 만족해했다. 여행 주인공이 흡족했으면 되었다.
이번 유람의 키워드는 문학기행과 옹심이다. 둘 다 의도하지는 않았다. 작년 여름 호주에서 동생이 왔을 때 박경리 문학관을 궁금해해서 하동에 갔다. 동적인 여름휴가와 정적인 문학관의 묘한 어울림이 좋았다.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KTX를 타기 전 애매하게 시간이 남아 호텔 근처의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으로 향했다. 하동과 같은 추억을 만들 수 있을지, 기대를 걸었다. 어제 만난 택시 기사님께서 소나무 숲이 시원하다며 추천해 준 까닭도 있다. 기념관은 조그마한 건물 한 채에 홍길동전 저자 허균과 허난설헌의 일대기를 아담한 규모로 전시해 놓았다. 성질 급한 나는 속독하며 빠르게 전시장을 돌았지만, 내 노트북에 물병까지 어깨에 멘 엄마는 천천히 설명글을 다 읽었다.
허난설헌이 태어난 고택은 담벼락이 무척 낮아 담의 존재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좁고 낮은 방 두세 칸을 여러 개의 집으로 나누어 구분했는데, 꼬불꼬불 동선을 고려하지 않은 배치가 답답했다. 방 크기에 비해서 마당이 넓은 점도 이해되지 않았다. 식구가 많아서 방을 많이 만들되 개인별 독립 공간을 보장하고자 구획했는지 궁금했지만, 설계자를 만날 수 없어 의문을 삼켰다. 해가 머리 꼭대기에 있는 12시, 금세 고택을 돌아보고 바로 앞에 있는 소나무 숲으로 피신했다. 조금 전까지 온몸을 감싸던 열기가 바로 사라졌다. 같은 계절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시원했다. 이런 동네에 살면 허균과 허난설헌처럼 타고난 문필가가 아니더라도 후천적으로 필력이 길러질 것 같다. 하물며 조금만 걸으면 창창한 동해가 보이지 않는가. 자연은 대작가도 창조한다.
여행을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끼니다. 산뜻한 출발은 쾌재를 부르는 맛있는 음식에서부터다. 강릉에 도착하기 전 기차에서 엄마에게 물었을 때, 대답은 ‘아무거나’였다. 소득 없이 인터넷을 검색하다 불현듯 옹심이가 떠올랐다. 엄마도 흔쾌히 수락했다. 기차역에 내려 직행한 음식점에서 엄마는 연신 맛있다고 국물까지 한 대접을 다 비웠다. 그리고 또 오자고 말했다. 이제 마지막 날이다. 5시 반 기차를 앞둔 3시, 호텔 앞바다를 급히 눈에 담고 옹심이 집으로 갔다. 이틀 전에도 방문했었는데, 휴무로 허탕 치는 바람에 오늘이 두 번째다. 택시 기사님이 소개해 준 곳이라서 믿음도 컸다. 강릉은 기사님으로부터 얻는 정보가 쏠쏠하다. 문제는 3시 넘어서 점심 먹을 사람은 없을 거란 생각이었다. ‘옹막’에 도착하니 대기 21팀이 있었다. 두 시간 후면 기차가 떠난다. 식사 시간이 길지 않은 음식임을 감안하면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단정하기에 애매했다. 두 시간 남았으니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중간에 빠지는 팀도 있겠지, 자신을 달래며 30분을 보냈다.
‘4시다! 4시 반까지는 괜찮다.’
길 찾기를 하니 강릉역까지 차로 2분, 도보로 8분이 걸렸다. 택시는 잡히는 데 변수가 있으므로 정확한 도착시간을 확보하고자 걸어가기로 마음먹고 4시 50분까지만 기다리기로 했다. 4시 반을 몇 분 앞두고 내 번호가 호명되었다. 급히 앉아서 1분 만에 주문을 마쳤다. 애피타이저는 열무 보리 비빔밥이다. 바람보다 더 맛깔났다. 엄마는 빨리 먹으려면 식은 옹심이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드디어 옹심이를 만났다. 첫날보다 더 맛있다. 엄마는 직접 감자를 갈아 국물을 만든 것 같다며 거푸 흥분했다. 숟가락을 먼저 놓은 내 대접을 보고서는 국물을 남겼다고 안타까워하며 내 국물도 마셨다. 옹심이로 시작해서 옹심이로 끝난 강릉, 삼 연패를 달성한 미식 여행은 막을 내렸다. 2025년 여름, 지미한 강릉의 주인공은 옹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