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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옥 Jan 12. 2024

엿쟁이 똥쟁이

         


  시장 입구로 들어서니 시끌벅적한 온갖 소리 틈새로 구성진 각설이 타령이 들려온다. 소리 나는 쪽으로 다가가 보니 초록, 빨강, 노란색의 조각 천으로 덕지덕지 기운 옷을 입은 젊은 광대가 수레 위에 나무 좌판을 올려놓고 녹음테이프 소리에 맞추어 가위질하면서 엿판을 정리하고 있다. 엿판 위에는 누리끼리하고 넓적한 엿 덩어리와 잘게 잘린 조각 엿, 땅콩으로 옷을 입은 엿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조심스레 엿판과 엿장수를 쳐다보았다. ‘요즘도 누가, 엿을 사 먹나?’ 하는 생각과 함께 잠시 철없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아저씨, 몇 개 줄 거예요?”

  “어디 보자, 병 한 개는 많이 못 준다. 다른 거 찾아와. 냄비 부서진 거나 숟가락 부러진 거, 하여튼 아무거나 많이 가져와라. 그래야 많이 주지.”

  아버지가 드셨던 작은 소주병으로는 어른 손가락만 한 엿 한가락이 다였다. 끈적끈적하지 않고 과자처럼 바싹한 엿 한 가락은 내 곁에 바짝 붙어있던 친구와 한입씩 먹고 나니 단번에 없어졌다. 

  입안에서 침이 괴던 바싹하고 달콤한, 참을 수 없는 그 맛의 유혹에 넘어가서 엄마한테 눈물 콧물이 범벅되도록 혼이 났다. 엄마가 석유병으로 사용하려고 뒤꼍에 간수해둔 귀한 정종병이 엿 세 가락으로 변해서 내 목구멍으로 넘어갔기 때문이었다. 그때까지도 등잔불을 밝히던 시골 마을이라 석유를 사려면 큰 병을 들고 가게로 가서 기름을 담아 와야 했었다.

  그 후로도 가끔 엿장수의 ‘쟁강쟁강 철썩철썩’ 장단 맞춘 가위 소리와 ‘엿 사요. 엿! 헌 병이나 양은 냄비, 숟가락 부러진 거, 헌 옷, 헌책 아무거나 다 바꿔줍니다.’ 하는 소리가 동네 골목길에 울려 퍼지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행여 엿장수가 지나가 버릴까 조바심 내며 고물들을 찾아내곤 했다. 때론 빨랫감으로 둔 아버지 점퍼가, 때론 살강 위에 둔 놋숟가락이 한 가락의 엿으로 둔갑하기도 했다.     

  그날도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십 리 정도 되는 신작로였다. 신작로라곤 하지만 버스나 트럭은 하루 한 번도 보기 힘든 시골길이다. 길 양쪽으로는 논밭도 있었고 산으로 둘러싸인 곳도 있었다.

  그 길은 거칠고도 먼 등하굣길이었지만 때로는 놀이의 공간이 되었고 길에 앉아 책을 펼치면 숙제 장소가 되기도 했다. 여느 때처럼 숙제하거나, 꽃을 꺾어 꽃반지나 꽃목걸이를 만들거나, 풀을 엮어서 올무를 만드는 놀이, 메뚜기나 여치 심지어 개구리까지 잡아서 다리를 흔들며 괴롭히기, 감나무에 올라가 홍시 따기 등 온갖 개구쟁이 짓을 그날은 할 수가 없었다. 찬 바람이 쌀쌀하게 불기 시작한 초겨울이라 길옆에는 텅 빈 나뭇가지들과 초록빛 보리 싹을 틔운 밋밋한 계단식 논과 스산한 바람에 떨어져 뒹구는 나뭇잎뿐이었다. 

  심심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는 발끝으로 길에 있는 돌멩이를 툭툭 차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 덜커덕덜커덕, 쟁강 쟁강!‒

  엿장수 아저씨가 수레바퀴의 굴림소리에 맞추어 가끔 한 번씩 ‘쟁강쟁강’ 가위질하며 맞은편에서 오고 있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심심한 우리는 멋쩍은 인사를 해 봤다. 물론 엿장수는 우리를 알지 못한다. 그냥 근처 사는 초등학생 정도로 알 뿐이었다. ‘쟁강쟁강’ 엿장수는 가위질을 두어 번 하고는 지나쳐 갔다. 

  그때 내게 기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친구들과 의논하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엿장수와 거리가 어느 정도 멀어지길 기다렸다. 한 오십 보나 멀어졌을까?

  “아저씨, 엿쟁이 똥쟁이 고래 엿쟁이. 엿도 한 가락 못 팔고 논두렁 밑에 앉아서 똥만 질질 잘 싸네.”

