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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니애 Feb 16. 2024

TJ도 환영받는 병원 부서[2부]

그곳은 ER,  OR,  ICU

 ICU에서 첫 임종 환자를 마주할 때, 놀란 것은 학생인 내가 아니라 현직 선생님들이었다.

 사망 선고가 내려진 환자 몸에 붙어 있던 각종 의료기기들을 겁도 없이 차례차례 떼어내고 침상을 정리하는 나에게 main charge 선생님(수간호사 바로 아래)은 “학생, 담 세네? 너 같은 학생은 처음 봤다.”라며 모호한 칭찬을 남겼다.

 ER에서도 마찬가지. 농약을 위에 들이붓고서 사지가 흑빛이 되어 경련을 일으키는 환자며 몸에 용무늬가 가득 찬 환자를 보고도 놀라서 숨지 않았다. 두 눈을 희번뜩 부라리며 툴툴거리는데 퉁퉁한 덩치가 '나 딱 봐도 건달이요' 하는듯한 환자. 그의 팔뚝 현란한 그림 위로 망설임 없이 혈압계 커프를 야무지게 착착 조여 감았다.

 OR에선 한 술 더 떴지. 수술 중 사용했던 needle을 어딘가 흘리고 발견하지 못해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는데 그걸 학생 나부랭이가 찾아냈으니 얼마나 고마웠겠는가. 이제까지 거쳐 간 학생간호사 중 제일 일을 잘한다는 칭찬까지 들으며 높은 실습 점수를 받아냈다. 쓰고 보니 그냥 일복이 많았던 게 아닌가 싶은 건지도.


 “캬~ 이거 완전 천직이었네, 천직!”      


 아직 간호사 리얼 라이프 마라맛의 0.5단계도 맛보지 못한 애송이는 피곤한 종아리를 주무르면서도 은근 다음날이 기대되었다. 학생간호사를 보면 반기는 환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순진한 짝사랑도 했다.

 지금에서야 부끄러운 회상이다만, 그땐 드디어 자아실현을 이루었다는 뿌듯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음이다. 생과 사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줄을 타는 현장에서 단 한 번도 두렵거나 환자들의 환부가 징그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해결이 필요한 ‘일’ 일뿐. 환자의 불편한 증상이 빨리 해소되고 계획한 일들이 차질 없이 완수되어 치료와 간호의 종결을 맺는 것. 그것이 병원이 요구한다고 여겼던 존재의 의미였다.


 감정 공감 능력이 살짝 부족하고 관계보다는 일이 먼저인 나 같은 사람에겐 사실 여초 집단인 간호사 세계가 녹록하지 않다. 가끔 잘 지내던 무리 중 누구 하나가 나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며 그 이유를 알려주어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거 보라. 지금도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공감하지 않고 혼자의 잣대로 이해하려고만 한다. 이 정도면 TJ 국가대표로 활동해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TJ도 백의의 천사로 당당히 인정받고 빛나게 활약할 수 있는 현장이 있었으니 그곳은 바로 ICU, ER, OR. 특히 환자의 의식이 없어 교감을 나눌 일이 적고 보호자와 접점이 거의 없는 ICU나 OR 같은 경우는 TJ들에게는 최적의 부서일 터.

 TJ들이여, 우리에게 비록 ‘다정한’, ‘따뜻한’, ‘관계 중심적인’ 같은 수식어가 붙지는 못해도 백의의 가운을 입는 것에 부족하다 여기지 말라. 그대에게 딱 어울리는 맞춤복을 입혀 줄 부서가 존재한다.

 

 정작 화자가 막상 취직 후 배치받은 부서는 외과 병동이었다는 조금은 피식할 수 있는 이야기.






※ ICU : Intensive Care Unit

  OR : Operation Room

  ER : Emergency Room

  산부인과에서도 학생들이 쓰러지는 경우가 간혹 있다.

  생생한 출산의 상황에서 생명의 탄생이라는 고귀한 순간이 상상만큼 아름답지 않다. 인간의 존엄성은 잠시 사라지고 마치 동물의 세계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수도 있다. 다소 보기 불편한 자세, 비명, 핏물과 함께 배출(?) 되는 태아, 회음부 절개, 태반 배출 등은 아직 어린 학생들이 맨 정신으로 보기에 가장 거북한 실습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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