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Finding Value 02화

광고주일 때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1

광고주가 될 후배님들께

by 김대영

이 글은 광고를 업으로 시작하려는 이름

모를 후배를 위해 작성하는 글임을 먼저 밝힙니다.


광고 제안에 드는 비용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요?


가끔, 아니 자주 그런 생각을 해요.

물론 계산해 본 적은 없습니다.

시안 제작을 하는 것만을 놓고 보면 영상 시안을 3~4개만 만들어도 실비 1000만 원이 훌쩍 넘어갑니다.

진짜 돈이 들어가는 거에요.

보통 편집과 2D, 성우녹음과 사운드 작업을 하면 영상 1개당 300만 원이 나가니까요.

하지만 실은 그 돈 보다,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2~3주 동안 제안 작업에 매달리는 것을 돈으로 따지만 수천만 원도 넘을 겁니다.


광고 대행사는 사람과 시간이 돈인 곳입니다.

저는 광고주일 때 광고대행사가 어떻게 수익을 내는지 큰 관심이 없었어요. ‘광고 많이 하고 프로젝트 많이 하면 뭐 알아서 수수료 때고 기획료 챙기겠지’ 하는 정도만 알았죠.


아무 생각 없이 일만 시킨 거 같아요. 돌아보면 미안합니다. 끊임없이 광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비용은 생각 안 하고 일만 시켰습니다. 고백을 더 하자면 연간 대행사니까 광고업무 이외에도 마케팅 자료 좀 찾아달라, 아이디어회의 하자, 서비스 네이밍 아이디어 좀 줘라, 보고서 쓰는 것 좀 도와줘라.. 등등등요.


이런 일들이 다 돈 주고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건 생각도 못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광고 대행사 입장에서 인력을 쓰는 일이 비용과 같다는 생각을 못한 거죠.

하지만 제가 광고주로 일할 때는 TV 광고를 한 달에 꾸준히 2~30억씩은 했으니까 그래도 수익면에서는 나쁘지 않았을 거 같긴 해요. 미디어 수수료 등에서 그만큼의 인건비는 나왔을 테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좀 달라졌습니다. 디지털 광고를 집행하는 사례들이 많다 보니 규모가 되지 않을 경우 미디어 수수료만으로 수익을 챙기는 게 쉽지 않죠. 유튜브에 집행하는 영상을 만든다 해도 집행을 크게 하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캠페인을 총괄하면서 캠페인마다의 이익률을 보면 15% 넘는 경우가 많지 않아요. 미디어 수수료만으로 10억짜리 캠페인을 하고 1.5억 이하의 이익이 남는데 보통 한, 두 달 정도 그 기간에 들어간 인력들의

인건비를 생각하면 큰 이익이 남는 건 아닙니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광고 대행업의 이익에 대한 부분이 아니니 이 정도로 각설할게요.

저는 경쟁 비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앞에서 제가 광고 대행사의 이익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쟁 비딩에 들어오는 데 비용이 들어간다는 생각도 해보지 못했어요.

비딩을 준비하는 과정이 돈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거죠.

그냥 경쟁 비딩을 준비하고 괜찮은 에이전시를 인바이팅하고 PT를 받고 나면 수주한 대행사와 그렇지 못한 대행사에 통보를 하는 것이 다였어요.


그런데 대행사에 와보니 경쟁 비딩을 들어갈지 말지 결정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왜냐면 경쟁 비딩의 참여는 곧 돈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이야기 한 시안 제작을 하는 비용에 더해 기획팀, 제작팀, 디자인팀등의 인력들이 거의 한 달 가까이 투입되는 것은 기회비용으로 따지면 사실 매우 큰돈입니다.

이 비용을 모두 광고주가 부담해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실비와 함께 기회비용이 나가지만 이 비용은 어쩌면 광고 수주의 기회를 잡기 위한 투자이기도 하니까요.


광고대행사에 와서 알게 된 건 외국계 대행사는 조금 다른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는 거였어요.

제가 몸 담고 있는 회사는 외국계 기업을 오랜 시간 클라이언트로 두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요.

아주 많이 한국 현지화되어 있는 곳은 다르지만 외국계 회사들은 일을 시킬 때 타당한 비용을 산정해 주는 경우가 많아요.

제안을 받을 때 제안비를 줍니다. 놀랍죠? 제안비를 줄 테니 그 돈으로 인력을 투입해서 제안을 해달라고 하는 거예요. 본인들을 대신해 시간을 쏟고 아이디어를 고민하는 것의 가치를 산정해 주는 거죠.

단적으로 한국 기업의 95%는 이런 노력을 비용으로 환산해 생각하지 않죠. 저도 그랬으니까요.

나쁜 경우 비딩 후에 대행사를 선정하지 않거나 약속한 예산을 집행하지 않거나 최악의 경우는 제안을 받고 아이디어만 챙기기도 하죠.


물론 최근 한국 기업 중에도 경쟁 비딩의 제안비를 주는 광고주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신호죠. 물론 500만 원 이상을 받아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금액이 중요한 건 절대 아니에요. 제안비를 주는 문화가 정착되면 광고 대행업에는 많은 변화가 생겨날 수 있습니다.


'우리 1년 동안 수십억 쓸 거니까 관심 있는 대행사들은 붙어서 피 터지게 싸워볼래?'라는 마인드를 광고주가 갖고 있으면 10개가 넘는 대행사가 서로의 기회비용을 투입하며 경쟁을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한 회사가 1000만 원만 투입한다고 해도 엄청난 기회비용이 낭비되는 샘이죠.


하지만 제안비를 줘야 한다는 부담이 생기면 우리 회사와 핏이 맞는 회사를 숙고하여 결정할 수도 있으니 무분별한 경쟁이 생겨나지 않겠죠. 반대급부로 많은 대행사에게 도전의 기회가 없어지는 폐해가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광고 업계 전체로 보면 무분별한 경쟁을 통해 많은 광고대행사 인력들이 밤 새 고생하는 일은 적어질 수 있고 기회 측면 역시 낙수 효과처럼 자연스럽게 돌아가리라 생각됩니다.

이십몇 년 전 제가 광고회사에 들어가고 싶어 할 때 보다 광고회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많아진 건 비딩으로 인해 워라밸을 챙기지 못한 측면도 있을 겁니다.


광고를 업으로 삼기를 원하시는 여러분이 혹시 광고주로서 일하게 된다면 '함께 하는 파트너'인 광고 대행사가 얼마의 수익을 가져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 번 해보면 좋겠어요.

경쟁 비딩을 준비할 때도 우리의 광고 방향과 맞는 곳은 어디일까?라는 고민을 하면서 신중하게 대행사를 인바이팅하고 예산을 무기로 무한 경쟁을 시키지는 않았으면 해요.


물론 제가 만나본 회사들 중에는 1:1 개별 미팅을 통해 꼼꼼하게 대행사들을 미리 만나고 3~4개의 광고대행사를 선별해 경쟁 비딩을 시키는 회사도 많이 있었습니다.

부끄럽지만 10년 전에 제가 미처 생각해보지도 못한 일들을 하고 있는 회사가 이미 있다는 거죠.

여러분이 혹여 제 글을 읽고 광고주가 돼서 광고 담당자로서 일을 하시게 되면 경쟁 비딩 문화는 더 좋아져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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