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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니애 Feb 23. 2024

어딜 감히 간호사가 아프다고 그래

 간호사들이 병동에서 환자 엉덩이만 까는 줄 알았을 거다. 쉿! 스테이션에 붙은 처치실 커튼 뒤엔 은밀한 치료현장이 있었으니...


 "어디 놔줄까, 오른쪽? 왼쪽?"

 "나 이 쪽, 아 잠깐만, 안 아프게 놔야 해!"

  

 그녀들은 무얼 하는 걸까?




 병가를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쓰는 직종이 한국에서만큼은 거의 없으리라 본다. 여자들의 생휴만 하더라도 제 날짜에 딱 맞게 쓸 수 있는 직업인이 몇이나 될까 싶지만 병동 간호사에게 '아파서 오늘은 좀 쉬고 싶어요'는 '저는 태움 당해도 쌉니다'의 동의어다. '왜?'를 묻자면 간호인력의 문제를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간단하게 설명을 해보겠다.

1000 병상이 넘는 서울 소재의 유명대학병원이고 한 병동 total 환자 수는 50명, 이들을 cover 할 수 있는 간호사는 duty 당 단 4명이다. 간호 인력 한 명당 환자 12.5명인 셈인데 상급의료기관이므로 중증도가 높은 환자가 반 이상은 차지한다. routine으로 돌아가는 일 외에 발발하는 이벤트 정도야 약국의 타이레놀 처방 빈도만큼이나.


 자, 이제 상상을 시작해 보겠다. 이 12.5명 중 한 명은 콜벨을 누르고 한 명은 주치의가 언제 오냐고 소리를 지르고 있고 한 명은 한 시간마다 소변량을 체크하고 두 명은 수술 후 speicial vital을 체크 중이며 그 와중에 ct실에서 환자 검사를 내려보내라고 전화가 온다. 이 모든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고 가정해 보자. 무슨 일부터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나머지 간호사 3명도 각자의 12.5명 환자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면.




 이런 상황이다 보니 duty에 한 명이라도 빠지면 사람 살리자고 온 병원이 아비규환 전장으로 돌변할 수밖에 없다. 아파서 오늘은 좀 쉬고 싶어요? 그 입 다물라. 간호사는 아플 수 없었다. 당장 응급실로 내려가 self 수속 밟을 게 아니라면 처치실 커튼 뒤에서 동료가 놔주는 주사 한 방이 모든 걸 해결했다.

 "환자 분, 따끔하실게요."

 다다다 탁! 교직원 우대 서비스로 연민의 엉덩이 문질러주기 1회 추가.


 단순 감기 몸살이라든가 극심한 생리통은 애교였다. 신종플루의 공포가 전국을 휩쓸었던 2009년, 3년 차인 선생님이 확진이 되며 병동은 술렁거렸다. 타미플루 5일은 먹어야 한다던데. 한 일주일간은 못 나오겠구나, duty 조정이 어떻게 되려나 걱정했지만 웬 걸. 한 이틀 먹고 열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전염력은 낮아진다며 병원은 출근일정을 배려해주지 않았다. 선생님은 회복되지 않은 몸을 끌고 나와 두 눈은 벌겋고 코입은 N95 마스크를 착용하고 연신 쿨럭대며 힘겹게 근무를 이어나갔다. 환자들이 단순 감기가 아니라 신종플루라는 걸 알았다면 간호받기를 허락했을까?


 하루는 동기가 발을 다쳐왔다. 발목이었나 발뼈였나, 아무튼 그 어디가 골절이어서 깁스를 하고 그다음 날 출근을 바로 했다. 한쪽 다리를 절뚝절뚝 거리며 널싱카트를 부지런히 몰고서 침상을 왔다 갔다 병실을 들어갔다 나왔다. 환자들은 누워 있다가도 절로 상체를 일으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어휴, 제가 아니라 선생님이 누워야 될 것 같은데요.", "아니 어쩌다가 이렇게 됐어요", "저 혈압 안 재도 괜찮아요, 가서 쉬세요."


 한 번은 정말 어찌할 수 없는 난처함이 찾아왔다. 아이를 낳고 외래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출근준비를 하며 딸애를 어린이집에 보낼 준비를 하는데 출산하며 말썽이 된 허리가 기상할 때부터 조짐이 나쁘더니 결국 급성통증으로 쓰러져 119를 부르는 상황이 되었다.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는 것만 같은 찢어지는 고통에 발가락 하나 움직이는 힘에도 번개처럼 통증이 전신을 관통하였다. 들것에 실려 엉엉 울면서 구급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근무하던 병원 응급실. 마약진통제 주사를 맞고도 통증이 쉬이 가라앉지 않아 고통스러워하는 도중에 응급실로 친히 내려오신 외래팀장님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괜찮으냐?'가 아니었다.


