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에 갈까요’, ‘달이 아름답네요’와 같이 사랑한다는 말을 사랑이라는 단어를 담지 않고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까. 사랑한다는 말을 이렇게 둘러서 얘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한다 말하기 쑥스러워서 빙빙 돌려 얘기하는 것일까. 너무 잦은 사랑 고백에 익숙해지기 전에 변화구를 만들어 주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큰 감정 표현이 없어서 나의 언어로 만들어낸 것일까.
감정이라는 것은 참 모호한 것이다. 그 감정에 대한 정의는 있지만 형상은 없으며 같은 감정을 얘기하지만 각각의 사람마다 그 감정을 이야기하는 상황이나 그 감정에 대한 크기와 기준이 다 다른 것이니. 특히나 ‘사랑’이라는 감정은 사람마다 느끼는 크기와 방식의 차이가 매우 크다고 생각된다.
“당신이 생각하는 사랑의 최대치는 어디까지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귀찮음을 마다하는 것.”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실제로도 상대가 웃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굳이 굳이 약속 전에 꽃을 사러 갔고 상대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3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봤으며 내일의 일정은 신경 쓰지 않고 상대와 한 마디라도 더 나누고 싶어서 밤을 새운 적도 있으며 상대가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상대의 선호도에 나를 끼워 맞췄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다,
물론 누군가는 나의 사랑을 보고 “사랑하는 상대에게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 폄하할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사랑에 눈먼 주책.”이라 질색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저 행동 하나하나에 내 가장 큰 애정을 담아냈었고 이 마음이 온전히 상대에게 전달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하지만 이렇게나 큰 사랑을 가진 내가 먼저 마음이 뜰 줄 누가 알았을까. 상대에게 다 맞춰주는 것이 사랑이라 생각한 나는 금방 지쳐버렸고 짧은 기간의 연애를 끝마쳤다.
이렇게 사랑만큼 모순적인 감정이 어디 있나. 사랑하니까 배려하고, 사랑하니까 싸우고, 사랑하니까 아프다는데 참으로도 모순적이지 않는가. 이렇게 보면 사실 모든 사랑은 애정에서 비롯된 착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 때가 있다. 좋으면 좋은 거고 행복하면 행복한 거지 사랑이라는 극도로 애틋한 감정을 느끼면서 애달픔과 슬픔을 동시에 느낀다는 것이 아직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만 이 세상에서 사랑을 하는 모든 이들이 상대의 사랑을 과장이나 오해 없이 주는 만큼 받아들이고 상대의 사랑의 크기를 이해하며 사랑했으면 좋겠다. 상대가 주는 사랑의 크기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 사랑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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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당신에게 사랑이라는 단어 없이 사랑을 표현할 말을 찾다가 결국 사랑한다고 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