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를 알아가기
진성이 곧 생소리라고 생각했다. 생소리를 내면 나는 목이 아프고 듣는 이들은 귀와 마음이 불편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생소리와 노래할 때 쓰이는 진성은 엄연히 다른 것이었다. 진성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는 나에게 소피아쌤은 말했다.
"오히려 제대로 진성을 내면 목이 안 아프고 더 듣기 좋은 소리가 나요. 노래의 모든 부분을 진성으로 쓸 수는 없지만 진정의 감각을 반드시 익혀야 해요!"
진성의 사전적 의미는 양쪽 성대가 모두 진동해 나는 소리이다. 가성은 성대를 얇게 접촉해 점막만 진동하는 소리이다. 내가 보컬 트레이닝을 통해 이해한 진성은 알맹이가 있는 딴딴한 소리이다. 지금까지 난, 진성이 어떤 소리인지 구분도 못했고 내지도 못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서 성가대를 할 때 다른 사람들이 내는 소리를 듣고 내가 스스로 터득한 소리는 힘없는 가성이었다. 내가 듣기에도 예쁘지 않았고, 일명 귀신 소리라고 말하는 지인들도 있었다. 그 말에 기분이 나빴지만 부인할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딱 그 소리였다.
20대 때 노래하는 것은 좋아했지만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누군가의 앞에서 노래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이미 나를 가두고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잘 어울리는 직업이 교사라고 생각하셨다. 나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나의 의식 어딘가에 어느 정도 남아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나는 많은 영역에서 내가 아닌 남이 이야기하고 정해준 대로 나의 한계를 정했었고, 내가 진짜 원했던 것은 점점 더 깊숙이 가라앉았다.
나는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잘했다고 인정받았던 일들만으로 나의 꿈을 제조했고, 거기서 벗어나는 일들은 감히 생각도 못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 시절 나에겐 힘이 없었고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나를 잘 안다고 믿는 주변 사람들의 판단을 비판 없이 수용했다. 그 시절 나의 소리는 나를 닮아 힘이 없었다.
이제 나는 힘이 생겨나고 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한다. 그리고 나를 힘없게 만들었던 트리거들을 하나씩 하나씩 제거하고 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타인이 아닌 내가 나에게 채워주고 있다. 최고가 되고 싶은 욕구는 매일 조금씩 덜어내고 있다. 내가 가진 만큼 표현하는 것에 만족하기 위해 마음을 다독이고 있다.
신기하게도 내가 바뀌니 그렇게 안되던 진성도 진도가 나갔다. 아직 초보 단계이지만 그래도 진도가 나가기 시작한다. 초등학생 상담을 하다 보면 부모가 바뀔 때 아이들에게 가장 빠르고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어릴수록 부모의 영향력이 더 크기에 그럴 것이다. 성인인 나의 보호자는 나이다. 나의 내면과 태도가 바뀌니 그것이 나의 노래에 적용된다. 노래를 통해 진짜 나의 목소리 그리고 진짜 나의 삶을 찾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