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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니애 Mar 02. 2024

들어는 봤나, 3월 대학병원 괴담

 대학병원 괴담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1년 중 유일하게 3월에는 병원에 절대 가지 말라는, 피를 보고 싶지 않다면 수술과 입원을 3월만큼은 피하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3월의 대학병원을 기피하라는 권고는 그 시기가 여러모로 첫 시작인 직원들이 많아서이다. 그중 맞는 말인 반은 의사의 수만큼이고 나머지 틀린 말 반은 간호사와 기타 부서에 해당한다.

 간호사와 각 분야별 치료사 및 기사와 행정직의 자리는 해년이 정해놓은 계단식 승급이 아니다. 다음 해가 되어도 자리의 변화가 크지 않고 업무분장에도 영향이 미미하다. 퇴사를 한다 해도 연말에 맞춰할 이유도 없고 충원은 그때그때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라, 3월이라고 신규간호사의 바늘이 혈관을 더 많이 터뜨릴 확률은 높지 않다.

 다만 의사들, 특별히 인턴과 레지던트 1,2년 차는 경우가 좀 달리 설명된다.

 3월이 되면 PK(본과수련학생)들이 면허를 취득하고 우르르 인턴이 된다. 그들은 곧 여러 과로 흩어져, 남성의 요도를 따라 긴 소변줄을 밀어 넣어야 하고, 작은 침습 검사에도 수반되는 각종 동의서를 '만일의 만일은 사망'이라는 선고를 내리며 받아내야 한다. 정맥보다 심부에 도사린 동맥을 찾기 위해서는 수줍게 팔딱대며 뛰는 맥에 손맛 좀 느낄 줄 아는 내공이 필요하다. 구강섭취가 불가능한 환자의 코에서 시작하여 위까지 도달하는 호스관을 내시경이 아닌 오로지 청진과 해부학 지식만으로 이루어내야 하는 업무들. 의사의 치료행위 중에선 최하위 침습 부분이지만 얼마 전까지 국시를 치르느라 산처럼 쌓아놓은 책들에 파묻혀 폐인처럼 지내던 학생이었던 그들인데 식은땀을 흘리지 않을 수가.

 레지던트 쪽의 상황도 어렵다. 죽어라 말단 인턴생활 끝내서 자잘 자잘한 업무를 익혀놓았더니 이젠 주치의가 되어 처방을 내려야 한다. 윗년차 눈치도 살피면서 교수의 오더를 모조리 숙지해야 하고 병동으로부터 울리는 각종 콜과 노티*를 수습해야 한다. 책임의 자리에 서서 생명을 다루는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생명의 의미만큼 무겁고 고단할 것이다. 인턴의 1mm, 레지던트의 처방 단위 1mg에 환자의 안녕이 오가는 험한 밧줄 다리. 그곳이 3월의 대학병원이다. 





 그렇다면 3월엔 아파도 꾹 참았다가 4월에 갈 일이냐고? 그런 미련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지만 그래도 미련이 남는다면, 병원 괴담 맞는 말 반의 또 반은 아니다는 사실을 풀어볼 테니 안심하시기를.

 필자가 근무했던 병동은 모든 진료과를 통틀어 최고 기피대상인 흉부외과였다. 15년도 더 전이었음에도 레지던트 4년 과정 중 단 한 명의 전공의도 존재하지 않던 곳. 서울 소재 명문대학병원인데 어떻게 단 한 명의 레지던트도 없을 일인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던 흉부외과 병동. 생명을 관통하는 심장을 함부로 벌컥벌컥 열어볼 영웅을 어찌 강호에서 쉽게 볼 수 있으랴. 의대생 지인들을 꽤나 알고 있어 흉부외과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실제 임상의 현장에서 마주한 진실은 더욱 씁쓸했다.

 "선생님, 주치의가 없는데 그러면 우리는 누구에게 노티를 해야 하나요?"

 큰 오빠가 유학을 가버려 불안한 막둥이의 마음으로 윗년차 선생님들께 물었다.

 "우리는 인턴이 주치의야."

 오 주여, 환자들은 절대 모르기를. 그저 편안히 치료받고 완쾌되어 퇴원하기를. 한 배에 몸 실은 간호사도 공손히 기도손을 만들게 하는 이곳, 흉부외과 병동은 1년 열두 달이 3월인 곳이었다.

