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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꼬 용미 Sep 24. 2024

Niagara Falls를 캠핑으로...

괜찮아, 괜찮아.

Niagara Falls

드디어, 4년 만에 나이아가라 폭포에 가기로 했다! 남편이 그토록 열망했던 여행이었다. 캠핑이라면  나이아가라 폭포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여행을 좀 가야 하지 않을까? 동부 여행의 꽃은 Niagara Falls 지.”

미국 동부로 처음 유학을 나왔을 때, 남편이 말했다.      


 ‘누가 그걸 모르나요. 나도 가고 싶죠.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 1박 숙박료가 얼마인 줄은 아시나요? 200달러가 넘어요. 1년을 버틸 돈만 들고 온 우리에게 여행에 지불한 돈 같은 건 없어요.’    


우리 현실을 잘 모르는 남편에게 직접적으로 비수를 꽂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는 없었다.  할 수 있다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으로 시작해, 돈이 없어도 미국 유학을 나왔고 이미 우리는 그 여정의 한가운데 있었으니까.

    

 리 남편은 낙천적이고 여행을 아주 좋아하는 거라고 나 스스로를 토닥거렸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 걸친 폭포로, 5 대호 중 이리호와 온타리오호 사이를 잇는 나이아가라 강(Niagara River)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유량을 자랑하고 말굽 폭포(캐나다 쪽)는 북미에서 가장 힘세고 강한 폭포라고 알려져 있다. 이과수 폭포, 빅토리아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로 꼽힌다.  

    

나이아가라 폭포로 떠나기 며칠 전부터 나의 캠핑 준비가 시작되었다!   

  

먼저, 온타리오 호수와 인접한 포마일 크릭 주립공원(Four mile creek state park) 캠핑장에 4박을 예약했다(117달러= 1박당 29.25달러). 나이아가라 폭포까지는 차로 25분, 16마일 정도 떨어져 있다.


텐트, 침낭과 매트, 버너와 프라이팬, 압력솥과 냄비, 휴대용 렌턴, 수건과 옷가지들, 막내의 베개 등..... 캠핑을 위한 물건들을 챙겼다. 키친타월, 물티슈, 여분의 신발, 구명조끼, 수영복..... 생각나는 대로. 거의 이사 수준이다.

      

음식 준비는 좀 복잡하다.

양념한 제육볶음은 미리부터 꽝꽝 얼린다. 그리고 바로 먹을 LA갈비와 삼겹살은 냉장으로 가져간다.  LA갈비와 삼겹살부터 먹어야 한다. 그사이 얼린 제육볶음이  자연스럽게 해동되면 그대로 볶아 먹거나 김치찌개로 활용한다.


500ml 물병을 여러 개 얼려서  얼음 대신 넣는다. 그것이 녹으면 생수로 쓴다. 물론, 2l 물병도 넉넉히 챙겼다. 멸치볶음이나 장조림, 김 등 반찬을 준비하고 상추, 고추, 마늘, 쌈장 등도 챙겼다. 김치도 넉넉히 가져갔다. 아이스박스가 꽉 찬다.  그리고 쌀은 하루에 일곱 컵씩 계산해 정확히 5일 분만 넣었다. 남으면 짐이다. 스팸과 통조림 등 만약을 위한 식재료, 아이들 간식과 음료 그리고 맥주까지 야무지게 챙겼다. 5일 동안 먹을 음식이 상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다.  

    

진짜 출발이다!


메릴랜드 주 그린벨트에서 뉴욕 주 나이아가라 폭포 캠핑장까지 420마일, 7시간 넘게 운전해 도착했다. 차에서 점심도 먹고 급한 화장실이 아니면 멈추지 않고 쭉 가는 편이다. 체력이 전부였던 남편의 어깨에서 신바람이 쌩쌩 불어왔다.     


캠핑장에 왔다.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 캠핑카들이다.

‘이상하다 오늘 텐트는 우리뿐인 거야?’


“하늘이 잔뜩 흐린데, 텐트를 쳐도 되는 거야?”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았다.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      

“괜찮아. 괜찮아. 어두워지기 전에 빨리 텐트부터 치자.”

무턱대고 괜찮다는 남편,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불안을 잠시 접어 두기로 했다.  비가 내리기 전에 우리는 얼른 10인용 텐트를 쳤다.

    

후다닥 저녁을 해 먹었다. 다음날 폭포를 보러 가기 위해 우리는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내일이면 우리 진짜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는 거야?"

"물론이지. 피곤하다. 얼른 자."

그 유명하고 거대한 나이아가라 폭포를 볼 거라는 생각으로 가슴이 벌써부터 설렜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뭐야?


갑자기 날씨가 심상치 않다.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했고 높은 텐트가 흔들렸다.  

“안 날아가. 괜찮아. 어서 자.”

긍정적인 남편이 말했다. 영어는 못해도 예민하고 눈치가 빠른 나는 뭔가 불길함을 감지했다. 아이들을 겨우겨우 재우고 신경이 곤두서서 눈이 말똥말똥했다. 운전을 하고 온 남편은 잠이 들었고 코를 골았다.  

     

밤 9시. 바람이 점점 더 거칠어지더니, 비바람으로 바뀌었다. 순식간이었다.

“여보, 일어나 봐.”

남편이 잠깐 눈을 떴지만,

“괜찮아, 안 무너져 얼른 자.”

여전히 괜찮다는 남편.    

 

진짜 괜찮지가 않았다.      


