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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제웅 Mar 29. 2022

젓가락이 없어서 숟가락으로
라면을 먹었다.

이상한 미니멀리스트

라면을 끓였다. 아뿔싸 내게 젓가락이 없었다.


 룸메이트가 방을 나가고 나서 내가 식기류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편의점에서 나무젓가락을 얻어왔어야 했는데! 라면을 이미 두 개나 끓였는데! 급하게 서랍을 뒤졌다. 플라스틱 일회용 숟가락이 있었다. 휴 다행이다. 이거라도 사용해야지. 라면이 붇기 전에 먹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아니 근데 숟가락으로는 라면 면발이 잘 떠지지가 않았다. 숟가락에 기름만 묻어나고 흘러내려 먹을 수가 없다. 인내해야 한다. 괜히 국물을 떠먹었다. 젓가락으로 먹을 땐 국물을 먹으려면 양은 냄비를 통째로 들어 올려야 했지만 숟가락으론 간편하다. 오히려 좋다. 휘어가는 작은 숟가락으로 점점 면발을 집을 수 있게 되었다. 면발이 불어서인가, 없던 손재주가 생긴 건가 싶다. 국물과 면발을 한 번에 호로록 먹는다. 어디선가 라면은 영양학적으로 훌륭한 음식이라고 했다. 국물에 나트륨만 많을 뿐 괜찮다고 했다. 먹고 나서 물 많이 마셔야지. 그러한들 어떠한가. 국물을 떠먹는 흰 국물 라면도 있으니까. 조화롭게 먹으니 더 좋다. 나를 잠깐 속인다. 아니다. 속여지지가 않는다! 너무 불편하다! 쇠젓가락을 사야겠다. 손가락이 저려온다. 태어나서 안 쓰던 근육을 쓰는 거 같다. 별 별거에 노력을 다 하고 있다. 사실 젓가락질도 어른답게 잘 못해서 가끔 손가락이 저린데, 이왕 사는 거 교정용 젓가락을 사야 하나 싶다. 


 나는 자칭 미니멀리스트이다. 불필요한 물건은 쳐다도 보지 않는다. 가끔 방에 화분 몇 개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한다. 그렇지만 숟가락으로 라면을 먹는 건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다. 꼭 필요한 물건은 있어야 한다. 

이건 자연인에 더 가까운 삶인 거 같다. 좋게 포장하고 싶다. 어느 스님은 모든 것을 비워야 비로소 가득하다고 했다. 그래 내 방은 가득하다. 쿠팡에서 사서 마신 2L짜리 빈 생수병도 줄 서있다. 만약 홍수로 내 방이 잠긴다면 저것들을 꼭 껴안고 탈출해야겠다.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 모아두는 것이다. 집안일이 귀찮아서 혹은 내가 게을러서 치우지 않은 게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얼른 젓가락 사야지. 설거지거리가 하나 늘어나겠네. 귀찮다.


 젓가락 한 짝을 인터넷에서 잘 팔지 않았다. 난 한 짝만 있으면 되는데. 거참 박하다. 젓가락 한 짝 내 방에 없다는 게 어이가 없다. 한 짝에 만원이나 하네. 만원이면 내가 좋아하는 엔초 아이스크림 30개를 사 먹을 텐데. 고민스럽다. 아니다 난 자연인이 아니다. 더 이상 이런 미친 생각을 그만두어야 한다. 젓가락 한 짝만 주문한다. 휴 근래 최고의 소비였다. 좋게 포장하려 해도 짠내 나는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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