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발자 모드 속 마흔한 번째 이야기
멜로무비를 마쳤다. 이 드라마는 간간이 마음을 찌르는 대사가 있어 아껴서 천천히 봤다. 시간이 많아진 추운 주말, 어떤 드라마를 볼까 《그 해 우리는》를 다시 틀지 찾다가 동생으로부터 같은 작가의 《멜로무비》를 추천받았다. 둘 다 이나은 작가가 썼다. 전작을 인상적으로 본 터라 궁금해서 보고 싶다가도, 너무 힘이 없는 제목에 망설여졌다. 딱 봐도 멜로드라마 같은데, 심지어 타이틀도 저렇게 성의 없게 지었다. 먼저 본 동생이 강력히 추천한다고 하니 일단 틀고 보았다. 인생의 반 이상을 같이 산 터라 동생만큼 내 취향을 잘 아는 사람도 없다.
드라마에는 두 커플이 등장한다. 현재 연인과 과거 연이 있었던 남녀 이렇게 총 네 사람이 주인공이다. 타이틀에 이어 구도까지 전형적인 멜로 형식을 완벽하게 갖췄다. 10부작에 걸쳐, 타인에서 서로의 애인이 되는 과정과 커플에서 남남이 되는 여정을 전개한다. 극이 전개될수록 심금을 울리는 장면이 나오면서 몰입하기 시작했다. 만남과 이별의 경험이 모두 다 있는 나로서는 현실감 있는 대사가 나올 때마다 뒤로 가기를 누르면서 돌려봤다. “너, 나 잘 아는 거 아니야. 나도 너 잘 몰랐고. 그러니까 우리가 헤어진 거야.” 특히, 과거 연인이었던 손주아와 홍시준의 재회 이야기는 재회를 향한 기대와 우려의 심정을 모두 가지게 했다. 과연 이 둘은 어떻게 될까. 다시 만나면 해피 엔딩이지만 공감하지 못할 것 같았고, 이별하면 내 이야기처럼 느껴져 씁쓸할 것 같았다.
그들은 마지막 회에서 완벽하게 헤어진다. 과거의 연인을 그리워했던 그는 계속 과거를 회상하지만, 그녀는 그를 단념시킨다. 이미 지나가고 변해버린 마음은 노력으로도 되돌리지 못한다. 극의 마지막 무렵, 홍시준의 음악을 들으며 즐거워하는 손주아의 장면이 마음속 깊게 맺혔다. 연인으로서는 끝이지만 팬으로도 응원하는 그녀를 보며, 나도 어서 그런 마음이 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앞으로 남겨진 주말은 고겸의 대사처럼 순간을 꽉꽉 채우며 살아야겠다. “삶의 온갖 순간들이 인생을 길게 만든다는 걸. 그래서 이제는 놓치는 거 없이 순간을 다 살아보려고요. 삶은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니까.”
3개월을 안 놓치려고 쉼 없이 달렸다. 특히 저번 주가 제일 바빴다. 회사에서 월화 이틀 연속으로 강의가 있어 16시간 동안 말했다. 집에 와서는 소설 마감하려고 밤늦게까지 창작열을, 수목은 월화에 못 했던 일을 쳐내느라 야근 열을 태웠다. 금요일에는 국제도서전도 다녀왔다. 영상에서 봤던 인원보다 훨씬 많은 관람객이 있었다. 평소 말수가 적고 내향형인 내가 일주일 내내 떠들고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도서전에서 기력이 다했다. 그럼에도 불금은 놓칠 수 없어 한의원에 들렀다가 친구까지 만났다. 마지막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따끈한 침 기운이 필요했다. 다음날 바로 독서토론 모임에도 다녀왔다. 이때부터였나 보다. 분명 주말에는 침을 맞지도 않았는데 왼쪽 뒤통수를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나타났다. 병원을 가니 거북목이 원인이었다. 진통을 줄이기 위해서는 고개를 하늘로 들고 있어야 하는데, 이 자세에서는 글을 쓸 수가 없다. 연재를 시작한 3월 말 이래 처음으로 약속한 발행 요일을 못 지켰다. 그렇게 화요일을 보내고 나니 허전함이 컸다. 여전히 두통이 가시지 않았지만, 그래도 키보드는 칠만하다. 감사한 마음으로 연재를 다시 이어간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우리 이제 좀 대충해요.”
“대충해요. 이제 좀 쉬었다가 해요.”
“이젠 나를 좀 토닥일 시간이에요.”
〈대충해요〉 커피소년이 나한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