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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영 Jul 22. 2024

크리에이티브 직종, 그 업의 끝은 무엇일까?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듣기 싫은 이야기인데, 안 들을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짧은 인사말을 남기고, 이런저런 이유로 한 해 몇 명 정도의 정든 사람들이 떠나간다.


펜타클의 업계 입지가 어느 정도인지 수치화되어 있지 않으나 해마다 지원자의 숫자나 기업의 인바이팅 수가 늘어나는 것으로 보아 평판의 추세선은 우상향 하는 듯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은 펜타클을 떠나는 사람들이 가고자 하는 회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곳은 기업의 마케팅 부서일 수도 대기업 계열의 광고대행사일 수도 있다. 

동료들은 어떤 커리어 패스를 그리며 이직을 하는 것일까?

나의 경우에는 이직의 경험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네 곳의 회사에서 일했지만 그 중 두 곳에서 보낸 세월이 22년이다. 

여러 사람들이 파이어족을 꿈꾸지만 조금 생각을 바꿔 보자면 우리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사실 유한하다. 

길게 본다고 해도 30년 정도다. 그러니까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유한하다는 거다.

그러니 면접 준비가 아니어도 한 번쯤, 나의 10년, 20년, 30년 후의 모습을 그려보는 걸 추천하고 싶다. 

광고대행사의 AE라면 광고대행사를 떠나 기업의 마케팅 부서에서 일할 수 있다. 

하지만 크리에이티브 직무라면 선택지가 매우 좁아진다. 

제일기획 같은 대기업 계열의 광고대행사를 간다고 해도 결국 그곳에서 정년퇴직을 맞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좋은 실력으로 많은 난관을 이겨내고 CD나 ECD가 된다 해도 정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큰 기업일수록 인력의 효율적 활용은 시스템화되어 있다. 여기에 '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연봉은 높아지지만 아이디어를 내는 능력은 낮아짐을 뜻한다. 기업들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많은 연봉을 받으면서 그에 합당한 기여를 하지 못하는 사람을 계속 고용하는 기업은 없다. 물론 연봉을 높게 받으면서 아이디어를 내지 않고 오래 다니는 방법도 있다. 탁월한 리더십으로 조직을 이끌면 된다. 


예전과 달리 임원의 나이가 젊어지고 있다. 빠르면 30대에도 제작부서 직원들이 꿈꾸는 CD가 되기도 하고 40대에 임원 CD가 되는 케이스도 많다. 50대는 되어야 임원을 달던 과거와 달라졌다. 대기업 임원의 재직 기간은 통계적으로 3.6년이다. 많은 경우, 임원이 되었다는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임원 자리에서 잘린다. 운이 좋거나 좋은 라인을 타거나 탁월한 성과를 낸다면 당연히 더 오래 자리를 지킬 수 있다. 하지만 통계는 그런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상상을 해보자. 실력을 밑천 삼아 큰 광고대행사에 들어가고, 운 좋게 30대에 CD를 달고, 40대에 ECD가 되었지만 몰려오는 젊은 능력자들에게 밀려 50대에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면 그다음은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젊은 후배 동료들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니 생각해 본 적 없고, 당연히 상상도 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겐 경험이 없어 나의 경험담을 들려줄 수 없지만 그런 케이스의 동료들은 많이 보았다. 

대기업 계열의 좋은 대행사에서 10년을 넘게 근무하고 CD나 ECD가 된다고 해도 그 시간을 계속 지속시키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일반적인 기업에 비해 우리의 일이 늘 트렌디하며 새로운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쩔 수 없이 후배들에게 밀리게 되며 입지는 좁아진다.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퇴사를 하면 갈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대부분의 CD들은 그동안 일감을 주었던 프로덕션의 기획실로 가거나 프리랜서의 길로 들어선다. 

창업을 하거나 다른 업을 잘 찾아가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그런 확률 역시 높지 않다. 

프로덕션의 기획실이나 프리랜서의 삶도 나의 업을 연장하는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더 훌륭한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지만 나의 향후 커리어 패스의 계획은 이렇다. 


1. 현업에 있는 동안 펜타클을 더 실력 있고 유명하고, 강한 회사로 만든다. 

2. 늦지 않은 순간 나의 자리를 후배들에게 물려준다. 

3. 펜타클 광고&마케팅 아카데미를 만들고 학장으로 취임한다. 

4. 브런치에 써왔던 글을 바탕으로 메인 커리큘럼을 만든다. 

5. 펜타클 현업 팀장들을 강사로 초빙해 강의 도움을 받는다.

6. 좋은 인재는 펜타클에 입사시켜 펜타클을 더 좋은 회사로 만든다. 


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나의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 나도 알 수 없다. 

힘이 남는 시간까지 오래오래 광고, 마케팅 분야에서 기여하며 일하고 싶다는 생각의 결론일 뿐이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회사가 나의 생각을 받아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 믿음의 근거는 무엇일까?

펜타클에 들어오기 전 나에게는 2가지 선택권이 있었다. 

기업의 CMO 자리로 이직하는 방법과 작은 광고대행사에서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나는 후자를 택했다. 연봉이나 처우등은 보잘것 없이 줄어들 것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 회사를 나의 마지막 회사라 생각하며 이직했다. '효율에 의한 인력 관리'라는 대기업 시스템이 적용되지 않을 것이란 기대와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내 존재를 더 커 보이게 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대기업의 임원자리가 3년 정도'라는 통계치도 나의 결정에 영향을 줬다. 

만약 40대 초반의 나의 결정이 또 다른 대기업의 임원이었다면, 언제 잘릴지 모를 불안과 경쟁을 이기지 못한 이직의 반복이었을 거라 짐작한다. 미래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하는 그런 삶.




광고대행사에서 카피나 아트디렉터 같은 크리에이티브 직무를 하고 있다면 현실적인 커리어패스를 고민하고 이직을 감행하는 게 좋다고 조언해주고 싶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당장의 멋지고, 있어 보이는 삶도, 계속 지속되지 않는다. 어렵고 힘든 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광고를 좋아한다면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이 업을 하고 싶다면 '대기업 종대사에 가는 것'이 좋은 경험일 수 있으나 인생의 목표가 되지 않아야 한다. 

'신입이 거쳐가기 좋은 회사' 라며 누군가 펜타클에 대한 평을 써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나에겐 오히려 크고 좋은 회사들이 거쳐가는 회사였다. 그리고 지금의 회사가 마지막 회사라 생각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조언하자면 대기업 종대사의 꿈이 없고 지금의 회사가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면 그곳 보다 좋은 곳은 없을 것이다. 물론 인정받는 실력을 갖추어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대기업 종대사의 꿈이 있다면 빠르게 경험하고 늦지 않은 나이, 여전히 실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시장이 나를 받아줄 수 있을 때 나와야 한다. 대략의 나이로 치자면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 정착할 회사를 찾기를 바란다. 대기업의 시스템과 달리 나의 실력과 기여로 오랜 시간의 정착이 가능한 회사를 찾아야 한다. 선택의 시간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그런 회사를 찾기 힘들어진다. 광고대행사가 45세 이상의 새로운 사람을 뽑는 일은 흔치 않다. 대기업의 안정과 연봉이라는 단맛에 취하다 보면 그 시간을 놓쳐버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앞에 이야기한 것처럼 그 단맛을 계속 보장받을 수 없다. 


아직은 너무 먼 이야기겠지만 변하지 않는 진실은 '시간은 흘러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일에도 끝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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