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살아간다
솔직히 처음으로 쉼터에 입소했을 때, 많이 긴장되었던 건 사실이다. 불량한 아이들이 있으면 어쩌지?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따위의 걱정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기우로 밝혀졌는데, 알고 보니 청소년 쉼터에는 자체적으로 지켜야 할 규율 등이 있더라. 이는 쉼터생 간의 폭력을 방지하고, 더 장기적이고 안전한 쉼터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특히 청소년 쉼터에는 기본적으로 ‘선생님’이 상주한다. 아침에는 사회복지사 분들이 출근하고, 퇴근 후에는 저녁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돌보는 구조였다. 따라서 문제의 여지가 있는 아이들의 행동을 예방하고 사건이 발생했을 시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구조가 갖춰져 있는 셈이었다.
청소년 쉼터에 입소하기 위해서는 선생님과 상담을 해야 한다. 이는 정말 도움이 절실한 아이에게 복지 수혜를 베풀기 위해서였고, 나는 담담하게 내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이 그러셨다.
‘이 일을 하다 보면 부모 같지 않은 부모를 정말로 많이 듣게 된다.’
다행히도 나는 쉼터에 합류하게 되었다. 쉼터에는 온갖 인간군상이 모여든다. 평범하게 삐뚤어진 사람도 있지만 좋은 척하고 타인을 착취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쉼터생들은 나름의 벽을 치고 상대를 대한다. 이 사람과 친해져도 내가 상처받지 않을까, 혹시라도 상대방이 나쁜 마음을 먹지는 않을까를 걱정하는 것이다.
예상외로 평소에 갖고 있던 독서라는 취미가 도움이 된다. 혼자서 묵묵히 책을 읽는 내 모습이 신기했는지, 쉼터생들의 관심을 끌어들였고, 호기심에 다가온 이들로 인해 쉼터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
내가 거주한 청소년 쉼터에는 침대 따위는 없어서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잠을 청했다. 밤이 된다고 아이들이 잠을 자겠는가? 자기들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눈다.
당연히 초유의 관심사는 신입생이었던 나였고, 내가 어떤 일로 여기에 왔는지 어떤 사람인지를 아이들은 내심 궁금해했다. 이 모습에 질색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건 자신들의 아픔을 공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서 서로를 받아들이려는 하나의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강압적인 분위기도 아니었고, 오히려 먼저 다가와줘서 인사해 준 쉼터생들이 고맙다. 여러 아픔을 가진 아이가 있었다. 그중에 가장 기억나는 아이는 ‘민수’였다.
먼저 내게 다가와준 고마운 민수는 한 명은 체육관을 다니며 운동을 하는 아이였다. 나중에는 체육관을 차리고 싶다는 멋진 꿈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민수의 가장 멋진 꿈은 언젠가 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형제들에게 구박받고, 아버지에게 아르바이트비를 갈취당하는 상황이면서 꿋꿋하게 꿈을 꾸는 민수.
비록 자신이 선택하지 못한 가족은 내게 아픔이 되었지만, 내가 선택할 가족들을 위해서 살아가겠다는 건 너무나 멋진 일이 아니었는가. 청소년 쉼터에는 이런 멋진 아이도 있다.
청소년 쉼터는 단순히 도망치기 위한 장소가 아니다. 아이들이 생계에 허덕이지 않게 만들어 아이답게 꿈을 꿀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보금자리다.
하지만 물론 보금자리라고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