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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니애 Feb 02. 2024

간호사는 '환타'를 마시지 않는다

"쓰니애 선생님, 음료수 뭐 마실래?"

"저 오렌지 맛 환타요."

"야!"

'선생님'으로 시작된 호칭은 '야'로 끝났다. 회식 자리에 앉아 있던 윗 선생님들의 일제히 나를 향한 뒤트임 눈초리와 함께.


 환타. 대한민국 간호계에만 존재하는 금기음료. 전국 어느 병원의 회식 자리에서도 이 음료를 주문하는 간 큰 간호사는 찾기 힘들다. 콜라의 툭 쏘는 강렬함보다는 부드럽고 과일향의 상큼한 맛에 색깔까지 발랄한 음료수가 잘못한 딱 한 가지가 있었으니 바로 '환타'라는 그 이름이다. 함께 근무 번이 되었을 때 유난히 특이한 이벤트가 잘 터지거나 일이 많아지는 사람이 있다. 간호계에선 이런 사람들을 '환자 탄다'라고 표현하며, 작자 연대 미상인 이 문장을 줄여서 '환타'라고 칭한다. 미스테리 한 건, 미리 알고 집어넣은 것도 아닐 텐데 병동에 반드시 한 두 명은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 내가 일했던 병동에도 환타가 두 명 있었다. 확신의 환타 한 명과 은근히 환타인 한 명. 이 두 명과 함께하는 날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냉수를 끼얹는 긴장감 속에서 duty를 넘기고 나와야만 했었다. 그래서 다음 달 근무표가 나오면 내 duty 확인 다음으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근무하는 날의 멤버를 살피게 되는 것이었다.  


 그날은 확신의 환타 선생님과 함께 한 evening 번이었다. 특별한 이벤트도 없었고 신환은 마지막까지 잘 받았고 수술 들어갔다 나온 환자들의 회복도 안정적이어서 특별히 주치의들에게 noti(보고)할 일도 없이 이렇게 마무리가 되면 겠구나 싶었다.

 "뚜루루루루!" 79호실 콜벨이다.

 "네, 말씀하세요."

 "수술 부위 느낌이 이상해요, 뭐가 나오는 것 같아요!"

 황급히 달려가는 중인데도 보호자가 얼른 오라고 발을 총총거리며 애타는 손짓으로 부른다. 침상의 커튼을 치고 조심스레 복부의 거즈를 천천히 떼어내는데 매끈매끈한 분홍빛깔 덩어리가 보인다. 며칠 전 대장암 수술을 받은 환자인데 글쎄 봉합 부위가 터져 장이 조금씩 빠져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거즈를 다시 덮고 곧바로 주치의에게 전화 noti를 날렸다.

 "79호 OOO 환자 OP site hernia 생겼습니다. 지름 7cm 정도입니다."

 "내가 갈 때까지 saline거즈로 누르고 있어 줘요."

 멸균 드레싱 키트를 풀어 거즈와 생리식염수를 붓고 surgical glove를 준비하여 다시 환자에게로 갔다. 기존의 드레싱거즈를 다 떼어 내고 장갑을 착용한 뒤 식염수에 적신 거즈를 불툭 튀어나온 소장 위로 덮어 감싸듯 눌렀다. 힘을 눌러 주어서도 안 되고 더 튀어나오지 않도록 막기도 해야 하고. 자칫 괴사가 될까 걱정이 되어 바르르 떨리는 손 아래, 왠지 계속 삐져나오고 있는 것만 같은 내장의 감촉이 환자의 호흡에 따라 고스란히 느껴졌다. 주치의가 교수를 콜 하고 응급 수술방을 잡아 보호자에게 수술동의서까지 받기까지. 간호사 스테이션에선 수술 오더를 받고 준비물품을 챙겨 이송요원을 부르기까지, 나는 환자 배 위에 놓인 거즈에서 손을 뗄 수 없었다.



 아, 역시 확신의 환타인 그녀 탓인가.


 특별히 그녀가 뭘 잘못하고 실수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야무지고 꼼꼼하게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두루 받았다. 붙임성 없고 아래 연차에게 살가운 성격은 아니었지만 환자에겐 제법 상냥했다. 은근히 환타인 선생님도 그랬다. 짜증을 좀 잘 내긴 했어도 정이 많은 편이어무섭게 혼낼 줄은 모르는 종이호랑이인 데다가 환자들에게는 진심으로 공감해 주는 순둥이였다. 철이 없는 신규일 때야 진짜 환타는 뭔가 쓰인 게 아닐까 싶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연차가 쌓이면서 알게 되었다. 저들이 일복이 많은 것은 잘 살펴보기 때문이란 것을.


