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6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슴속에 이상적인 직업 한 두 개 정도는 품고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성인이 되고 나서 직업으로 자아실현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후로부터는,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의 직업이 궁금해졌고, 소위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직업을 부러워했다. 현재의 직업이 불만족스러워서 일 수도 있고, 아니면 지금 이 길이 내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일 수도 있겠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서 이상적인 직업군도 당연히 달라질 터이다. 분야와 관계없이 한 집단에서 승진을 해서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을 꿈꾸는 이도 있겠고, 의사나 변호사같이 전통적으로 사회적 인정을 받는 직업군을 소망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그쪽 분야로 전직을 한 사람들도 몇 명 보았다. 어딘가에는 나의 직업인 교사를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적성에 맞을 것이고, 방학도 있고 비교적 안정적인 편이기 때문이다. 나도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상당히 큰 편이지만, 요새 사내 정치로 골머리를 앓고 있어서 그런지 다른 분야의 일을 해보는 상상을 종종 하게 된다. 시청에서 재활용이나 쓰레기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일해보고 싶기도 하고, 아예 다시 공부를 해서 전기 기술자같이 자격증이 필요한 일을 해보면 어떨까도 싶다. AI로 직업이 없어지고 있는 시대에서 앞으로도 살아남을 직업이 무엇일지도 고려해야 한다. 사실, 내가 오랜 시간 꿈꾸던 직업은 작곡가였다. 내 재능이 별로 경쟁력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참 쓰라긴 경험이었지만, 그 후에도 내 안에는 늘 나만의 것,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망의 불씨가 희미하게나마 살아남아있다. 음악이 안된다면, 음악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은 어떨까? 장편 소설을 쓸 깜냥이 안 돼도 중단편 소설은 쓸 수 있지 않을까? 슬프게도 나의 이상적인 직업의 단점은 내 창작물을 소비해 줄 독자들이 나를 선택해 주어야, 비로소 직업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혼자 글을 써나갈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취미이고, 취미는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 그리하여 나의 이상적인 직업은 내 안의 작은 불씨가 사그라지지 않도록 해주는 일이어야 하겠다. 밥상에 밥을 올려주고, 일이 너무 괴롭지 않아서 퇴근해서도 글을 쓸 여력이 남아있는 정도의 노동 강도여야 하겠다. 가끔은 집중해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휴가를 비교적 길게 낼 수 있는 직업이면 좋겠다. 어라, 떠오르는 직업군이 있다. 나, 그 일 지금 하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