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이 아니면 죽어도 안된다'
중학교 2학년이 되자 생애 최초의 스마트폰 구입을 앞둔 중학생 아들은 기필코 아이폰을 고집했다. 아들이 아이폰을 고집한 이유는 당연했다. 또래 집단 대부분이 아이폰을 쓰기 때문이다. 갤럭시 폰을 쓰는 아이들을 무시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조금이나마 저렴한 폰을 희망한 나의 기대는 아들의 바람에 밀렸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기능적으로는 갤럭시가 더 편리하다. 통화녹음 같은, 갤럭시에서는 평범한 기능의 도입에도 아이폰 사용자들은 열광한다.
어쨌거나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애플 생태계의 편리함, 혹은 애플 브랜드가 주는 삼성과는 다른 이미지의 가치를 소비자들은 구매한다.
소비자는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많은 이론들이 있다.
한정된 인지 능력으로 인해 모든 대안을 통한 합리적 선택보다, 만족할 만한 정도의 결정만을 내리거나 손실 회피 경향으로 인해 실제 이익보다 손실을 회피하는 감정적 소비를 할 때도 있다.
소비자들이 물건을 구매할 때 심리적, 감정적, 사회적 요인들이 작동하면서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을 하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대한민국 도심의 제한속도는 50km로 낮아졌고 고속도로 역시 110km의 속도로 제한되어 있지만 포르셰는 한국에서 1만 대 이상의 스포츠카를 팔고 있다.
웹서핑과 문서 작업만을 위해 맥북을 사는 것은 매우 큰 낭비라고 생각할 테지만 사람들은 딱 그 용도만으로도 맥북을 구입한다. 2023년 한 해 30만 대의 맥북이 팔렸다. 대부분 회사들의 노트북 판매량이 줄었지만 맥북만 지속적인 판매량 증가 그래프를 자랑한다.
이쯤이면 '소비자는 합리적이지 않다'는 주장이 더 맞는 이야기 같다. 하지만 다른 시선에서 소비자들은 합리와 비합리의 기준을 넘어 자신이 원하는 가치에는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물건의 구매에서 가치는 중요하다. 그것이 마케팅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가치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사실 소비자들은 제품의 표면적, 기본적 가치 이외의 것을 스스로 찾아내거나 요구하지 않는다.
스티브 잡스는 "소비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모른다. 우리가 보여줄 때까지는 말이다"라고 주장했다. 소비자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 이상의 혁신적인 제품이나 기술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혁신은 기업이 먼저 선보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스티브 잡스가 말하고자 한 것은 혁신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지만 혁신뿐 아니라 다른 많은 가치들 역시 기업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표면적 가치를 넘어서는 새로운 가치가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면 해당 제품은 오랜 시간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애플은 기존의 가치를 벗어나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 소비자에게 사랑을 받은 대표적 브랜드다.
사실 애플은 기능적 가치와 감성적 가치라는 2마리 토끼를 탁월한 제품에 담아내 왔다. 하지만 소비자가 애플을 통해 구입하는 가치는 창의적 아이콘의 가치다. 애플은 IT 기기를 팔지만 실제 소비자들이 사는 것은 창의적 아이콘을 사는 것과 다름없다. 애플은 창의적 아이콘이라는 브랜딩을 위해 스스로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일관되게 지켜왔다.
스티브 잡스는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을 강조하며, 기술 제품이 단순한 도구가 아닌 사용자의 창의성을 표현하는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을 통해 애플은 제품을 완전히 새롭게 정의했고 그에 맞게 꾸준히 창의적인 제품을 선보였다.
MAC OS를 시작으로 수십 년에 걸쳐, 스마트폰의 시초 아이폰을 내놨고 아이패드를 통해 새로운 방식의 컴퓨팅 경험을 선보였으며 에어팟으로 무선 이어폰의 새 표준을 제시했다.
사용하기 쉬운 극단적 디자인 철학을 일관되게 지켜왔고 폐쇄적인 시스템을 통해 기술적 완성도와 보안을 지켜왔다.
