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바람, 그리고 얇은 코트 자락 사이로 스며드는 여행의 온도
2월의 대만은 봄이라 부르기엔 아직 서늘하고, 겨울이라 단정 짓기엔 바람 끝에 묻어나는 물기가 퍽 다정하다.
처음 2월의 타이베이에 도착했을 때를 기억한다. 남쪽 나라라는 막연한 기대 하나로 얇은 원피스와 반소매 티셔츠를 캐리어 가득 채워 갔던 날이었다. 공항 문을 나서자마자 마주한 것은 작열하는 태양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묵직하게 누르고 있는 회색빛 구름과 피부에 달라붙는 축축한 공기였다.
기온은 15도 언저리였지만, 습기를 머금은 대만의 추위는 뼈 속으로 파고드는 듯한 독특한 한기를 품고 있었다. 나는 급하게 가방 깊숙이 넣어두었던 카디건을 꺼내 입으며 생각했다. 여행의 옷차림이란 단순히 체온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그 도시의 날씨와 화해하는 첫 번째 의식이라는 것을.
그 후로 나는 2월에 대만으로 떠날 때면, 옷장 앞에서 가장 신중해지곤 한다. 이 시기의 대만은 변덕스러운 연인 같다. 아침에는 비가 내리다 정오에는 해가 쨍하고, 해가 지면 다시 으슬으슬한 바람이 분다. 그래서 나의 선택은 언제나 '겹쳐 입기'의 미학을 따르는 것이다. 두꺼운 패딩 하나로 무장하기보다는, 얇은 히트텍 위에 부드러운 셔츠를 입고, 그 위에 언제든 벗어서 팔에 걸칠 수 있는 트렌치코트나 도톰한 니트 카디건을 덧입는다.
지우펀의 붉은 홍등 거리를 걸을 때는 비가 흩뿌리는 경우가 많다. 이때 방수 기능이 있는 얇은 바람막이나 가죽 재킷은 훌륭한 방패가 되어준다. 우산을 쓰기엔 애매하고 그냥 맞기엔 찝찝한 그 비 사이를 걸을 때, 빗방울을 튕겨내는 옷감의 감촉은 묘한 안도감을 준다. 반면, 단수이의 강변에서 노을을 볼 때는 목을 감싸줄 얇은 스카프 하나가 절실해진다. 강바람이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릴 때 스카프를 여미며 마시는 따뜻한 밀크티 한 모금은 그 어떤 명화보다 깊은 위로가 된다.
여행지에서의 옷차림은 결국 내가 그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너무 편안한 트레이닝복보다는, 대만의 낡고 운치 있는 골목과 어우러지는 베이지색이나 차분한 무채색의 옷들을 챙긴다. 튀지 않으면서도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색감.
사진 속에 담긴 나는 화려한 관광객이 아니라, 잠시 그곳에 사는 사람처럼 보이길 원하기 때문이다. 얇은 옷들을 여러 겹 껴입은 채 타이베이의 골목을 걷다 보면, 내 몸도 도시의 리듬에 맞춰 유연해지는 기분이 든다. 더우면 하나를 벗고, 추우면 다시 여미는 행위는 마치 여행 중에 마주하는 뜻밖의 상황들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마음가짐과 닮아 있다.
2월의 대만 여행을 준비하며 옷을 고르는 시간은, 계절의 틈새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완벽한 겨울도, 완전한 봄도 아닌 그 모호한 경계에서 나는 얇은 옷들을 겹쳐 입으며 균형을 잡는다. 여행이 끝난 뒤, 옷장 속에 다시 걸린 트렌치코트에서는 여전히 대만의 습한 비 냄새와 달콤한 펑리수 향기가 희미하게 배어 있는 듯하다. 옷은 그렇게 기억을 입고, 나는 그 옷을 입고 다시 일상을 살아간다. 다음 여행을 꿈꾸는 일은 어쩌면, 그 계절에 맞는 옷을 마음속으로 미리 입어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날씨와 옷차림 현지인 옷차림에서 배운, 2월 타이베이 여행의 실제 체감 온도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