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둥둥, 굿모닝, 둥둥둥, 빠빠빠 빠빠 빠빠빠빠~."
5:30 AM.
It's a beautiful day로 단락이 끝나는 모닝콜이 다섯 번째 반복되고 있다. 음량 최대치의 bgm을 배경으로 ego와 id의 혈투는 오늘도 시작되었다.
'정신 차려! 또 5분만 시전 했다간 퇴근할 때까지 욕먹을 거야.'
'에잇, 그냥 잠수 타버리고 고향에 내려가자, 엄마 밥 먹으며 적당한 병원으로 옮기면 되겠지.'
3교대의 삶 속에서 Day 번인 날은 하루라도 이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차피 늘 ego의 승리가 결말로 정해진 전투의 일등공신은, 부끄럽지만 '나의 간호가 필요한 환자들'이 아니라 신규 주제에 지각을 해? 라며, 바들거리는 몸뚱이의 탑투토를 눈으로 쓸고 닦아대시는 '윗년차 선생님들'이었음을 고백한다.
신규란 그래야 했다. 윗년차 선생님의 허락이 없으면 환자의 맥을 세는 고요함 도중에 배에서 천둥이 치더라도 직원식당에 내려가서는 아니 된다. 가서 혼자 밥 먹고 오라 하여도 눈치껏 굶는 것이 미덕이다. 동기들끼리 반갑다고 농담을 주고받고 있어서도 안 된다. 윗분이 커피를 드시지 않는데 감히 내 것이란 없는 것이다. 스테이션의 반대쪽 끝에서 널싱카트를 무겁게 밀다가도 전화가 울리면 신속히 복도에 병렬주차를 마치고 경주마처럼 달려와야 한다. 착신음이 두 번 정도 울리고 나면 스테이션에 앉아있던 선생님이 그제야 수화기를 든다. "환자사랑 00 병동 간호사 000입니다."라는 문장이 끝나기 직전, 신규는 숨을 최대한 헐떡이며 도착한다. SAVE. 눈치는 면했다. 그래, 네가 그래도 신규의 자세로 시늉은 제법이구나.
간호사 세계의 태움 괴담이야 이미 다 아는 거라 생각했었는데 역시 직접 겪는 신규 라이프는 예상을 뛰어넘는 혹독 함이었다. 하지만 ESTJ가 위계질서 하나는 또 기가 막히게 순응하지, 히틀러도 군대에서 졸병이었을 시기가 있었을 터. 지엄하신 선배들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것쯤이야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타고 난 일복의 인생으로 단련된 빠른 손과 일머리도 분명 날 도와주리라 믿었었다. 이론과 실습이 임상 실전 앞에서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건 어느 분야를 가든 신입이 되어 굴러야 할 자갈밭 미래. 받아들이자. 3,6,9 개월의 고비만 넘기면 된다더라. 그렇게 무난하게 잘 적응을 하고 있는 줄 알았다.
방심했다. 병원이란 그라운드는 여초집단인 것을. 궁중 암투 뺨치는 음해와 모략과 시기와 아첨을 친절해 보이는 미소와 아랫것 교육이란 명분으로 평화롭게 포장할 수 있는 곳임을.
같은 병동에 한 날 한 시 입사한 동기 넷 중에 한 명은 3년 차 경력직이었다(이하 P로 표기). 필자는 인문학 전공의 수행에서 중도 하산하고 뒤늦게 간호학도의 길을 들어섰던지라 P와 동년배였고, 입사 번호가 같으니 우리는 진짜 동기라 여겼다. 적어도 죽을상을 하고 모인 동기 위로의 자리에서 그녀도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었으니까.
순진함의 도를 넘은 백치의 과거 쓰니애!
P는 고개를 숙인 그 순간, 우리와는 동상이몽의 이불을 덮고 있었던 것이다. 수선생님을 찾아가 면담을 적극적으로 하고 기존 3년 차 선생님들과 급격히 친해지더니 숙이고 있던 턱의 위치가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다.
분명 얼마 전까지 서로 으쌰으쌰 하던 P가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키도 분명 내가 컸는데. 오가는 대화가 짧아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가는 말은 길었지만 오는 말이 짧았다. 말에 담긴 온도도 급격히 떨어져 인계 시간엔 서늘한 시림만이 존재했다.
신규의 실수를 거듭하고 말았던 날, 약품 준비실로 날 조용히 부른 P는 동기간 우정의 종지부를 찍었다.
"너 때문에 내가 엿 먹을 뻔했잖아."
이제 와서야 나름 경력직 입사였기에 새빨간 핏덩이 같은 신규와 어울릴 수 없었던 그녀의 마음을 비로소 가늠한다. 그걸 몰라 그저 확 달아오르는 얼굴로 연거푸 '미안해'를 하며 사과했던 16년 전의 나는 동기 중에서조차 졸병이었다. 그래도 우린 친구라고, 함께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굳게 전우애를 다지고자 했던 이등병 히틀러. 동기와 함께 난제를 헤쳐나감이 급선무였지 정작 동기의 마음은 하나도 읽지 못하고 있던 딱한 사람. 여인이지만 같은 여인네들의 감정선에 살짝 눈치가 모자란 ESTJ에게 병동생활은 늘 곤혹스러운 일들의 연재였다. 모르면 반대로 해석하라는 여자언어 초보 입문단계에서 매일이 낙제 점수였다.
언제고 막내일 순 없는 법, 졸병 시절 3,6,9의 고비를 잘 넘겨 어느덧 내 아래에도 신규의 이름이 차곡차곡 쌓였다. 그동안 이등병은 일병쯤 되어 일머리가 제법 늘었고 윗 선생님들 비위를 긁지 않는 법도 배웠다. 후배들에게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이성의 진짜 따뜻함을 보여주겠노라 제법 근사한 포부를 실천하려 애썼다. 불여우 둔갑이 끝난 동기인 듯 동기 아닌 동기 같던 그녀로부터의 상처는 외과병동 간호사답게 완벽 드레싱 처치를 끝냈다.
그럼에도 나쁜 건 빨리 배운다고, 필자도 어느덧 하하 호호 웃다가 바로 뒷담화가 가능한 변검술 장인이 되어버렸다. P의 연차 바로 아래부터, 그녀의 불여우 처세술을 돌려 까는 데에 가담하는 공범자가 되기도 했다. 모든 뒷담 이단 돌려 까기는 바로 당사자의 아랫년차부터 한 마음으로 단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뿔싸. 이성의 따뜻함 어쩌고 가 뭣이 중했나. 나 아래 연차부터는 쓰니애 돌려 까기로 대동단결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