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 직각으로 휘어진
구석진 벽 앞에
거울을 놓지 말았어야 했나.
나의 울부짖음을 기억한 거울에
비친 나의 옆모습은
어쩔 때는 차분해진 내가
스스로 창피하다고 느낄 무렵의 얼굴이다.
그래서 나는 걸어서
어딘가로 향한다.
더 이상 울부짖지 않기 위해.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호수공원에서 러닝을 하고,
어쩔 때는 음악을 만들거나,
지금처럼 글을 휘갈기거나.
어쨌거나,
아무도 모를 피치 못할 예술을 할 때면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처럼
어쩌면 시간여행을 계획한 걸지도 모른다.
그건 인류의 탄생이나
거창한 역사가 아니다.
나란 인간이
여태 걸어오거나,
혹은 뛰어오거나,
잠깐 누워 있거나,
어쩌면 누군가를 곱씹거나 하는—
그런 과거 속에서 요동치듯이,
소용돌이처럼 휘말려 가는 감정의 결 속에서
가끔 안정을 취하고 싶은
태풍의 눈으로 그것을 바라볼 때면,
다 큰 어른의 울부짖음은
공허한 선율,
공허한 거울,
공허한 거품이
터질 듯한 고요한 서늘 속에서 머문다.
다른 이들을
적당한 거리에서만 취하고,
입을 웅얼거린다.
그게 진짜 나다움이라는 걸 알았을 때,
가슴속 상처가 문제인지,
그냥 받아들여야 할 나다움인지.
어쩌면 나는
답을 찾기 위한 이런 의문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는 정말로,
거의 다 왔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