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보다 경험이 이길 때
미국의 여름 방학은 길다. 6월 중순부터 시작이다.
드디어 아이들 방학이 시작되자,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 캠핑을 떠났다.
버지니아 주와 메릴랜드 주 연안을 따라 친코티그(Chincoteague)만(灣)과 대서양 사이에 53km에 걸쳐 뻗어 있는 섬, 아사티크 아일랜드(Assateague Island)로! 여기에서는 야생마를 볼 수 있다니, 듣기만 해도 호기심이 솟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대서양에 몸을 담글 생각만으로 심장이 요동쳤다.
시에나에 다섯 식구 앉을자리만 빼고 빼곡히 짐을 실었다. 압력밥솥, 프라이팬, 가스레인지, 베개, 수건, 화장지, 물과 쌀, 삼겹살, 김치가 가득 든 아이스박스 등. 집에 있는 물건들을 모조리 싸서 싣고 가야 했다. 캠핑은 늘 이사 수준의 대이동이다. 남편이 기꺼이 그 많은 짐들을 나르고 모닥불을 지펴주지 않았다면 난 캠핑을 사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에 나는 텐트 안에서 아이들 발에 묻은 모래 때문에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들고나는 아이들의 발을 닦느라 온통 신경을 썼던 사람인데, 캠핑을 계속 다니면서 무던해졌다. 침구에 모래 몇 알 들어가 굴러 다닌다고 해도 별 일은 생기지 않았고 모닥불의 낭만과 여행의 맛을 포기할 수 없었다. 캠핑은 성격도 동들 동글하게 만들어 버리는 걸까.
거의 3시간을 달렸다. 섬으로 들어가는 기다랗고 아찔한 다리(Verrazano Bridge)를 건너 아사티그 섬 캠핑장에 도착했다!
"진짜 야생마다!"
아이들이 야단이다. 주차장 주위에 야생말들이 삼삼 오오 서서 바닥에 난 초록 풀들을 뜯어먹고 있다.
"웰컴~ 어서 와~"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바다를 쳐다보며 사색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가까이 가도 도망가지 않았다. 마냥 신기했다.
우리는 예약한 자리에 텐트를 지었다. 텐트 주위에도 야생말들이 걸어 다녔다. 우리는 점심을 간단히 먹고 바다로 달려갔다. 집에서부터 수영복을 입고 갔다. 아이들은 여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아사티크 섬에서는 네 가지 바다를 경험했다.
첫 번째 바다는 야트막하니 잔잔해서 어린아이들이 놀기에 딱이었다. 서너 살짜리 아이들이 걷거나 앉아 놀아도 되는 깊이의 바다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블루크랩들이 기어 다닌다. 아이들은 블루크랩을 쫓아다녔고 모래사장에 앉아서 모래놀이도 했다. 모래성을 만들고 형, 동생 몸을 모래 속에 파묻으며 신나게 놀았다. 아름다운 하늘과 푸른 바다의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낭만적이었다.
볼록볼록 살들이 드러나도 비키니를 입고 썬텐을 하는 여자들, 웃통을 벗고 돌아다니는 배 볼록 남자들, 연인 사이, 가족 단위의 모든 사람들은 여름휴가를 맘껏 즐기고 있었다. 체형과 무관하게 비키니와 삼각수영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마음에 들었다. 통통한 무다리 때문에 한국에서는 핫팬츠며 비키니를 입어 본 적이 없다. 아니 생각도 못했는데(오랜 콤플렉스), 난 그곳에서 자유를 느꼈다.
두 번째 바다는 조금 더 깊고 주변에 풀숲이 있었다. 데크로 만들어진 다리가 바다를 둘러 길게 놓여 있어서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낚시를 하기 좋았다. 우리 아이들은 닭다리를 끈에 묶어 던지고 블루크랩을 유인해 뜰채로 낚아챘다. 아이들 손에 블루크랩이 잡혔다. 사이즈 제한에 걸린 것은 놓아주어야 했고 암컷은 잡을 수 없다!
남편은 어릴 때 냇가에서 놀았던 특기를 살려 바다 가장자리 풀숲을 뒤졌다. 무릎 깊이의 바다를 걸어 다니다 뜰채로 덤불을 훑었는데, 홍합이 나왔다!
"홍합은 이런 곳에 있는 거야."
남편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남편은 어릴 때로 돌아간 듯 아이처럼 웃었다. 아들들이 아빠를 바라보는 눈이 샛별처럼 반짝거렸다.
그런데, 그날따라 불이 시원치 않았다. 고기 굽고 남은 숯으로 블루크랩과 홍합을 구워보지만 실패했다. 그래도 그때 바다 향기는 생생하게 남았다. 우리 아이들은 해물을 먹지 않는다. 잡는 것만 좋아한다. 나만 아쉽게도 먹는 것은 바로 포기했다.
세 번째 바다는 평범했다. 완만하고 무난한 깊이라 수영을 잘 못하는 나에게 딱 맞았다. 거센 파도가 없는 고요하고 잔잔한 바다였다. 하얀 백사장이 융단을 깔아 놓은 듯 넓어서 썬텐을 하며 쉴 수도 있었고 아이들은 옆에서 모래성을 쌓았다. 막내에게는 구명조끼를 입혀 함께 바다로 뛰어들면 둥둥 떠다니며 잘도 놀았다. 순한 맛 바다였다.