 정식 주치의가 없이 이 병동은 어떻게 굴러가나 걱정이 앞섰다. 흉부외과가 메인이고 일반외과는 서브메인인 병동이었는데 당연히 주치의가 존재하는 일반외과 일의 진행이 빠르겠거니 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그렇게 예상했겠지. 하지만 상황은 반대였다. 연차 높은 간호사 선생님들이 눈에 불을 켜고 오더를 걸러내며 미세한 변화나 오류를 족집게같이 찾아내었다. 일반외과 주치의에겐 콜을 한 번 하기도 눈치가 보였지만 흉부외과 인턴들은 마음의 문이 상시오픈이라 소통이 신속히 이루어졌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겐 든든한 펠로우 교수님이 인턴 주치의들의 백을 다 봐주고 있었다.

 인턴들이 턴을 돌다가 흉부외과를 맞닥뜨렸을 때의 당혹감은 신규의 눈에도 여실히 보였다. 결국 CS*에 오고야 말았구나, 하는 마음과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얼굴색. 그럴 때마다 펠로우 교수님은 어려워 말고 모르는 게 있으면 다 물어보라 인턴들을 독려했다. 병동 간호사실엔 밤에도 주저 말고 자신에게 노티 하라 불안을 가라앉혀 주었다. 펠로우 교수님이 그 정도의 배려를 해주기 쉽지 않은데 인턴이 어찌 최선을 다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주치의로서는 어설펐지만 동기들 중에서는 제일 전문적이었다. 난감한 상황을 만나면 자세를 굽혀 베테랑 간호사들에게 조언 구하기를 거리끼지도 않았다.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환자들에게 친절해지기도 했다. 그러니 비록 열두 달이 3월 같은 병동이어도 잘만 굴러가고 큰오빠 유학 갔으나 막둥이는 잘만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것이다.

 비단 흉부외과뿐만이 아니라 3월이 되면 각 진료과에서는 새 자리를 맡은 의료인의 풋내를 감추어주기 위해 윗선에서 백업을 든든히 준비한다. 선배들은 다소 거칠지만 군대와 다름없는 정신교육으로 후배를 임전무퇴의 자리에 밀어 올린다. 처방 하나하나 허투루 보지 않고 주요 업무와 기술을 가르치고 또 가르친다. 생명을 다루는 의료현장에서 신규의 서투른 손을 가만히 두고 보겠는가. 병가지상사는 이곳에서 용납되지 않는다.

 

 어떠한가. 병원 괴담이 아직도 3월의 방문을 발목 잡는가? 그렇다면 잠시 자신의 인턴 시절을 떠올려 보자. 사회 첫 직장도 좋고 대학 새내기 시절도 괜찮고 처음 부모가 되었을 때,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도 좋다. 무엇이든 처음의 마음을 상기시켜 보는 거다. 시켜만 주신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가야 엄마도 서툴지만 최선을 다 할게, 4년 동안 노력하여 장학금을 타야지. 성실하고 겸양이 미덕이던 그 모든 처음을.

 의료인들도 마찬가지다. 비록 손이 잘게 떨리는 어색한 시작이지만 마음은 히포크라테스이며 나이팅게일이다.  환자를 마주할 앞으로의 수많은 시간 중 가장 온 힘을 다한 기도로 온 우주의 도움을 청하는 시기. 그리하여 3월의 환자들은 그들의 의료인생에 있어 첫사랑을 받는 특별한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3월은 지나가는 법. 잠시만 기다려주면 활짝 틔울 꽃망울과 새순이거늘 완고한 세모눈과 꽉 낀 팔짱으로 벼려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인턴이 내 손목을 잡고 맥박을 짚으며 주사기를 수직으로 든 순간, 식은땀 한 방울이 그 뺨을 또르르 굴러가면 잠시 고개를 돌려 못 본 척하는 연기. 신규 간호사가 수액을 달기 위해 정맥을 세 군데 터뜨려 놔도 다른 팔뚝 내밀며 '나 혈관 많아요, 또 찌르세요.' 하는 너스레. 이 고마운 3월의 마음들이 있었기에 나 역시 그 쓰디쓴 신규의 시절동안 성장할 수 있었음이다.


 


* 노티: notice의 준말, 환자 상황에 대한 보고

* CS : Cardiothoracic Surgery, 흉부외과를 일컫는 의학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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