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선물
어느 날, 큰아들이 피아노를 갖고 싶다고 했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갖고 싶다는 것이다.
난감했다. 빠듯한 살림에 선뜻 피아노를 사 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친구 히사코 집에 갔다. 거실에 산더미처럼 쌓아 둔 책 무덤이 있었다. 100권은 훨씬 넘은 듯 보였다. 모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고 했다. 제법 어려운 책까지 딸 미사가 다 읽는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도서관에서 한 회원이 75권의 책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들었다.
히사코 집에는 딸 미사의 피아노가 있었다. 미사가 우리를 위해 피아노를 처음 연주해 주었다.
"우와~ "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우리 집에서 전혀 들어보지 못하는 감미로운 소리였다.
"슈-웅~, 따다닥 따다닥, 뿅뿅"
우리 집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다. 장난감 버튼을 누르거나 아들 셋의 입에서 하루종일 발사되는 소리.
미사는 유명한 일본인 할머니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고 있었다. 5학년인 미사의 실력은 이미 수준급이었다.
그날 이후, 큰아들은 미사네 집에서 오래 머물며 놀았다. 그리고 피아노가 갖고 싶다고 한 것이다.
피아노를 사 줄 수 없어 부모로서 고민이 깊었다.
한국에 있는 시어머님과 큰아들이 속닥속닥 통화를 하고 며칠 후, 시어머님은 500달러를 보내 주셨다. 아들 유학에 보태주지 못했지만 손주 갖고 싶은 것은 꼭 사주라는 메시지와 함께. 가뭄에 단비 같은 선물이었다.
시어머님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코스트코에서 490달러짜리 디지털 피아노를 샀다. 최대한 피아노랑 비슷하게 건반이 묵직한 것으로 골랐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나는 피아노를 칠 줄 모른다. 우리 아들도 배운 적이 없다. 내가 어릴 때 사촌동생에게 배운 '젓가락 행진곡' 앞부분을 조금 맛 보여 주었고 아들은 도레미파솔라시도 건반을 눌러볼 뿐이다. 디지털 피아노 안에 저장된 음악들을 자꾸자꾸 들었다. 그게 다였다.
피아노는 장난감으로 전락해 가고 있었다. 같은 아파트에 한국인 피아노 선생님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 레슨비가 25달러였다. 우리 형편을 고려해 싸게 부른 가격이었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웠다. 한두 달 배우고 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치를 담글 줄 몰랐던 피아노 선생님에게 말하고 싶었다.
'내가 언니네 김치를 담가 줄 테니 언니는 우리 아들 피아노 레슨을 해주면 안 될까?'
끝내 입을 떼지 못했다.
당시 마트에서 김치 한 통(3kg 유리병)이 25달러 정도였다. 김치만 먹는 것도 아닐 테고 언니네 세 식구는 김치 한 통이면 몇 달은 먹을 텐데,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생각 없이 피아노를 산 것이 후회스러웠다.
피아노는 거실 한 편에 덩그러니 놓인 채, 몇 주가 흘렀다.
피아노를 볼 때마다 내 마음이 아렸다. 그러다 문득 내가 가르쳐야겠다! '결심' 같은 것이 가슴 밑바닥을 뚫고 올라왔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이 가르쳐 준 지식으로. 나는 디지털 피아노에 저장된 음악을 들으며 쉽고 느린 곡을 찾았다. 캐논! 디지털 피아노의 부록 책에서 캐논 악보를 찾았다. 도레미파는 읽을 줄 아니까 마디를 나누고 계이름만 적은 나만의 악보를 만들었다. 리듬과 멜로디는 디지털 피아노의 음악 듣기를 통해 익혔다. 아니 외웠다.
악보를 보며 바로 칠 수가 없으니 외울 수밖에. 오른손은 얼추 흉내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왼손을 함께 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오른손만 익히고 아들에게 가르쳤다. 내가 시범을 보이거나 디지털 피아노의 화면을 보여주며 따라 하라고 했다. 아들은 내가 치라는 대로 하나씩 하나씩 건반을 눌렀다. 그렇게 순서와 멜로디를 익혀갔다.
“왼손은 이거 누르고 오른손은 이거 누르고 다음에 이거랑 이거는 같이 눌러….”