네 번째는 매운맛의 바다다. 파도가 어찌나 센 지, 나 혼자는 들어갈 수 없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손을 잡아 주어 들어가면 거센 파도가 쉴 새 없이 밀려와 우리를 덮쳤다. 가슴 깊이까지 들어가 서서 파도를 기다렸다 껑충 뛰어오르라고 했다.
"하나, 둘, 셋! 지금이야!"
나는 매번 물을 먹었다. 박자를 못 맞춰서. 노래 부를 때도 박치인데, 이런 박자도 잘 못 맞추겠다.
"하하하하."
파도를 무서워하는 나를 보며 남편과 아이들은 더 즐거워했다.
수영을 배운 아이들은 거침없이 파도를 향해 헤엄쳐 들어가거나 폴짝폴짝 파도를 넘어서며 어찌나 신나 하는지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막내와 난 모래사장 앉아 그들을 지켜본다. 남편과 두 아들은 파도타기에 신이 났다. 끊임없이 치는 파도가 아이들을 행복하게 했다.
이틀 동안 여기 네 곳을 돌아다니며 정말 내일이 없는 것처럼 놀았다. LA갈비와 삼겹살, 로메인과 쌈장, 김치와 김은 캠핑을 더 풍요롭게 했다. 집에서 매일 먹는 돼지고기도 밖에서 구워 먹으면 유난히 더 맛이 있었다.
밤은 아름답다.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수없이 반짝이는 별들이 어느새 밤하늘을 빼곡히 수놓고 있었다. 망원경으로 우주를 바라보는 것처럼 별들은 생생하고 가까이 내려와 있었다. 간간히 떨어지는 별똥별도 기억난다.
고기 구울 때 불이 약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장작을 사다가 모닥불을 피웠다. 도시와 다르게 자연 속의 밤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그래서 별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저 모닥불 하나에 의지하고 불멍을 했다.
우적우적. 우적우적.
"엄마, 말이 가까이에 있나 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풀 씹는 소리가 들렸다.
이히힝~~ 이히힝~~
갑자기 말들의 풀 뜯는 소리가 거친 숨소리로 바뀌었다. 소리가 점점 커졌다. 얼핏 싸우는 것 같기도 하다 생각했을 때,
따가닥, 따가닥!!!!
야생마들은 뛰기 시작했다.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어느 방향에서 달려오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악!!!!!!!!!!
모닥불 옆을 빠르게 말들이 지나갔다. 아니 달려갔다. 나는 본능적으로 아들을 끌어안고 머리를 싸쥐며 고개를 숙였다. 아들과 나는 기겁했다.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 야생말들의 눈에는 다행히도 우리가 보였나 보다.
겨우 가슴을 쓸어내렸다. 세면장에서 씻고 나온 남편은 아무것도 모른 채 여유롭게 걸어온다.
"평생 기억에 남겠네. 아깝다. 내가 있었어야 하는데....."
울먹이던 내 목소리에도 남편은 웃음을 참지 못하며 아쉬워했다.
다음날, 아침이다.
“엄마, 모기 물린 것 같아. 가려워."
바다에서 신나게 놀고 하루 만에 까무잡잡해진 둘째의 이가 유난히 하얘 보였다.
"글쎄...."
"제게 뭐야?”
둘째가 다리를 긁으며 물었다.
“초파리 아니야?”
텐트 모서리마다 유난히 작은 크기의 벌레, 수십 마리가 무리 지어 날고 있었다. 밖으로 내보내달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얼마나 작은지 텐트의 네트를 뚫고 들어온 모양이었다. 나는 휴지를 들고 눌러 죽였다. 그런데 텐트와 휴지에 빨간색이 묻어났다.
“이건 핀데? 모기였어?”
깜짝 놀랐다.
“아니야. 무슨 피가 난다고.”
남편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진짜 피야.”
비몽사몽 제대로 눈도 안 뜨고 남편은 무사태평이다. 아이들 다리에 모기기 물린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는데도 말이다.
"저기 봐. 초파리가 아니고 모기라고!"
다른 쪽 텐트 모서리를 가리키며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남편은 그래도 믿을 수 없다는 눈치다.
남편이 믿어주거나 말거나 난 엄마다. 아이들은 내가 지킨다. 다음날에는 아이들에게 긴 바지, 긴소매 옷을 입히고 텐트의 창문 네트까지 꽉 닫고 모기 기피제를 뿌려 샌드플라이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보호했다.
집에 와서 검색해 보고 알았다. 초파리처럼 생긴 그 벌레들은 샌드플라이. 흡혈 모기였다. 남편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맞았다! 흥 칫 뿡! (내 말을 안 믿었어.) 남편은 곤충학과를 나왔다. 나는 곤충학과도 아니고 석사도 아니다. 본 것만 믿는다. 때로는 책이나 공부보다 경험이 이긴다. (남편은 한국 곤충만 공부한 탓에 미국 곤충은 모르는 걸로!)
석사, 박사라고 하면 뭐든지 다 아는 걸고 착각하지만, 실제 박사들은 자신이 연구한 분야만 안다. 아주 좁다. 그 분야에서만 박사인 거다.
다음날, 남편은 샌드플라이에 물려보고 나서 제대로 느꼈을 것이다. 혼자 매우 가려워하며 고생 좀 했다.
난 속으로 '샘통이다.' 했다.
*샌드플라이(sandfly)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모기가 아닌 파리목의 흡혈곤충을 이르는 말이다. (출처 :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