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키우면서 엄마 아빠도 성장한다
공짜 티켓이 하나 생겼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자 친구와 에버랜드에 갔다.
우리는 조금씩 가까워지는 중이었다. 사람들이 많고 생동감 있고 알록달록 예쁜 동화 캐릭터들이 살아 움직이는 놀이 공원을 좋아했다. 어쩌다 가는 곳이라 설렘은 더 했다. 놀이기구는 무서워하면서도 바이킹과 롤러코스터 등 몇 가지는 꼭 탔다. 소리소리 지르며 놀이기구를 타고나면 속이 다 후련했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인간관계에서 묵히고 쌓인 체증이 쑥 내려갔다. 어질어질 아찔한 순간 후에 단단한 땅을 밟으면 찾아오는 안도감도 좋았다.
그날따라 남자 친구는 유난히 수줍어했다. 우리는 옆으로 돌아가는 놀이기구에 나란히 앉았다. 처음 타는 거라 좀 긴장했고 남자 친구 옆이라 더 떨렸을 것이다. 거대한 기구는 서서히 발동이 걸리며 우리 둘을 옆으로 들었다 놨다 하기 시작했다. 시원한 바람에 가슴이 벌렁벌렁~ 움찔움찔~
“어-어--, 어-어--!”
갑자기 남자 친구가 내 손을 붙들고 목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눈을 꼭 감고 내 쪽으로 파고들었다. 얼굴은 새하얀 눈처럼 하얘졌다. 급기야 내 다리 쪽으로 쓰러져 누워버렸다.
‘못 탄다고 말을 하지....’
그날 놀이기구는 그게 끝이었다. 남자 친구는 땅에 내려와서도 한참 동안 정신을 못 차렸고 우웩 우웩 했더랬다. 눈치챘겠지만, 그 남자 친구는 내 남편이 되었고 내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에서 1년 살 때, '캐슬 파크'라는 놀이 공원의 연간회원권을 끊었다. 어른 하나, 아이 하나면 충분했다. 18개월 둘째는 공짜였고 남편은 놀이기구를 못 타니 나와 큰아이만 티켓이 필요했다. 입장료는 따로 없고 파크 안을 돌아다니다 놀이기구를 탈 때만 연간회원권 팔찌를 내밀면 되었다.
나는 큰아이와 레일 자동차와 범퍼카, 물보트 등 여러 가지 놀이기구를 탔다. 놀이기구의 탑승 가능 여부는 아이의 키가 기준이 되었다. 큰아이는 75도(?) 경사의 물보트를 가장 좋아했다. 만 4살이었지만 겁 없이 유난히 놀이기구를 잘 탔다. 그래도 보호자가 함께 탑승해야 했다. 온몸이 통째로 들리며 순간 하늘을 나는 듯하다가 쿵! 이내 물보라와 웃음소리가 주위에 꽃향기처럼 번졌다.
한 번은 너무 어린 둘째를 데리고 탔더니, 둘째는 다시는 안 탄다고 도망가 버렸다. (ㅋㅋ)
나는 무서워하면서도 소리를 지르며 놀이기구를 타는 편이다. 갈 때마다 바이킹을 탔다. 그러던 어느 날, 바이킹이 평소보다 뭔가 더 무섭고 많이 울렁거렸다. 그래도 늘 타던 360도 회전 놀이기구에 올랐다. 역시 뭔가 다르다. 몇 배는 더 무서웠다.
“STOP!!! STOP!!!”
놀이공원이 떠나갈 듯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아저씨는 소리치는 나를 보며 오히려 재밌어하고 앞으로 열 바퀴, 뒤로 열 바퀴쯤 더 돌린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봤다. 아주 큰 웃음을 주었다. (창피했다.)
맙소사!
며칠 후에 그 이유를 알았다. 자연피임의 실패라고 해야 할지, 오래 살아남은 정자의 승리라고 해야 할지. 예상치 못한 임신이었다. 너무 초기라 임신인 줄도 모르고 나는 놀이기구를 탔고 지인들과 맥주도 조금 마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난 괜찮을 거라고 애써 마음을 추스르며 임신을 받아들였다. 아니 딸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임신으로 나는 놀이기구를 타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도 큰아이는 물보트를 타겠다고 우기니 할 수 없이 남편이 용기를 냈다. 남편은 큰아이와 물 보트를 몇 번이나 탑승 했다. 아빠가 된 남편의 책임감이었고 개인적인 성장이기도 했다.