아이폰, 아이패드나 맥북의 표면적 가치는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이지만 애플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태블릿이나 노트북을 구매하기보다 그 이상의 것을 구매한다. 앞서 스티브잡스가 주장한 것처럼, 애플 역시 초기에는 기술 혁신, 기능적 우수성을 가치로 내세운 컴퓨터 제조사였다. 하지만 'Think Different' 캠페인 이후 꾸준하게 창의적인 사람, 혁신적인 사람들이 사용하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도구'로서의 가치를 오랜 시간 강조했다. 더불어 애플은 개인의 창의성을 촉진하고 라이스 스타일을 변화시키는 브랜드로 각인시키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Apple의 "Behind the Mac: Greatness" 캠페인을 보면 이러한 애플의 생각이 잘 드러난다. 이 캠페인에는 유명 인물들이 Mac을 사용하여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일을 해내는 과정을 조명한다. 이 광고에는 누구나 인정할 만한 크리에이티브한 창작자들 (Kendrick Lamar, Billie Eilish, Spike Lee)이 등장하며 이들이 Mac을 통해 위대한 창작물을 만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아이패드나 맥북은 기능적인 면에서의 차별성을 갖고 있지만 그것이 다른 제품에 비해 월등하다고 볼 수는 없다. 또 많은 이들이 맥북의 차별적 기능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지 않는다.
조사에 따르면, 75% 이상의 맥북 사용자는 주로 웹 서핑, 이메일 확인, 문서 작성, 화상 회의와 같은 기본적인 작업에 기기를 사용한다. 그래픽 디자인, 비디오 편집 등 맥북의 강력한 성능을 활용한 고급 기능이나 창의적 작업에 맥북을 사용하는 사용자는 겨우 1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팩트는 소비자들이 실제로 애플의 제품을 창의적인 도구로 사용하기보다 창의적인 사람처럼 보이는 가치를 구매한다고 볼 수 있다.
애플은 이러한 창의적 아이콘의 가치를 위해 오랜 시간 많은 활동을 지속했다.
지금은 표준이 되었지만 매년 새로운 버전의 제품과 OS를 개선해 선보였고, 사용자들이 자신의 창의성을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앱과 도구를 제공했다. 애플 스토어는 단순한 판매점이 아닌 창의적 커뮤니티의 허브 역할을 하도록 설계되었으며, WWDC(세계 개발자 회의)를 통해 개발자들의 창의성을 지원하고 격려했다.
애플은 광고와 마케팅에 있어서도 제품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람들의 창의성과 연관되어 있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준다는 방식으로 소통했다.
위에서 사례로 언급한 "Behind the Mac: Greatness"의 최초 버전은 "Think Different" 캠페인의 첫 캠페인이라고 볼 수 있다. 애플은 이 광고 캠페인을 통해 혁신적인 인물들을 광고에 등장시켜 애플 사용자를 창의적 집단과 동일시하도록 유도했다.
2015년부터 꾸준히 진행된 "Shot on iPhone" 캠페인에서는 일반 사용자들이 iPhone으로 찍은 사진을 광고에 활용 누구나 iPhone으로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고 "Creativity Goes On" 캠페인은 팬데믹 상황에서도 애플 제품으로 창의성을 발휘하는 모습 강조하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혁신과 창의성이 계속됨을 보여주였다.
애플 이전의 일반적인 기술 기업들은 기능과 성능을 중심으로 제품을 판매했다. 물론 지금도 그런 기업들이 많이 있다. 소비자는 스펙을 비교하고 가격 대비 성능을 따져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전통적인 방식이었다. 하지만 애플은 이러한 전통적인 방식을 과감히 바꿨다. 소비자에게 '기술 제품 사용'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제시했고, 소비자는 단순히 제품을 구매하는 것을 넘어 창의적 아이콘으로서의 정체성을 얻게 되었다.
사람들은 제품의 표면적 가치만으로 구매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본질적 가치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해당 제품의 기능성이 탁월해야 또 다른 가치를 어필할 수 있다. 애플은 그런 면에서 가장 탁월한 브랜드다. 애플은 본질적 가치의 탁월함을 바탕으로 제품이나 소비자의 마음에 숨겨진 가치를 찾아내 소구 했고 성공했다.
애플의 제품과 서비스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서 사용자들에게 창의적 아이콘으로서의 정체성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애플은 독보적인 브랜드 가치를 창출해 냈다.
소비자가 바라는 가치를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만큼 중요한 일이다. 광고가 단순히 표면적 가치를 전달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또 다른 새로운 가치를 찾는 도전의 수단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