"쓰니애 선생님은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늦을 것 같으면 간호부에 보고를 해야지, 이렇게 무책임하게 행동하면 어떡하는 거지? 간호팀장인 난 왜 있는 거야?


  소변줄을 꽂고 일주일을 누운 채로 입원해 있는 동안, 가장 큰 근심은 엄마를 찾을 어린 딸애가 아니라 퇴원 후 대면해야 하는 외래팀장님이었다.


서럽긴 해도 간호사가 아프면 욕을 먹는 속사정엔 '자기 관리 미숙함에 대한 질책'이란 더 내밀한 뜻이 담겨있다. 손 씻기를 잘했어야지,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니면서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했어야지, 개인위생에 각별히 주의했어야지. 감염의 전파 경로를 공부했으면서 미리 방어하지 못한 의료면허자의 책임과실인 셈이다. 채혈하면서 솜을 문지르고 포셉으로 거즈 한 장 꺼내는 데에도 감염경로를 최소화하는 의료인들만의 규칙이 정해져 있다.(그래서 채혈 시 혈관 부위를 실컷 알코올솜으로 닦아놓고 마지막에 자기 손가락으로 한 번 더 건드리는 행위를 매우 혐오한다.) 임상에 있는 간호사들이 청결과 무균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것은, 환자에게 근접한 처치를 해야 하는 운명인 이상 자기 몸은 자기만의 것이 아니라 공공 의료자원이 되기 때문인 것이다. 손, 호흡, 의복의 청결, 머리카락 한 올까지. 모두가 간호사 유니폼을 입는 그 순간 환자를 위한 널싱키트다.


  종합병원 간호사로 일하는 것엔 사실 도처에 위험이 도사린다. 일반인은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감염증 사례와 은근히 자주 오는 AIDS 보균자들로부터도 자신을 보호해야 하고 환자들 간의 교차감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각종 무거운 장비를 도와줄 이 없어도 척척 옮겨야 한다. 나보다 훨씬 무거운 환자를 들어 올리며 옷을 갈아입히거나 환자가 누운 상태의 침상에서 시트를 갈아주다가 허리가 나가지 않도록 신체 선열을 잘 사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자신도 보호해야 하고 환자도 보호해야 하는 마당에 사소히 아픈 일은 업무태만처럼 보일 수밖에. 건강한 의료인이 환자를 건강하게 돌볼 수 있다.


 막내에게 옮겨 받은 독감을 호되게 치르며 일주일이 지난 시점의 일이다. 집안은 말 그대로 '견'판. 세탁실엔 쌓인 재활용품들이 날 먼저 버려주세요 걸어 나온다. 애들은 엄마가 잔소리를 못하는 사이 게임과 영상에 물아일체가 되었다. 아주 사람이나 물건이나 자유분방 엉망진창이다. 상냥한 말을 하면 소름이 돋는다는 '부산 사나이' 남편은 이마 한 번 짚어줄 줄 모르고 안방을 지나갈 때마다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당신이 많이 걱정돼, 아프지 말고 어서 나아'라고 입력된 말을 "우리 집은 네가 아프면 아무 일도 안 돼."라고 출력하는 남자. 나 대신 애들 밥 챙겨주는 것만 해도 기특하다고 해야 하나. 이러니 엄마들은 아플 새가 없다고 하지. 


 퇴직하고 나면 아파도 될 줄 알았더니 엄마라는 직업도 양육에 책임을 묻고 전문성을 요구하는 전문직일 줄이야. 간호사가 병원에서 의료자원이듯 엄마는 가정의 공공재다. 각종 비타민과 영양제로 평소에 면역력을 끌어올리고 잘 먹고 잘 자며 운동도 틈틈이 함으로써 자기 관리에 신경을 써놔야 질병군단이 침공할 때 결계를 최후 방어선까지는 유지하라는 명령을 지킬 수 있다.

 간호사나 엄마들이나 그대들의 손길이 지켜내는 현장이 숭고하다. 귀한 그 몸, 당신 혼자만의 것이 아니오니. 부디 바라건대 감히 아프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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