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망한다 조기 은퇴를. 아니면 그 비슷한 거라도

연재칼럼-4

by 오숙하

최근 몇 년간 취미를 비롯해 각종 모임에서 주로 은퇴를 하신 분들과 교류를 하게 되었다. 안정된 노후를 건강하게 보내는 사람들을 보다보니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생겼다. 하이킹을 하는 모임이 주로 평일이라 휴가 때만 참여하다가 서서히 안 가게 되면서, 나는 언제쯤 주에 5.5일을 일 하는 내 일상에서 벗어나서 시간 부자가 되어볼 수 있을지 조급함을 느꼈다. 한동안은 몇 년 전 유행하던 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경제적 독립, 조기 은퇴)라는 개념에 빠져서 계산기를 두들겨 보기도 했지만, 주택대출이 생겨버리니 비현실적인 꿈이 되어버렸다. 주식이나 코인이 대박이 나서 목돈이 생기지 않는 이상, 난 꼬박꼬박 월급을 받고, 대출 이자를 내고, 또 노후 자금을 위해 저축을 하면서 몇십 년을 더 살아야 한다. 그나마 그것은 AI로 내 직업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가정하에서다. 혹자는 2030년, 또는 2035년이면 대부분의 직업이 사라지고 사람들은 정부의 기본수당에 의지해서 살게 되는 세상이 온다고도 예측하기 때문이다. 오, 그렇다면 강제로 은퇴를 하게 되는 것인가? 자의든 타의든 직업이 없이 살아야 하는 세상이 된다면, 그 변화의 물결은 나 같은 소시민이 온몸으로 버텨낼 수 있는 종류는 아닐 것이다.



사실 은퇴를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당히 적지 않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은퇴를 하지 못하고 그전에 일을 그만두게 된다. 그 연령 때까지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성실함과 건강, 그리고 기타 환경이 조성되어야만 완주할 수 있는 일종의 마라톤이다. 정말 대단한 성취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 마라톤을 다 뛰고 싶지 않은 나 같은 사람도 있다. 불과 한 달 사이에 두 번의 장례식에 가게 되었다. 두 분 다 인격이 훌륭하셨고 평생 성실하게 일하신 분들이셨다. 한 분은 은퇴하고 일 년도 되지 않아서, 또 한 분은 은퇴 후 몇 주도되지 않아서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하게 되셨다. 평생 열심히 일한 덕분에 안정된 노후를 구축하셨는데, 그걸 누리지 못하시고 떠나신 것이 참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분들만큼 성실하지 않은 나는, 평균적인 은퇴연령보다 10년, 아니 5년이라도 일찍 은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택 대출을 빨리 갚아야 한다. 생활비 지출을 줄이고, 적게 쓰면서 검소하게 사는 생활패턴을 구축해야 한다. 그게 아니면 일주일에 2-3일 정도만 일하고 나머지 4-5일은 쉴 수 있는 생활패턴도 괜찮을 것 같다. 아니면 1년 정도 무급휴가를 신청해보고 싶다. 누군가는 이런 나의 계획이 무모하고 게으르다고 할 수도 있겠다. 돈을 벌 수 있을 때는 무조건 감사하게 일하는 것이라는 말에도 물론 일리가 있다. 하지만 조기 은퇴를 바라는 나의 마음은 일종의 겸손을 바탕으로 한다. 언제 끝나게 될지 모르는 인생의 유한함을 받아들이는 겸허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을지라도 좋다.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잠시 동안이라도 시간부자로 살아보고 싶다. 돈에 구애받지 않고 내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상태를 경험해보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니 AI로 직업이 없어지는 세상이 오는 게 걱정스럽기보다는 은근히 기다려진다. 자의든 타의든 조기 은퇴를 하게 되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image.png 은퇴를 하면 고래 등에 붙어있는 따개비를 떼어주는 일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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