 그런가 하면 환타의 정반대인 선생님도 한 분 있었다. 독특한 성격 탓에 후배들에게 인망은커녕 원성만 두터워 수선생님의 골칫거리를 차지한 그녀는 이래저래 미움을 많이 받으면서도 절대 굽히지 않는 다시없을 빌런이었다. 환자들에게 무관심이었던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 선생님은 절대 일을 만들지 않았다. 애초에 만들지 않으니 키울 일도 없었고  acting간호사(투약, 활력징후 체크 등 routine액션만 취하면 되는 일, 주로 막내가 맡는다)가 한 명 딸려 있는 날이면 첫 rounding을 제외하고선 절대 스스로 병실에 들어가는 일이 없었다. 본인 일도 뒷 근무자에게 넘기기 일쑤니 무슨 일이 터지랴. 보지 않으면 발견할 수도 없다.


 환타라는 낙인 탓에 가려진 진실의 베일을 벗고 나니 그 선생님들과의 근무가 싫지만은 않게 느껴졌고 다음 달 근무표에서 그날의 멤버를 살피는 일도 적어졌다. 오히려 저 선생님은 어떻게 일하는지 눈여겨보고 좋은 점은 닮아가길 바랐다. 퇴사 후 한동안 병동 일을 잊고 사는 듯했지만 삼 남매를 키우면서 유난히 힘들고 지치고 긴장의 연속인 날은 남자들이 군대 꿈을 꾸는 것 마냥 꼭 병동에서 일하는 꿈을 꾼다. 어떻게 꿈꿀 때마다 근무 멤버는 확신의 환타 선생님과 함께, 그리고 다음 인계는 '환자 절대 안 타'인 선생님에게 넘기는 바뀌지 않는 설정인 채로. 임상 현직일 때의 꿈을 반복하여 꾸다가 어느 날 깨달음이 왔다.


 "아, 지금 내가 환타인 거로구나!"


 사람이 좋아서 넓고 얕게 뿌려둔 관계의 씨앗도 많거니와 딸린 자식도 남들보단 많다. 욕심은 있어서 군계일학은 안 될지라도 못하는 건 없고 싶고, 나서는 성격 탓에 올해 내가 가졌던 부캐가 공사 합쳐 7개가 넘는다(제작 MD, 아파트 선관위원, 학년대표, 반대표 같은 것들). 나보다 예민한 남자와 살다 보니 평생 윗년차에게 인계를 넘기며 사는 느낌이기도 하다. 뭐 하러 이런 돈도 안 되는 일들까지 두루 맡아 스스로를 바쁘고 괴롭게 채찍질하며 사는가 물어보는 이들이 있다. 대단하다, 나라면 비서를 뒀다, 적당히 해라, 애들이나 잘 키워라, 몸 상한다 등등 다 나를 위한 애정과 걱정 어린 말들이다. 나라고 그저 무사태평하게 살고 싶지 않을까. 남편은 직장에서 무사히 정년을 채우고 아내는 그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가족들 뒷바라지 정도 하다가 자녀들이 둥지를 찾는 일이 잦아들면 장난감 없이 정갈하게 정돈된 거실에서 햇살을 마주하며 가까운 지인 몇만 불러 커피를 홀짝이는 삶. 꿈꾸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삶에 변수는 적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자발적 환타가 되어보려 한다. 무관심의 자세로 타인과 적당한 거리 두기를 하면 당장은 안온하고 무탈한 시간을 보내겠지만 흘러가는 시간의 기록에 남길 수 있는 유의미한 기억이 없음을 병동에서 배웠다. 비록 손에 닿은 거즈 아래 누군가의 내장을 마주하게 되고, 본인 입맛대로의 진단서를 받아내기 위해 근무 시간 내내 스테이션 앞에서 나를 노려보거나, CPR 건이 터져 원내에 MAYDAY를 외치는 일이 생겨도 모두 고스란히 소중한 기억장소에 저장되어 있을 뿐 지금의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속살이 나온 채로 너와 내가 만나게 되더라도 외면하지 말자, 삶의 굴레가 분주하고 버겁다 느껴질 때에도 어려움의 중심에 쑥 들어가 자세히 살펴보자. 도리없이 어둡고 답답한 날엔 형광빛의 환타를 들이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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