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도시보다 먼저 사람의 마음에 내려앉는다
언제나 바다에서 시작된다.
여름의 부산이 파도와 땀의 기억이라면, 겨울의 부산은 빛과 숨결로 남는다. 찬 바람이 골목을 돌아 나올 즈음, 남포동 광복로의 트리에는 가장 먼저 불이 켜진다. 그 불빛 아래 사람들은 잠시 걸음을 늦춘다. 손에 쥔 호떡에서 김이 오르고, 아이들은 이유 없이 웃는다. 부산의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 다만 오래된 거리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앉은 빛이 하루를 위로할 뿐이다.
조금 더 바다 쪽으로 내려가면, 광안리는 또 다른 표정으로 밤을 맞는다. 겨울 바다는 여름보다 훨씬 솔직하다. 파도는 낮고, 소리는 깊다. 그 위로 드론들이 하나둘 모여 하늘에 그림을 그릴 때, 사람들은 동시에 고개를 든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같은 장면을 기억하게 된다. 크리스마스란 원래 그런 날인지도 모르겠다. 각자의 삶이 잠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밤.
도시를 벗어나 기장으로 가면, 부산답지 않은 풍경이 펼쳐진다. 하얀 장식과 조용한 조명, 인위적인 눈마저도 이상하게 잘 어울린다. 이곳의 크리스마스는 소란스럽지 않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 사이에도 묘한 여백이 있다. 누군가는 바다를 보고, 누군가는 트리를 본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의 겨울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나는 부산의 크리스마스를 좋아한다. 화려하지만 과하지 않고, 낭만적이지만 과장되지 않아서다. 겨울 부산은 무엇을 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빛을 켜두고, 바라볼 사람을 기다릴 뿐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사람들은 특별한 장소를 찾지만, 사실 특별해지는 건 장소가 아니라 마음인지도 모른다. 부산의 겨울은 늘 그 사실을 조용히 증명한다. 바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빛은 해마다 다른 모양으로 켜진다. 우리는 그 사이를 걷는다. 추위를 핑계 삼아 서로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면서. 그렇게 또 하나의 겨울이, 기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