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펀딩이야기 #4
2021년 5월은 저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던 달이에요. 기숙사, 셰어하우스, 부모님 댁. 늘 온기가 느껴지는 공간을 떠나 혼자의 체온으로 공간을 채워야 하는 독립을 시작했습니다. 익숙함을 버리고 긴장감을 가진 채 새로운 일을 배우기도 한 달이죠. 묘한 떨림이 있는 5월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스트레스가 겹겹이 쌓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주말이면 마음속 허기를 채우기 위해 나갔습니다. 그날은 제가 좋아하는 농부시장 마르쉐를 갔습니다. 마늘 큐브 같은 흙판에 아가 머리만큼 자란 초록 떡잎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서울 혜화에서부터 울산 옥동까지 블루베리 묘목을 옆구리에 끼고 간 전적이 있었던 저에게 그 큐브 하나를 도시락통에 넣어 집에 들고 오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블루베리 묘목을 단기간에 죽여버린 킬러 이력 또한 있었기에 이 떡잎도 금방 죽겠지 싶어 작은 테이크아웃 잔에 대충 옮겨 심었습니다. 그리고 이름은 순이라고 지었습니다. 고수 모종이었거든요.
일상에서 성장과 성취를 느끼기 어려운 사회 초년생이라 그랬을까요. 그 욕망을 순이가 대신 채워주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위로 옆으로 풍성해지는 순이를 보면서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이 작은 초록 식물이 뭐라고 의지까지 하게 되더군요. 반려 식물이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 트렌드에 공감했습니다.
머릿속 관심 파트에 식물이 생겼습니다. 그다음에는 식물의 옷, 화분에 눈이 갔고요. 그래서 이전이라면 그냥 지나쳤을 오아지앙 토분 프로젝트가 오픈되고, (감각있는 가드닝을 위한 온 오아지앙 순수 흙 토분 2021. 6. 15 ~ 2021. 7. 1)에 물 흐르듯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옷보다 몸집이 커진 순이에게 새 옷이 필요했거든요. 저에게 성장의 맛을 선사해 주는 순이에게 좋은 옷을 입혀주고 싶었습니다.
스토리 속 토분의 모습은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세상의 모든 생물체의 모태는 대지이고,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와서 그럴까요. 비슷한 듯 미묘하게 다른 흙색들이 심리적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질서와 무질서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구도, 토분을 더욱 신비롭게 만드는 배경색이 웅장한 느낌마저 주더군요. 그 사진 한 장으로 펀딩을 마음먹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키가 크거나 작거나, 덩치가 있거나 왜소하거나. 사람들은 각자 편하고 어울리는 옷이 있잖아요. 오아지앙 스토리를 읽으면서 “그렇지 식물도 그렇겠군” 생각이 들었습니다. 뿌리가 길게 자라는 식물에게 적합한 것, 뿌리가 얕고 넓게 자라는 식물에게 알맞은 것. 보너스로 새소식에는 네 가지 토분에 깜찍하게 담긴 여러 식물의 모습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얼마나 귀엽던지, 집만 조금 컸더라면 모든 종류의 토분을 세트 펀딩 했을 겁니다.
몸짓이 커진 고수를 위한 토분이라 제일 중요한 것은 크기였습니다. 사이즈가 친절히 설명되어 있었지만 공간지각 능력이 부족한 탓에 감이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수로 향했습니다. 마침 공간 와디즈에서 전시를 하고 있었거든요.
펀딩의 짜릿함은 언제 올지 모르는 배송이지요. 테이크아웃 잔에 있기엔 비대해진 순이를 불쌍히 여겨 참지 못하고 더 큰 플라스틱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순이는 점점 고개를 숙이더니 새로운 옷이 도착하기 전에 땅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지금 순이의 것이 될 뻔한 황토색 화분에는 독구리난이 심어져 있습니다. 이름은 ‘근’이에요. 뿌리가 두더지처럼 빼꼼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근이에게 물을 줄 때면 그 주변에 흙 내음이 퍼집니다. 서서히 위에서부터 진해지는 토분의 색깔과 함께 말이죠. 보고 있노라면 괜히 비 온 날 땅을 보는 것처럼 차분해집니다.
펀딩이 종료된 후, 자사몰에서 다른 색의 작은 토분을 하나 더 구입했습니다. 복랑금(이름 : 해삐)이 그 자리를 스쳐 지나갔고 지금은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네요. 날이 따뜻해지면 비어 있는 그 공간을 채우러 갈 거예요. 제 마음도 더 채워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