  우리는 큰소리로 이 노래를 부르면서 엿장수를 놀렸다. 처음 엿장수는 화가 난 목소리로 우리를 나무랐다.

  “야! 너희들이 누군지 다 안다. 너희 다음에 보면 혼난다.”

  하지만 엿장수의 그 정도 협박에 그만둘 우리가 아니었다. 우리는 다시 엿장수를 놀렸다.

  “너희들 요 아래 학교에 다니지? 교장 선생님께 이른다.”

  놀이에 막 맛을 들인 우리는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책 보따리를 단단히 동여매고 또다시 큰소리로 외쳤다.

  “엿쟁이 똥쟁이 고래 엿쟁이. 엿도 한 가락 못 팔고 논두렁 밑에 앉아서 똥만 질질 잘 싸네. 똥만 질질 잘 싸네.”

  엿장수는 엿판을 내버려 두고 우리를 향해 뛰어왔다. 이미 예상한 우리는 ‘다리야, 날 살려라.’하고는 계단씩 논으로 도망쳤다. 높은 계단들을 뛰어넘어서 강아지처럼 할딱거리면서 몸을 숨겼다. 구불구불 한 계단식 논 어느 계단 아래 숨었는지 찾기가 쉬운 일이 아니란 걸, 더구나 엿장수는 길 복판에 두고 온 엿 판 때문에 오랜 시간을 허비할 수가 없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득달같이 쫓아오는 엿장수의 기세를 보니 꼭 잡힐 것만 같아 더럭 겁이 났다. 우리는 논두렁 아래서 죽은 듯이 숨죽이며 쪼그리고 앉았다가 해가 지고 어둑해져서야 집으로 왔다.

  그 후 한동안은 엿장수를 만날까 봐 늘 마음이 조마조마했는데, 그 겨울 살을 에는 듯한 추위 때문인지 엿장수의 ‘쟁강쟁강’하는 가위 소리를 더는 들을 수가 없었고 나는 그 일을 잊고 지냈다.     

  겨울이 지나고 병아리들이 어미 닭과 거름더미를 헤치며 모이를 쪼고 있던 어느 봄날, 엄마는 마당에서 장대를 받친 줄에 빨래를 널고 난 방에서 숙제하는데 ‘쟁강쟁강’ 엿장수의 가위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자석에 끌리듯 벌컥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가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장단에 맞추어 노래를 흥얼거렸다. 

  “엿쟁이 똥쟁이 고래 엿쟁이. 엿도 한 가락 못 팔고 논두렁 밑에 앉아서 똥만 질질 잘 싸네.”

  빨래를 널던 엄마가 나를 돌아보시곤 꾸중하셨다.

  “이 눔의 가시나가 그 기 뭔 소리고? 입 안 다무나.”

  엄마의 꾸중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가위 소리가 우리 집으로 오고 있었다.

  ‒쟁강 쟁강 쟁강 쟁강‒  

  아차 싶은 생각에 재빨리 방으로 들어온 나는 두 손을 콩닥콩닥 뛰는 가슴에 붙이고 방구석에 놓여 있는 이불속에 얼굴을 묻고 벌벌 떨었다.

  “아줌마, 방금 나한테 욕한 아이 어디 있소?”

  엄마는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고 딱 잡아떼며 거칠게 대꾸했다. 

  간이 콩알만 해졌던 나는 엄마 말에 용기를 내어 창호지 문에 침을 발라 구멍을 내고 바깥을 살펴봤다. 붉으락푸르락 한 얼굴빛을 하고 당장 방문을 열어볼 것 같은 엿장수와 엄마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아니, 방금 여자아이가 엿 쟁이 똥 쟁이~ 하고 나를 놀리지 않았소?”

  “나는 그런 소리 못 들었심더. 설령 그런 말을 했다고 해도 아이들이 뭘 안다고, 그 뜻이나 알고 하겠는교? 철없는 아이들 말에 성질내지 말고 엿이나 한가락 주이소.”

  아껴둔 정종병 하나와 헌 옷가지를 챙겨서 엿장수에게 건네면서 하시는 엄마 말투는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그날 엄마는 아무런 말도 없이 쟁반에 엿가락을 소복이 담아 주셨다. 겁에 질려있던 난 엄마 눈치를 살피다가 얼른 엿 하나를 입에 넣고 깨물었지만, 그 엿은 달콤하고 바싹하기는커녕 찐득하니 이상한 가루 맛만 입안을 감돌았다.

  그 후로 엿장수를 놀리는 짓은 두 번 다시 하지 않았다.

  엄마 말처럼 그때는 그 뜻을 정말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니 엿장수에게는 꽤 자존심 상하는 철부지들의 놀림이었다. 친구들도 아직 기억하고 있을까? 유래도 알 수 없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그 노래를, 우리의 철없고 즐거웠던 유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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