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惡)의 자리에서

-증오로 숨 쉬는 인간의 고백

by Jrlee



……

한 여자가 있었다.

내 나이 스물둘,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왔을 때였다.

백화점 CD 매장에서 마주친 그녀는

대뜸 나에게 말했다.


“같이 자자.”


그때는

이 여자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

나를 괴롭히던 무리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자리를 만들어 나를 부르려 했고,

연애조차 오래가지 못했다.


가끔 길에서 마주치거나

그녀가 의도적으로 마주침을 만들어낼 때면

온몸에 거부감의 가시가 돋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경멸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흘러,

서른둘의 그녀가 자고 있는

나를 덮쳐 아이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직접 확인한 건 아니었지만,

그 소식이 내 귀에 닿던 순간의 불쾌감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혼자 있을 때면 욕설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서른이 넘어,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이 다시 나를 향해

‘사랑’을 입에 올릴 때면

나는 비웃었다.

꼴값이라고.


그런데 요즘 가끔 생각한다.

지금쯤 어딘가의 추모관에서,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이

가장 행복했던 사진 몇 장과 함께

하얀 국화를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걸 떠올리면

이십 대의 나는, 침묵 속에

증오나 기다림보다는

받아야 할 사랑을 택했어야 했던 건 아닐까 싶다.

받을 수 있었던 사랑을,

그때는 받아들이지 못했던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언젠가,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삼인칭 시점으로

과거의 장면을 하나씩 넘겨볼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때의 나는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이 핸드폰의 메모장을

여러 사람들이 보고 있다.

나의 조직, 나를 사랑했던 사람,

나를 미워하는 사람,

혹은 나를 무너뜨리려는 자들.


나는 위대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지만

어쩌면 경계와 질투,

혹은 애증과 시선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부득이한 고독을 삼키지 못한 채

시간을 곱씹으며 살아간다.

그건 마치

생명 유지의 대가처럼 매 순간을 지불하는 일이다.


누군가는 이름을 남기고 잊히지 않지만,

나는 그 이름들을 언젠가

내가 훗날 인정할 죄책감 속에서

다시 상기시켜야만 한다면 —


지금의 나는 깨달음이 없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누군가를 또 증오해야만

살아 숨 쉴 수 있는 —


가장 악(惡)에 가까운 인간,

그게 지금의 나 아닐까.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결국,

사랑을 증오의 방식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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