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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과 미련, 그리고 순응과 극복

영화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부산국제영화제

by 영화파파 은파파

Program Note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각 그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저 유명한 첫 문장을 빌려오자면 불행은 비슷해 보이지만 같은 꼴이 하나도 없다. 행복은 모든 퍼즐이 완벽하게 충족된 상태인 데 반해 불행은 어떤 퍼즐이 사라졌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백영옥 작가의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은 바로 이 상실과 결핍의 퍼즐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제목 그대로 이별의 아픔을 겪은 이들이 모여 아침 7시에 조찬을 먹고 다 같이 이별영화를 보는 모임이 있다. 이들은 각자의 실연기념품을 교환하며 각자의 이야기를 공유한다. 이 자리에, 연인과 헤어진 비행기 승무원 사강(수지)과 컨설턴트 강사 지훈(이진욱)도 참석하게 된다. 실연 후 제대로 떠나보내지 못한 이들의 시간을 그리는 영화는 이들의 사연을 여러 각도에서 다시 복기하며 공감의 통로를 확보한다. 보편적인 이야기, 익숙한 캐릭터에 특별함을 더하는 건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다. 여기에 사연을 설명하기보다 인물의 처지와 감정의 파장을 관찰하는데 집중하는 임선애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타인의 이야기에 생명을 더한다. 과거가 되지 못한 것들이 현재에 계속 말을 걸어올 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 기계적인 위로 대신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의 흔적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 함께 고민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출처 :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


실연을 통해 돌아보는 관계의 끊고 맺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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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제는 '실연'이다. 실연을 통해 사람들의 관계를 돌아본다. 본디, 실연이란 쉽게 '사랑의 실패', '연애의 실패'로도 볼 수 있지만, 필자는 보다 넓은 시각으로 '관계의 끊고 맺음'으로 봤다. 그래도 영화의 중심이 되는 감정은 단연 '사랑'이다. 이 영화는 실연당한 사람들의 아픔, 미련, 그리고 순응과 새로운 시작으로 그들의 내면을 비춘다. 영화의 제목처럼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조찬모임을 마련하고, 그들에게 위로를 전하고자 한다. 하지만, 사람에게 가장 원초적인 감정 중 하나인 사랑을 잃고, 그 관계가 깨짐으로써 얻는 아픔과 상실감은 제3자의 위로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모임은 실연을 기념으로 승화하면서 극복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기념으로 승화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런 과정들을 각 인물들을 통해 상황, 감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비춘다. 아마도 실연을 그저 슬프게만 바라보지 않으려는 원작의 시선과 감독의 의도가 합쳐진 것이 아닐까싶다. 여기서 배우 '수지'의 연기력은 빛을 발한다. 그녀의 얼굴에서 처연함과 슬픔이 자연스레 묻어나며 감정의 생생함을 관객에게 전한다. 점점 배우로써 다양한 연기를 선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앞으로 더욱 기대된다. 실연이란 상황에 처했을 때, 여자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아주 직선적으로 표현한다. 직선적인 표현이 인물의 처연함과 슬픔을 더욱 극대화시킨다. 연기적인 기술도 훌륭하지만, 주어진 상황에 맞춘 유연함이 영화에도 적절히 녹아들어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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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욱' 배우는 분위기만으로도 로맨틱하고, 댄디함이 자연스러운 배우라고 생각한다. 이번 영화에서도 고유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캐릭터에 적용된다. '이진욱' 배우가 맡은 인물 '지훈'도 역시나 실연을 당했고, 그 과정과 조찬모임에 참석한 이후를 영화가 비추고 있다. '수지' 배우를 통한 '사강'의 처연함과 슬픔이 직선적, 표면적으로 느껴졌다면, '지훈'은 비교적 은유스럽고 감정을 꾹꾹 눌러담은 느낌을 받는다. 단순히 남자와 여자의 차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두 인물의 차이도 이번 영화를 보는 재미 중 하나가 될것이다. 그 외에도 '유지태', '금새록' 배우를 통한 4명의 인물이 가진 관계의 끊고 맺음도 이번 영화의 주목할 부분이다.

영화를 본 뒤 곱씹어본 부분 중 하나는 실연은 꼭 당했다라고 표현한다는 것이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조찬모임에도 양 측이 모두 참석하는 모습을 봤을 때, 사람에게 실연이란 주도적인 것이 아니다. 헤어짐을 먼저 말하는 사람에게도 실연은 당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헤어짐을 경험하는 사람의 보상심리일까?' '나는 실연을 당했으니 슬프니 주변의 위로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실연당한 사람 모두에게는 위로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등의 여러가지 생각을 갖는다. 결국, 영화는 이별을 결정한 사람도, 헤어짐을 통보받은 사람 모두 위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4명의 인물의 관계를 통해 새로움, 그리고 생각과 입장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신선한 피드백을 통한 위로가 영화의 주제의식이 된다.

또한, 이번 영화에서 '실연'은 미련과 그리움의 감정이 발생하는 관계성이라는 것에 집중한다. 하지만, 그 미련과 그리움을 적절히 끊어야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감정에 갖혀있으면 정체된 나를 보게되고 전진은 더디게 된다. 더불어 타인의 상처를 이해할 수 있어야 비로소 나를 이해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즉, 이 영화는 '실연'이라는 관계의 상실에서 비롯되는 감정을 통해 사랑으로 인한 인간의 관계성과 개인의 성장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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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이번 영화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은 매우 매끄러운 감정 드라마다. 내년에 개봉 예정으로 어느 계절에 개봉할 지는 모르지만 가을 또는 겨울에 어울리는 영화로 느껴진다. 남녀의 감정을 촉촉하고, 담백하게 담고 있으며 대중들의 많은 공감을 부를 것으로 생각된다. 거기에 배우들의 감정적인 열연이 돋보이기에 연기에 초점을 두고 관람하더라도 매우 흥미로운 영화가 될것이다. '수지'와 '이진욱' 두 배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감정의 향연과 이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통한 연출이 이번 영화의 매력이다.

평점 : 3.5 (추천)

한 줄 평 : 실연을 통한 관계에 대한 조명, 그리고 구원에 대한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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