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변에서 만난 참게
지방에서 살다가 서울 온 지도 꽤 되었다. 강변 가까이 이사를 하고 나서는 거의 매일 저녁 산책하러 나갔다.
집에서 2차선 도로 하나 건너면 한강 변과 연결된 몽촌나들목이 있어 쉽게 갈 수 있었다. 강변은 자전거 길과 인도가 구분되어 있고 농구장, 야구장, 인라인 등 여러 가지 운동을 즐길 수 있는 시설들과 넓은 풀밭이 이어져 있다. 이곳 풀밭에는 잔디보다 토끼풀이 더 많다. 토끼풀 꽃이 피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풀밭이 하얀 꽃 잔디로 변해서 밟기가 미안할 정도로 아름답고 멋진 초원이 된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텐트와 돗자리 등을 가지고 나와서 운동도 하고 휴식을 취하기도 하면서 여름밤의 열기를 식혔다.
처음 산책하러 갔을 땐 이 광경이 몹시 낯설었다. 왜 여기서 텐트를 칠까 여긴 공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람들이 식물들을 관리하고 가꾸는 공원이라기보다 휴식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나도 익숙해졌다.
30분 정도 걷고 나서는 한적한 벤치에 앉아 하늘의 별도 세어보고 강바람도 맞으며 고향의 밤하늘을 그려보는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밤에 보는 물안개와 강물에 비친 네온사인은 화려한 색과 빛의 향연이었다. 가끔은 음악인들의 연주도 들을 수 있는데 이건 덤이었다.
삭막하기만 할 줄 알았던 서울에서 아직도 이렇게 빛나는 별을 볼 수 있고 휴식과 운동을 즐길 수 있는, 이런 시설들이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시간이 흘러 어둠이 깊어지면 근처 운동기구를 몇 번 타보는 흉내를 내다가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제 밤에도 여느 때처럼 산책 후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희뿌연 가로등 불 아래서 작은 물체가 움직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정말 놀라웠다. 나 자신도 모르게 나직이 중얼거렸다.
‘게다! 참게네.’
작은 참게 한 마리가 조심스레 인도에서 자전거 도로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큰비가 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았기에 물길 따라 뭍으로 나왔다가 길을 잃은 것 같다. 조심스레 게를 집어 들었다. 위협을 느꼈는지 작은 몸에 붙은 집게발을 바둥바둥한다. 혹시 근처에 또 있을까 해서 살펴보아도 어두운 탓인지 더는 보이지 않았다. 50m 정도 떨어져 있는 강물에 다가가서 내려주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가슴 한쪽이 콩닥거렸다.
혹시 땅에서 해야 할 일이 있어 힘들게 나왔는데 내가 다시 물로 보내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런데 어젯밤에도 산책하러 가는 길에 그 지점에서 또 한 마리의 참게를 만났다. 그제 만난 게보다 조금 큰 거 같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길 위에서 꼼지락거리는 게를 보면서 밟혀 죽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난감했다.
이 게 들도 혹시 산란을 위해 뭍으로 나온 것인가?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본 붉은 게 들이 산란을 위해 낙엽 더미 쌓인 산으로 떼 지어 기어오르던 장면이 떠올랐다. 결국은 그 참게의 선택을 존중해 주기로 하고 나는 가던 길을 그냥 갔다.
그러나 괜히 마음이 쓰여서 다른 날처럼 느긋이 쉴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유심히 살펴봐도 게는 보이지 않았다. 집에 와서도 혹시 잘못되지나 않았을까? 내내 마음이 쓰였다.
한강에 참게가 산다는 것이 참 반가웠다.
수많은 생명체에게 저 강이 터전이 되겠지? 새삼 길을 걸을 땐 바닥을 한 번 더 보면서 조심스레 발걸음을 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