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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영 Jul 15. 2024

광고 전략의 두 가지 역할

대기업에서 광고주로 일할 때 나는 감성적인 사람이라 평가되었다.

감성적이라는 기질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윗 분들에게 장점으로 어필되지 않았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업무에서 감성적이나 감각적인 생각들은 분명 강점이 되었다. 

그래서 당시의 나는 약간 억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감성적인 것을 이성적으로 팔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감각적으로 맞다고 생각하는 방향이나 아이디어를 팔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주관적 생각을 객관화 시키는 것이었다. 나는 나만의 생각을 남들도 동의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데이터나 성공했던 과거의 사례, 저명한 누군가의 증명된 주장이 될 수도 있다.

대부분 정성적인 것보다 정량적인 것이 잘 통했다.

아이디어에는 정답이 없다. 그러다 보니 정답에 가까운 숫자를 제시하는 것이 언제나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 문제는 이 숫자를 찾아내고 만들어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이었다. 





광고대행사에 와서 놀란 것은 감성적이라 평가받던 내가 가장 논리를 중요시하는 사람이 된 것이었다.

'논리가 뒷받침되지 않은 생각을 팔 수 없다'는 오랜 시간의 체득이 광고대행사 동료들에겐 낯설었을 것이다.

캠페인 부문을 맡았던 초기, 광고주에게 설득 가능한 전략의 필요성을 설파하면, 동료들은 답답해했다.

동료들은 전략의 틀 때문에 재미있는 광고, 하고 싶은 광고를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의 제안은 여러 광고주의 호응을 받았다. 경쟁 대행사와 차별적인 전략은 수주에 좋은 기여를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좋은 전략이 좋은 크리를 만들고 제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바뀌게 되었다. 



광고주 시절 대행사들의 광고 PT를 보면서 의아해한 것이 하나 있었다. 

전략과 크리에이티브가 따로 놀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전략의 방향이 좋아서 좋은 크리에이티브를 기대했는데 방향과는 다른 생뚱맞은 광고 안을 보거나, 전략은 그저 그런데 크리가 기대 이상으로 좋을 때를 여러 번 경험했다. 왜 전략과 크리의 갭 차이가 존재하는지 당시에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대행사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보통의 광고대행사는 기획과 크리의 조직이 매우 선명하게 나뉘어있다. 두 조직의 리더가 다르고, 역할도 다르며 생각에도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 보통의 기획팀은 누구보다 광고주의 생각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광고주가 원하는 광고의 전략 방향을 잡아 크리팀에게 전달한다. 누구나 인정하는 좋은 전략 방향이 나올 때는 괜찮지만 문제는 크리팀이 방향성에 동의하지 못하는 전략이 나올 때다. 대행사마다 어떤 조직의 입김이 강하냐에 따라 기획의 방향 대로 갈지, 크리의 독자적 방향으로 갈지 힘겨루기가 발생한다. 전략과 크리의 삐그덕 거림은 그런 과정의 불순물 같은 것이었다.



AP팀이 없는 광고대행사의 기획팀은 광고의 전략 방향을 만들어주는 것이 존재 이유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크게 생각하면 기획팀의 존재 이유는 광고주에게 우리의 생각과 크리를 잘 설득해 팔아 내는 일이다. 크리팀도 동의되는 좋은 전략 방향이 기획팀으로부터 나온다면 당연히 그 방향대로 크리에이티브를 만들면 된다. 그런데 일이 꼭 그렇게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전략 방향과 다름에도 불구하고 좋은 크리가 만들어질 때가 있다. 

보통의 기획팀은 이런 경우 자신들의 방향과 다른 크리에이티브가 불편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궁극적으로 기획팀의 존재 이유를 '좋은 크리에이티브를 광고주에게 잘 파는 것'이라 생각하면 기존의 전략을 고집하기보다 좋은 크리에이티브에 맞는 새로운 전략을 짜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


광고주 시절 전략과 크리의 간극이 존재하는 프레젠테이션을 경험했던 것은 기획과 크리의 힘겨루기가 해결되지 못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두 조직의 힘겨루기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기획과 크리가 다른 생각을 갖고 부딪혀 뜨거운 스파크를 내는 일은 건강한 일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언쟁이 높아지는 일도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조직의 힘겨루기 차원으로 생각하느냐, 좋은 크리에이티브를 만드는 과정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매우 달라질 것이다.  

후자에 방점을 찍게 되면 궁극적으로 좋은 결과물의 합의점을 찾아낼 수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좋은 전략의 선행과 후행적으로 탄생하는 좋은 크리'는 이상적 결과물이지만 '좋은 크리에 맞는 전략 방향의 수정' 역시 결과적으로 완벽한 제안의 방법 중 하나다. 흔치 않지만 좋은 크리에이티브 아이디어는 그 자체를 전략화 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좋은 기획 방향에 대한 확신이 선다면 고집이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기획팀은 더 열려 있을 필요가 있으며 따라서 최초 전략방향성을 너무 타이트하게 전달하지 않을 필요도 있다. 그로 인해 전략 방향성을 뛰어넘는 새로운 방향의 크리가 나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온 크리에이티브를 잘 팔 수 있도록 전략을 조정하고 새로 만드는 것도 기획팀의 역할이다. 


NHN 한게임의 PT를 준비하면서 여러 전략방향을 고민한 적이 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전략방향의 틀이 된 것은 크리팀에서 나온 단어 하나였다. 당시 유행했던 드라마 '카지노'의 호구형이 등장해 자신처럼 호구가 되지 않도록 카드 플레이 방법을 가르쳐 주는 공간을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 공간의 이름이 '호구와트'였다. 이 단어 하나는 한게임 대회를 거대한 놀이공원처럼 공간화 하자는 전략의 시작이 되었다. 결국 '한판쳐(한게임 판타스틱 어드벤처)라는 공간 구성 전략을 만들었고 이는 실제 캠페인화 되었다.   




좋은 전략 방향에 맞는 좋은 크리에이티브의 개발도 답이 되지만, 좋은 아이디어를 잘 팔 수 있는 전략 방향의 개발고  수정도 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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