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종류
요즘은 다들 첫 만남의 MBTI를 물어보는 게 관례인가 봅니다. 이번에 새롭게 옮긴 직장에서 여러분을 만나면서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저도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힘들지만, 그래도 예전에 아르바이트를 할 때나 일을 할 때면 기본적으로 '취미가 뭐예요?', '어디 사세요?' 등등 여러 질문을 먼저 하고 천천히 그 사람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면, 요즘은 그저 'MBTI가 뭐예요?'라고 묻고 그 속에 있는 종류에 사람으로 못 박아두고 관계를 시작과 동시에 끝내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점이 나쁘기만 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노출하고 싶지 않은 여러 나만의 정보를 타인에게 공유하지 않고 알파벳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어 바쁜 현대사회 속에서 굉장히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런 질문들이 사회생활 속에서만 작용했으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교우관계나, 연인관계, 심지어는 가족관계에서 MBTI는 좋은 질문과 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사회 속에서 속도와 효율성을 이제는 빼놓고 무언가를 형성하고 얘기한다는 거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거..그..그치만 사람은 효율성으로 움직이는 프로그램이 아니기에 보다 조금 감성적으로 다가가는 관계를 선호합니다.
매일 겨울을 그리워하는 당신과의 통화 속에서 저는 파도였고, 당신은 호수였습니다. 저는 언제나 쉼 없이 파도가 밀어오는 감정과 생각, 그리고 파도가 지워내는 모래사장 같은 사람이지만, 당신은 피는 햇살과 지는 햇살 속에 윤슬을 머금고 있는 호수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이런 사람이다는 것을 알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서로 함께하며 차근차근히 나만의 이야기를 풀어나갔습니다.
과연 우리가 MTBI, 효율성, 속도만을 중시하며 관계를 유지했다면 달라도 너무 다른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접점이 있었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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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당신에게 파도처럼 밀려가고, 당신 언제나 호수처럼 잔잔히 태양을 비추어 윤슬을 만드는 사람이지만 서로가 달라도 너무 다르지만 알아가고 이해해 간다는 게 어렵고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썩 기분이 나쁘지 않고 오히려 즐겁습니다. 누군가 한 명이 희생하는 것이 아닌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 새로운 생태계를 형성하는 기수역처럼, 빨간색과 파란색이 만나 보라색이 되어가는 거처럼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기분이 좋습니다. 그저 당신이 좋습니다. 그런 당신도 나를 좋아해 줘서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