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날 밤, 나는 여행이 아닌 아이의 일상을 챙기고 있었다.
거실 한가운데 펼쳐진 캐리어는 마치 입을 벌린 거대한 고래 같다. 그 속으로 아이의 일상을 통째로 옮겨 담아야 한다는 사실에 잠시 아득해진다. 혼자 떠나던 시절의 여행 가방은 가벼웠다. 읽다 만 책 한 권, 여벌 옷 몇 벌, 그리고 여권이면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현관문을 나서기도 전부터 '준비'라는 이름의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하게 만든다. 스마트폰 메모장에 빼곡히 적힌 체크리스트를 몇 번이나 들여다보며, 나는 물건이 아닌 마음을 다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의 짐을 싸는 일은 '만약에'라는 수많은 가정과 싸우는 일이다. 낯선 곳에서 아이가 열이라도 나면 어쩌나 싶어 종류별로 해열제를 챙겨 넣는다. 비행기 안에서 아이가 울음을 터뜨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될까 봐,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젤리와 스티커 북을 비상식량처럼 가방 깊숙한 곳에 숨겨둔다.
기저귀는 하루치 계산보다 넉넉하게, 낯선 침대에서도 익숙한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낡은 애착 인형도 잊지 않는다. 캐리어의 빈 공간이 줄어들수록 내 마음속 불안의 부피는 조금씩 줄어든다. 그것은 단순한 짐이 아니라, 엄마라는 이름으로 준비한 아이를 위한 안전지대다.
짐을 싸다 문득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본다. 저 작은 몸으로 낯선 세상을 마주할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고작 익숙한 물건들을 챙겨주는 일뿐이라는 사실이 묘하게 시리면서도 벅차다. 문득 "준비된 만큼 편안한 여행이 된다"던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어쩌면 완벽한 준비물이란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챙겨야 할 것은 수십 가지의 리스트가 아니라, 아이가 주스를 쏟거나 갑자기 칭얼거리는 돌발 상황에서도 "괜찮아"라고 말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아닐까. 짐을 챙기는 과정은 결국, 내 아이를,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우리의 여행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이었다.
지퍼를 닫는 소리가 고요한 새벽 공기를 가른다.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가방은 어쩌면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의 무게일지도 모르겠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가 미처 챙기지 못한 부족함은 낯선 여행지의 공기가, 그리고 우리가 함께 손잡고 걸을 시간이 채워줄 테니까. 현관을 나서는 순간, 무거웠던 걱정은 사라지고 설렘만이 가방을 끄는 손끝에 남을 것이다. 우리의 여행은 이미 시작되었다.
준비물 걱정 끝 "혹시 뭐 빠뜨린 건 없을까?" 공항 가는 길, 식은땀 흘리지 않으려면 이 리스트만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