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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옥 Dec 03. 2023

별을 땄어요.

       

  나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 중이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13년이었다. 먼저 사진으로 보았는데 참 잘 생겼었다. 설렘과 환희로 그를 만나러 갔더니 눈만 내리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아쉽게 헤어졌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만난 건 일 년 정도 지나서였다.

  그는 내게 관심은 보였지만 여전히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 가끔 웃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함께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다. 우리는 자주 데이트를 하면서 정을 쌓았다. 내가 더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부터 제법 말을 많이 하더니 다른 사람들 듣는 데서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다고 했다. 언제 그 마음이 변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충만한 기쁨이 올라왔다.  

  가끔은 나를 아주 곤란하게 할 때도 있다. 이유 없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물건을 던지기도 한다. 그땐 나도 화를 내거나 이유를 물어보지만, 그의 속을 다 알 수는 없었다. 어떤 때는 아주 그냥 찻길에 들어가거나 길에 누워서 억지를 부리기도 한다. 이럴 땐 가슴이 다 타들어 가지만 그래도 나는 나쁜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듯이 그런 그가 웃기라도 하면 그 치명적인 미소에 나의 애간장이 녹아내렸다. 

  그도 내게 애정표현을 많이 한다. 슬그머니 내 등 뒤에 와서 목을 껴안기도 하고 밤낮도 없이 입술이고 뺨이고 뽀뽀를 한다. 나는 그 입맞춤에 빠져 수시로 입술을 쑥 내밀거나 손가락으로 내 뺨을 톡톡 거리면 그는 달려와서 쪽쪽 하고 사랑의 표시를 남겨준다. 내게 사주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어느 때라도 외투를 걸치고 나의 손을 잡아끌고 밖으로 나가자 고 한다.

  나는 갈수록 그의 노예가 되어가는 듯하다. 그가 원하는 건 거부할 수가 없을뿐더러 뭐든지 그를 위해 다 해주고 싶었다.     

  3년이 지난 어느 날 밤 그가 하늘을 향해 손을 뻗더니 급히 나를 불렀다. 

  “빨리 와서 손을 펴보세요. 별을 땄어요. 할머니 주려고요.”

  조그만 주먹을 나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다. 나는 울컥 목이 메었다. 

  누가 나를 위해 별을 따준 사람이 있었던가? 이처럼 멋지고 사랑스러운 그는 나의 첫 손주다. 이 아름다운 천사를 누가 내게 보내주었는가? 

  이런 손주 돌보느라 가끔은 허리가 아파서 한방병원 신세를 지고 손목이 아파서 물건을 들기 힘들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이유가 손주를 깊이 사랑하는 내 마음에 방해가 될 수는 없었다. 나는 기꺼이 그를 업어주고 안아주고 내 열정을 다해서 보살폈다.      

  언제부터인지 아기 울음소리를 듣기가 어렵다고 했다. 물론 서울 같은 대도시는 그래도 아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농어촌으로 가면 아이들은 고사하고 거주하는 젊은 사람 자체를 보기 힘들다. 

  굳이 한국의 출산율이 1.26명으로 OECD 중에서도 최하위라고 하는 뉴스를 보지 않더라도 저출산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내 주위에서도 느낄 수 있다. 젊은이들의 결혼 연령도 높아지고 비혼자가 늘어나다 보니 가임 숫자는 줄고 첫째 출산 시기도 늦어져 출산율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3포 세대란 말이 한동안 난무하더니 이제는 젊은이들이 5포 세대 7포 세대라고 한다. 인간관계, 내 집 마련, 꿈과 희망마저도 포기한 세대란 뜻이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내몰고 있을까? 걱정되고 가슴 아프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베이비붐 세대라고 불리는 우리의 젊을 때와는 다르게 산다. 해외여행 가고 자동차도 끌고 다니고 남이 하는 건 다하면서 현재의 삶을 즐긴다. 다르다고 무조건 잘못된 거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앞으로는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소리를 듣기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별을 따주고 뽀뽀를 해주고 희망이 되어줄 사랑스러운 손자는 정말 하늘의 별 따기처럼 만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내 손 꼭 잡고 산책하던 손주가 지는 해를 보면서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 할머니, 저기 해님이 노랗게 변했네. 눈이 안 부셔요”

  “응, 해님도 이제 집에 코오~ 자러 가나 봐.”

손주는 지는 해를 한참 바라보더니 따뜻한 노랫말을 만들어낸다.     

  해님이 노오랗네.  

  그 아래 서 있으면 

  우리 엄마 품속처럼 포근해요.     

  나는 이 사랑스럽고 소중한 손주를 힘주어 꼭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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