결국, 텐트의 한쪽 기둥이 넘어지고 말았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나는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 기둥을 다시 세웠다. 어찌나 바람이 센지 그 기둥을 꽉 붙잡고 비바람에 맞서며 흔들거리는 텐트를 지탱했다. 그래도 괜찮을 거라는 남편 때문에 나의 공포는 더 커져갔다. 무심한 남편은 아직도 자고 있다.      


아이 셋이 자고 있다. 우리 식구를 지켜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나는 왜 혼자인 것 같지?  바람은 더 거세지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건너편 기둥 하나가 또 쓰러졌다.

“여보!!!!!!”

날카로운 나의 목소리가 텐트 안에서 폭발했다. 그건 공포에 질린 목소리였다. 그제야 남편도 일어나 넘어진 기둥을 일으키고 붙잡고 섰다.

    

한밤중에 텐트 기둥을 하나씩 붙잡고 서 있어야 하다니,  기가 막혔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나이아가라 폭포가 뭐라고 이 고생을 하면서 폭포를 봐야 한단 말인가. 나는 집에서 안전하고 싶었다. 기둥을 잡고 꼼짝도 못 하는데 차라리 아이들이 깨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 했다.


‘하나님, 제발 우릴 살려 주세요. 여기서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아요.’     


억센 비바람을 등지고 서서 많은 생각을 했다. 죽음을 무릅쓰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고 싶은 건 아니었다. 집에 있을 걸…, 캐빈을 예약할 걸….  아이들을 데리고 이렇게 무모할 수가 …. 악몽 같은 밤은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다시는 캠핑 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그날 굳게 다짐했다.

     

밤 12시가 되자, 비바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거봐. 안 날아가잖아.”

남편은 이것도 하나의 좋은 경험이라는 식이었다. 연신 하품을 하며 잠자리에 누웠고 바로 코를 골았다. 7시간 넘게 운전을 하고 왔으니 그럴 만도 했겠지만, 조금 야속했다. 내 불안은 이렇게 태평한 남편과 살면서 더 증폭되고 있는 건지도.....


다음날 아침.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캠핑장이 평화로웠다. 어젯밤 캠핑장 옆으로 허리케인이 지나간 것이었는데, 캠핑장에 와이파이가 없어 우리만 전혀 몰랐다. 허리케인이 우리를 정면으로 덮쳤다면 도로시처럼 우리는 어디로 떨어졌을지 아찔하다. 그날따라 캠핑카만 보였던 이유가 있었던 거다. 이상했다. 눈치를 챘어야 했다. 알았다고 해도 뾰족한 수가 있었을까.    

  

평생 기억에 남을 밤이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생각하면 아름답고 거대한 폭포의 물줄기보다 그날 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다행히 이후 날씨는 맑았다. 계획한 대로 캐나다 폭포와 미국 폭포의 그 거대한 물줄기를 보고야 말았다.

와~ 나이아가라 폭포를 처음 봤을 때, 그 감격은 어마어마했다. 그 폭풍우를 해치고 영접하는 폭포였기에 감동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직접 찍은 나이아가라 폭포~ 저 배를 탔어요

     

거기에서 미국과 캐나다는 다리 하나로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걸어서 다리를 건넜고 국경을 넘었다고 여권에 도장을 받았다(1인당 25센트씩 냄). 그렇게 미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아끼고 아낀 돈으로 폭포 가까이 가는 유람선을 두 번이나 탔다.  폭포수를 맞으며 캐나다 말굽폭포와 미국 폭포를 온몸으로 느꼈다. 폭포물이 튀어 온몸이 젖기에 비옷을 입는 거였다.  노란 비옷과 파란 비옷(미국과 캐나다)을 둘 다 입어 봤다. 힘차게 내리는 폭포 줄기를 고스란히 가슴 깊숙한 곳에 넣었다. 하얀 물거품 사이에 피어난 무지개가 우리의 여정을 응원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 순간만큼은 첫날밤의 허리케인을  까맣게 잊을 수 있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고양이와 함께 나무통 안에 들어가 떨어졌다는 여인의 이야기를 짧은 영상으로 감상했다. 간담이 서늘했다. 무슨 기금을 모으기 위한 도전이었다지만, 뜻을 이루고 살아 돌아왔다는 결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위대한 도전이고 용기라고 생각한다.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과 계획 그리고 실천은 그것을 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경험이든 얻게 되는 것 같다. 그것을 해냈다는 자신감을 선물로 받는다. 설령 해내지 못했다고 해도 도전과 경험은 마음속에 남는다. 이번 여행으로 내 가슴속에는 뿌듯함과 충만함이 가득 차올랐다. 때로는 남편과 사는 게 모험 같다. 아니 도전이다. 나 혼자라면 절대 맛보지 못할 살아가는 맛이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캠핑으로 가봤니? 우리는 가봤다.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2014년 7월 가계부, 여기서는 외식 한 번 했네요^^


P.S. 가계부에서 여행이 7/13일까지인 이유 - 집에 오는 길에 남편이 잠깐 교환학생으로 갔던 코넬대학교에 들렀다. 남편은 추억을 되새겼고 우리는 코넬 대학교를 구경했다.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가 뉴욕 주로 이주해 그 집에서 1박을 했다. 코닝 유리 박물관(Corning Museum of Glass)에 들러 구경하고 99센트짜리 유리볼을 다섯 개 샀다.


* 포마일 크릭 주립공원(Four mile creek state park) 캠핑장


https://parks.ny.gov/parks/fourmile/details.as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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