레슨은 이런 식이었다. 신기하게도 아들은 왼손이 된다. 양손도 가능했다. 아들은 제법 진지했다. 저녁에 여덟 마디 정도 알려주면 다음 날 일찍 일어나 연습을 했다. 점점 속도가 붙었고 불협화음이 화음을 찾아갔다. 흉내를 내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스스로에게 놀라고 있었다.
매일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생각나면 한 번씩 봐주고 고쳐 주었다. 아이는 혼자서 연습을 거듭했다. 때론 내가 너무 시끄럽다고 구박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몇 주 만에 드디어 아들은 ‘캐논’을 완성했다. 악보를 못 보고도, 나 같은 선생 밑에서.......
우리는 영상으로 그 순간을 남겼다. 우리 둘만의 작은 음악회였다.
첫 곡을 성공하자, 우리 아들은 거칠 것이 없었다. ‘엘리제를 위하여’를 듣고 너무 좋아서 연습하고 친구 미사가 연주한 것을 듣고서 ‘미뉴에트’를 연습했다. 그녀는 비싼 레슨을 받으며 배운 거라 실력이 뛰어났다. 하지만 나는 고슴도치 엄마다. 악보도 보지 못하는 우리 아들의 연주가 훨씬 대단했다.
4학년인 아들은 학교에서 비올라를 배우며 악보 읽는 법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다음 도전한 곡은 ‘Let it go’였다. 아들이 악보를 가져왔다. 나는 현란한 음표들에 놀라 가르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결국, 그 곡은 아들 혼자서 연습했다.
다른 아파트에 사는 동생이 놀러 왔다. 그 동생의 전공이 피아노란다. 큰아들을 보고 기특하다며 한두 번 레슨을 해 주었다. 아들은 Let it go도 완성했다. 나는 눈물 나게 고마워 집 밥을 대접했다. 그 동생과 더 친해졌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큰아들에게 꼭 피아노 학원에 보내리라 마음먹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학교 방과 후 피아노에 넣었다. 아들은 바이엘 3부터 다시 시작했다. 또래 남자친구들은 유난히 피아노를 잘 쳤다. 친구들이 치는 멋진 곡들을 아들은 집에 와서 또 연습했다. 플라워 댄스, 서머, 터키 행진곡 등…. 자기 수준보다 높은 곡이었지만, 아들은 가능했다. 그때는 친구가 소중한 선생이었다.
큰아들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더 이상 피아노를 배우지 않았다.
하지만, 중2 큰아들 방에서 이루마의 River flows in you가 흘러나왔다. 할머니가 사 준 그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고 있었다. 몇 달 전 이루마 공연을 보고 와서 연습한 모양이었다. 그 곡을 들으며 몇 년 전 도레미파를 하나씩 눌러 가며 캐논을 완성했던 그때를 떠올렸다.
오랜만에 아들 방에서 흘러나온 피아노 선율은 음악수행을 위한 곡이란다. 나중에 들었다. 아들은 나한테 배운 것처럼 음악 수행평가를 고민하는 친구에게 일주일 동안 피아노를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한 번도 피아노를 배운 적 없던 친구였다. 그도 수행평가를 무사히 마쳤다. 대단한 녀석들이다. 기쁘게 놀랐다.
큰아들의 열정이 나를 움직였다. 아들 스스로 부단히 연습해 결국 곡을 완성해 가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다.
피아니스트만큼 잘할 필요는 없었다. 원하는 만큼만 하고 즐기면 되었다. 지금도 아들의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다. 뭔지 모를 뿌듯함으로 가슴이 꽉 차오른다.
언젠가 지인들과 선물에 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한 동생이 상대방의 형편에 맞는 선물을 하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했다. 그 말은 부자에게는 그 수준에 맞게 비싼 선물을 주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싼 것을 줘도 된다고 들렸다. 나는 가난한 사람에게도 비싼 선물을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반론을 제기했다. 각자 다른 생각과 마음이 있을 수 있다는 것만 확인했다.
내 자격지심이었을까. 그 동생의 말이 어찌나 목구멍에 걸려 내려가지 않던지…….
큰아들을 지켜보면서 선물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본다. 선물은 조금 과하다 싶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 선물이 누군가의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은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또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