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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경 Oct 18. 2024

글감 발굴 연습

일기 쓰는 이유 (1)

글감 발굴 연습

열심히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글쓰기에 소홀해질 때가 많다. (대부분은 핑계지만.) 그런 시기에는 되도록 자기 전에 일기라도 쓴다. 일기장은 A4 사이즈의 큰 공책을 사용하고 있는데, 손글씨로 최소한 한 장을 가득 채운다. 최소한의 분량을 정해두지 않으면 괜히 기록할 만한 일상이 없다고 착각해 일기 쓰기를 금방 포기할지도 모른다.


시작할 땐 막막하더라도 분량을 채우려고 앉아 있다 보면, 어떻게든 쓸 만한 것들이 꽤 발견된다. 읽었던 글, 봤던 영화, 관찰했던 현상, 특별했던 사건 같은 것들을 자유롭게 쓴다. 어떤 하루를 보냈든, 또 일기장을 펼쳤을 때 한 장을 채우리라는 자신감이 어떻든, 결과적으로 분량을 채우지 못한 적은 없다. 처음엔 종종 억지스럽게 분량을 채운 적도 있었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점점 더 수월하게 마음에 드는 글을 쌓아간다.


여러 소재에 대해 부담 없이 쓴 단편적인 일기들은 모두 나중에 좋은 글감으로 활용된다. 일기에 쓰인 여러 생각들을 이어 붙이기도 하고 조금 더 깊게 파고들다 보면 좋은 글이 되어준다. 다양한 경험, 섬세한 관찰력, 깊게 파고드는 사고력도 글쓰기의 중요한 요소들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끈기 있게 지속되는 습관이 아닐까. 글감을 발굴하는 역량은 습관화된 연습을 통해서도 길러지는구나, 그리고 그런 연습을 습관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기 쓰기구나 생각했다.



일기 근성 기르기

그런데 일기를 꾸준히 쓰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바로 일기 쓰기가 습관으로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초반에는 작심삼일의 반복이었다. 며칠간 일기를 열심히 쓰다가, 한동안 일기장을 멀리했다. 꾸준히 일기를 쓰리라 다시 한번 굳게 다짐하고, 한동안 안 쓰고, 다시 다짐하고, 한동안 안 쓰고. 이를 몇 번이고 반복하다가 나는 대체 왜 꾸준히 쓰지를 못하는 걸까 고민해 봤다.


고민의 결론은 내가 너무 힘을 줬기 때문이다. 그날 있었던 특별한 일도 적고, 나중에 읽으면 재밌겠지 싶어서 자질구레한 일상도 적고, 그런 사건들을 경험하며 느꼈던 감정도 적고, 하루를 보내는 도중 했던 여러 생각들도 최대한 녹여보려고 했다. 그렇게 매일 아무리 짧아도 30분 넘게 적다 보니, 바쁘고 바쁜 현대사회에 시간을 내기가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다른 일들로 너무 지친 날에는 '일기를 쓰려면 적어도 30분은 걸릴 텐데, 오늘은 힘드니까 내일 적어야지' 생각하며 미루게 되고, 한 번 그렇게 일기 쓰기를 놓치게 되면 그다음 날엔 더욱 쓰기 싫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새로운 방법은 딱 10분만 일기를 쓰는 거였다. 맞춰놓은 10분 타이머가 울리면, 쓰던 문장만 마무리하고 일기 쓰기를 멈췄다. 하루 10분이면 그리 길지 않아서 부담스럽지도 않다. 또 그 시간 안에 일기를 완성하고 싶은 마음에 최대한 많은 것을 담아내려는 욕심을 버리게 된다. 자연스레 정말 기록의 가치가 있는 것들을 담게 되는 것이다. 쓰는 도중에 끊기지 않도록 분량을 조절해 가며 쓰는 나름의 즐거움도 있었다. 이런 방법으로 일기 쓰기의 근성을 기른 덕에, 지금은 몇 분이 걸리든 매일 밤 일기장 노트 한 장을 채우는 걸 즐기는 사람이 됐다.



일기 쓰기의 매력

일기는 다른 글에 비해 확실히 부담 없이 쓸 수 있다. 평소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큰 탓인지 한 문장 한 문장 쓰기까지 오랜 시간과 고민이 필요하다. '아' 다르고 '어' 다른 표현들 중에서 무엇이 더 적절할지 곱씹느라, 오래 걸리지 않아도 될 문장을 붙잡고 늘어지게 된다. 그런데 일기는 그냥 쓰고 싶은 대로 끄적이기만 하면 된다. 주제를 고민할 필요 없이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옮기면 되고, 고심하며 개요를 짤 필요도 없다. 문장의 표현력이나 참신성, 가독성 따위의 것들로부터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그렇게 부담 없이 일기를 쓰다 보면, 일기가 굳은 생각을 풀어주기도 한다. 일기 쓰기에 재미를 붙이기 전,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 왜 또 한동안 글을 쓰지 않는 걸까 생각해 보니,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나도 별다른 생각 없이 살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다시 말해 생각이 굳으니 글을 쓰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뭐라도 적어야겠다 싶어서 무작정 책상에 앉아 일기장을 펼쳤다. 그렇게 아무거나 끄적이다 보니 뭐라도 써지긴 했다. 여태까지 생각이 부족해서 글을 쓰지 않은 것만은 아니고, 오히려 글을 쓰지 않다 보니 생각이 멈추기도 했던 거구나 싶었다. 글을 뭐라도 쓰니 일상 생활 중에서도 좀 더 예민하게 사건을 관찰하고 생각을 하게 되는 느낌이었다. (이때 일기의 효능을 어렴풋이 실감하고 일기 쓰기를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 위와 같은 노력을 하게 된 것일지도.)


침대에 누워 한 장을 끄적이다 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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