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도시에서, 옷으로 기억을 남긴다는 것
뉴욕의 2월은 여행자에게 한 번쯤 용기를 묻는 계절이다.
도시에 도착한 첫날, 공항 문이 열리자마자 얼굴을 스치는 공기는 ‘겨울’이라는 단어보다 훨씬 날카로웠다. 눈으로 보기엔 평범한 영하의 날씨였지만, 빌딩 사이를 파고드는 바람은 체온보다 먼저 마음을 움켜쥐었다. 그때 알았다. 이 도시는 예쁘게 입은 사람보다, 잘 버틴 사람을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는 것을.
나는 뉴욕에서 유독 옷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 예쁜 코트를 입고 싶었고, 사진 속 나는 분명 그럴듯해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몇 블록만 걸어도 손끝이 저려오는 추위 앞에서 ‘스타일’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졌다. 결국 살아남는 옷차림이 먼저였고, 그다음이 사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서를 지켰을 때 사진은 더 자연스러워졌다.
두꺼운 패딩 안에 얇은 옷을 여러 겹 껴입고, 목도리를 목이 아닌 마음까지 감싸듯 두른 채 걷던 맨해튼의 거리. 실내에 들어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더워지고, 다시 밖으로 나서면 또 다른 겨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온도차 속에서 나는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며 하루를 조율했다. 뉴욕의 2월은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람을 시험했고, 레이어링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방식이었다.
사진을 찍을 때면 더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바람이 강한 다리 위에서는 머리를 묶고, 전광판이 번쩍이는 거리에서는 옷 색에 신경을 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잘 나온 사진’보다 ‘그때의 나’를 담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귀까지 덮은 비니와 두툼한 패딩 속에서 웃고 있는 얼굴이, 얇은 코트 차림으로 참고 버티던 표정보다 훨씬 뉴욕다웠다.
이 도시의 겨울은 여행자를 단단하게 만든다. 옷을 통해 체온을 지키고, 체온을 통해 하루를 지키고, 그렇게 지킨 하루가 결국 기억이 된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안다. 2월의 뉴욕에서는 멋있게 보이려고 애쓰기보다, 오래 걷고 오래 웃을 수 있는 옷을 입는 게 가장 멋진 선택이라는 걸.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다 보면, 가장 마음에 남는 장면은 늘 비슷하다. 바람에 코끝이 빨개진 채 서 있던 순간, 장갑 낀 손으로 커피를 감싸 쥐고 있던 오후, 그리고 그 모든 추위를 견디게 해준 옷들. 뉴욕의 겨울은 그렇게, 입고 있던 옷과 함께 기억 속에 남는다.
"얼어 죽지 않으면서 인생샷을 남기는 법" [2월 뉴욕, 코트와 패딩 사이에서 고민한다면 필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