막내를 낳자마자, 도넛 쿠션을 챙겨 캐슬 파크로 달려갔다. 귀국을 앞두고 큰아이에게 원 없이 물보트를 태워 주었다. 하지만, 나는 놀이기구에 많이 약해졌다. 바이킹과 360도 도는 놀이기구를 타고 싶은 생각이 1도 없었다. 막 태어난 막내 덕분일까. 막내는 아빠를 닮아 놀이기구를 잘 못 타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남편 유학으로 동부 메릴랜드 주에서 5년을 살았다.(브런치북 결코 평범하지 않은 미국 생존기)
메릴랜드 근처, 펜실베이니아 주에 허쉬파크가 있다. 우리 집에서 3시간 거리다. 맞다! 그 허쉬 초콜릿. 엄청 큰 테마 파크다. 사촌 오빠 덕분에 알게 된 놀이공원이다.
개장시간은 10시! 우리는 개장 시간에 맞춰 미리 도착해 하루 종일, 밤 10시 마감시간까지 쉬지 않고 놀이기구를 탔다. 이제 보니 허쉬파크 안의 워터 파크는 한 번도 못 갔다. 동물원은 또 언제 생겼지?
아이들이 타고 싶은 것 위주로 돌아다녔다. 나는 그네(Wave Stinger)는 아이들이 참 좋아한다. 그네가 꽤 높이 올라가 빙글빙글 돌아간다. 남편은 보는 것만으로 어지러워하고 나와 아이들은 신나게 탔다. 남편이 밑에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또 다른 놀이기구는 두 사람씩 탄다. 그네 같이 빙글빙글 돌지만, 방향을 바꾸는 키가 하나 더 추가되어 있다(Frontier Flyers). 돌면서 방향까지 바뀌니 더 어지럽다. 어른들이 어지러워할수록 아이들은 더 신나 했다. 아주 어린아이용이 아니면 대부분 보호자가 함께 탑승해야 하는데, 이 놀이기구는 지금 생각만 했는데도 울렁거리고 어지러울 지경이다. 막내 출산 후, 많이 약해졌다.
현란한 롤러코스터들이 아름다운 곡선을 자랑하며 쭉쭉 뻗어 있다. 그 종류도 여러 가지다. 쳐다만 봐도 숨이 멎을 것 같다. 지금은 긴 그네가 사정없이 진자운동을 하는 새로운 놀이기구가 생겼나 보다. 보는 것만으로 오금이 저린다(Twizzlers Twisted Gravity).
우리에게는 평생 기억에 남을 놀이기구가 있다. 발이 공중에 떠있고 몸이 매달린 채 높은 곳과 낮은 곳, 꽈배기처럼 휘어진 레일을 사정없이 내달리며 돌아간다(Great Bear). 사람들의 함성(?), 고함소리가 우리 머리 위에서 하늘을 두드렸다.
"이거 타자!"
남편이 아이용 놀이기구에만 있다가 롤러코스터에서 들리는 요란한 함성소리를 듣고말했다.
"당신이 이걸 탈 수 있다고?"
발이 공중에 떠 있는 것은 처음이라 많이 무서워 보였다. 나는 겁쟁이 남편이 이걸 탈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진짜? 당신이 타면 당연히 나도 탈 수 있지."
아마 비싼 티켓을 사고 남편은 놀이기구를 하나도 못 탔던 것 같다. 티켓값이 남편의 머릿속을 떠다녔을지도 모를 일이다.
'진짜 탄다고? 난이도 최상급인데?'
"나도 탈래!"
첫째도 나섰다.
그날은 사촌 오빠네와 함께 갔던 날이다.
결국, 짝을 맞춰 사촌오빠와 남편 그 뒤에 첫째와 내가 Great Bear에 올라탔다.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는 것은 이전까지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처음이라 가슴은 두 근 반, 세 근 반 힘차게 내 심장이 북을 쳤다.
