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모밀 한 그릇 위에 남은 계절의 체온
집 근처, 걸어서 오 분 거리의 돈까스집 백소정.
간만에 들어온 민생 쿠폰으로
늘 먹던 돈까스와 모밀 세트를 시켰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시원해야 했던 냉모밀이 차갑다.
이에 충치가 끼었나 싶다가도
꽤나 둔한 나조차 느낄 수 있었다.
여름이 우릴 지나쳤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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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나를 지나쳤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7월의 이직과 함께 이사한 오래된 자취방이 떠올랐다.
고장 난 에어컨을 보고 급히
쿠팡으로 주문한 선풍기,
밤 열 시쯤 잠이 오지 않아
설빙으로 달려가 혼자 빙수 하나를 시켜 먹던,
그 ‘지나쳤던’ 올해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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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울 수도 있지만
멋 부릴 수 있는 계절,
길바닥에 과자처럼 바삭해진 낙엽을 밟으며
걷는 재미로 하루를 채울 수 있는
가을이 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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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득 생각한다.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의식조차
잊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저 일상에 젖어,
하루하루가 조금은 건조해졌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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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이사 온 오피스텔에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를 난방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건
행복한 일이야
어쩌면
마지막으로 즐기게 될 너란 선물이
사실은 지나쳤던 여름이 남기고 간
작은 온기였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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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여름이 내게 남긴 건,
엇나간 사랑보다 지금의 나였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