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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니애 Feb 09. 2024

TJ도 환영받는 병원 부서[1부]

그곳은 ER, OR, ICU

 “ 우리 몸 안에는 해골이 있는데 모두 260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 다 외워서 발표 준비해오세요.”   


 지금 저분이 우리에게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어안이 벙벙하여 입이 쩍 벌어지는 학생들을 앉혀두고 그는 할 말을 마친 뒤 강의실을 나갔다. 딱 이 두 문장으로 첫인사와 byebye를 대신하는 데엔 30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남은 강의 시간 49분 30초 더하기 일주일 동안 학생들이 모인 곳 어디나 혼돈의 현장이 되게 만든 그대여. 대대로 ‘사이코’란 타이틀을 잃지 않았, 아니 내심 즐기는 게 아니었을까 싶었던 바로 그분. 해부학 교수님은 상당히 까다로운 교육자였다.    


 “밑도 끝도 없이 뭘 어떻게 발표하라는 거지?”   


 학생들은 대혼란 속에 절규했고 이런 식의 난해한 수업과 고문은 다음 해 병리학에 이르기까지 2년 동안 계속되었다. 교과서를 씹어먹듯 스스로 공부하지 않으면 빠짐없이 수강해도 남는 게 없는, 벼랑 끝에서 새끼를 떨어뜨리는 사자와 같은 맹수의 수업이었다. 저 인간, 학생들 얼굴은 기억할까? 우리가 좋은 병원에 취직하는 것에 관심이나 있을까? 극 TJ인 내게조차 냉혈동물 같았던 교수님에게도 인간적인 면모가 엿보였던 적이 딱 한 번 존재하긴 했다. 어느 맥락에서 나온 말이었는지 장면은 흐려졌지만 그 말씀은 똑똑히 기억난다.     


 “웬만하면 ICU(중환자실), ER(응급실), OR(수술실)은 가지 마세요, grotesque(기괴하고 이질적인 모습으로 인한 불편한 감정)한 상황을 자주 접하고, 죽음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 역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걸 자꾸 보다 보면 감정도 무뎌지고 사람이 억세지게 됩니다.”     


 실제로 그랬다.

 간호과 학생들은 졸업 전에는 모든 파트의 병동을 돌며 실습을 해야 했는데, 실습기간 동안 ‘어? 얘가 왜 말이 없고 우울해 보이지?’ 하면 ICU였고 ‘어? 얘는 왜 출근하기 전이나 후나 죽을상이지?’ 하면 ER, ‘누구누구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대!’ 하면 십중팔구는 산부인과나 OR이었다.

 중증도가 높아서 집중 케어를 했으나 임종 케이스도 많이 봐야만 하는 ICU.

 정제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외상과 고함과 비명이 난무하는 인생의 모습들을 무차별 폭격으로 내리치는 게릴라전의 ER.

 정형외과 수술 중 톱질에 뼛조각이 내 얼굴에 툭 튀는 것쯤이야 애교일 뿐인 것, 비장 파열로 석션 기계조차 의미 없어 냉면 그릇 같은 바가지로 연거푸 피를 퍼내는 상황에도 멘탈에 한 점 흔들림이 용서되지 않는 OR.

 소위 ‘피 튀기는’ 이런 다이나믹한 현장에 익숙해지다 보면,


 “아잉~ 잔인한 장면은 보기 힘들어.” ,

 “어머 어머 나 여기 다쳐서 피 나, 오빠 어떡해~.”


 이런 아양 정도는 가뿐한 보드랍고 연약한 여성성, 작은 아픔에 측은해지는 감성 따위는 서서히 바래져 없어지는 것이다. 이윽고 남는 것은 흔들리지 아니하는 정신력과 강인함. 이런 이유로 지원을 기피하고 실습조차 힘들어하는 그곳들을, TJ인 나는 날아다녔다.



2부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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