아~~~~~아~~~~~
진짜 무서웠다.
그런데, 재미있었다.
아들과 나는 한번 더 탔다. 남편의 용기 덕분이었다.
(이렇게 신나는 걸, 안 탔으면 어쩔 뻔했냐고요.)
한 번씩 남편은 우리를 놀라게 했다. 미국 놀이기구는 한국 거 보다 솔직히 더 많이 무섭다. 스케일이 더 크기 때문이다. 동네 도서관 앞에서 노동절에 열리는 놀이 공원의 바이킹이나 자이로드롭도 롯데월드보다 훨씬 무섭다.
나무 레일을 달리는 Lightning Racer는 거의 공포급이다. 나무 블록 같고 산처럼 높이 쌓아 올린 레일 위를 달린다. 쳐다만 봐도 아찔하다.
"우두두둑, 우두두둑!"
나무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더 공포심을 자아낸다. 이 앞에서는 누구도 타겠다고 나서는 멤버가 없었다. 용감한 사촌 오빠조차도.
지나가다 본 노란 레일의 롤러코스터가 아주 멋졌다. 수직으로 내려오는 구간이 얼마나 긴지 고개를 한참 들어 올렸다 내려와야 했다. 그 각도도 어마어마했다. 수직, 90도임이 틀림없다. Skyrush다!
"엄마, 나 이거 타고 싶어! 같이 타자!"
첫째가 말했다.
"아니야! 이건 절대 못 타. 어깨 끈도 없잖아!"
저렇게 높은 롤러코스터인데 어깨를 지지해 주지 않았다. 다리만 고정하고 손잡이를 붙잡는 게 다였다. 아들은 타자고 우기고 나와 남편 중 한 명은 따라가야 할 판이었다. 한 명은 다른 아이들을 봐야 한다.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호흡이,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남편은 내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 하는 거지? 체념했다. 희망적인 것은 스카이러시를 타고 내려오는 외국인들 표정이 밝았다.^^;
리본 체조 선수가 리본을 자유자재로 돌리는 그 모양으로 레일을 만든 것 같았다. 보기에는 곡선이 아주 아름다웠다.
결국, 아들과 내가 줄을 섰다. 점점 줄이 줄어들고 롤러코스터에 앉았다. 삐걱삐걱 천천히 올라가는 소리가 더 공포스러웠다. 90도 꺾인 그 구간으로 올라가는데 너무너무 긴장이 되었다. 그리곤 뚝 떨어졌다.
으---------------------------
유난히 길다고 했던 그 구간은 롤러코스터가 아니라 자이로드롭이었다. 밑에서 누군가 사정없이 나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눈을 뜰 수도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이를 악물고 살기 위해 견딘다는 마음으로 버텼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순식간에 하늘을 가르며 달리는 롤러코스터가 드디어 멈춰 섰다.
"엉엉엉-----. 내가 안 탄다고 했잖아. 엉엉엉....."
롤러코스터가 멈추자마자, 순식간에 눈물이 흘러내렸고 울음이 터져 나왔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코를 막 훌쩍훌쩍거렸다.
"Are you O.K.?"
미국 청년이 걱정스럽게 묻는다. 울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남편 덕분에, 아들 덕분에 다시는 해보지 못할 경험을 했다.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엄마라는 이름을 달고 살자니 때론 도전일 때가 많다.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덕목 중에 하나인 용기! 그것이 조금씩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우리 남편도 경제적 측면에서 용기를 내고 조금씩 성장해 가는 게 보였다. 그렇게 놀이기구를 못 타던 남자가 말이다. ^^
*허쉬파크에는 몇 년에 걸쳐 두세 번 정도 갔었다. 그걸 하나의 에피소드로 담았다. 스카이러시는 첫째가 3, 4학년 때 탔을 것으로 생각된다.
*Skyrush 사진 출처 : 허쉬파크 홈피
- 용기를 내고 싶을 때, 한 번쯤 가보면 좋을 허쉬파크~~ 2025년은 4월 5일에 개장이란다.
날짜별로 개장하는 날이 다르므로 확인하고 가시길~~ 숙소도 있고 Fast Track(줄 서지 않고 빠르게 탈 수 있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