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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l 09. 2022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표도르 도스또예프스끼 따라 하기

죄와 벌. 번역된 그의 문체.


존경하는 선생, 제가 감히 선생께 정중한 대화를 청해도 될까요?

제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선생은 근심 걱정이 없어 보입니다만.


근데, 그거 아십니까?

인생의 고달픔을?


선생이 보기에 저는 어떤 사람 같습니까?

주정뱅이? 실직자?


사람이란 게 뭡니까?

외로우니까 사람입니까, 아 외로워야 사람입니까?


지금부턴 그 이야기를 해보죠.

잘 들으셔야 합니다, 선생.


/


선생은 늦은 밤 텅 빈 거리에서 가로등 어깨를 끌어안고 울어본 적이 있습니까?

빌딩 숲으로 뿌옇게 내려앉은 새벽안개 뒤에 숨어 울어본 적이 있습니까?


선생, 외롭지 않다는 말은 다 거짓입니다. 거짓말이기도 하지요.

그래요, 제가 본 사람 한정으로 그렇다고 하지요.

그런데 선생! 그거 아십니까?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그걸 갈대가 몰랐다는 게 말이 됩니까!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임을?

그걸 몰랐다는 게 말이 됩니까!



아직 뭘 모르는 갈대 같은데, 술이나 더 마시라고 하십쇼!


/


그림자처럼 쓸쓸하다...

선생. 그건 남자든 여자든, 젊은이든 노인이든 다르지 않습니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십쇼.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오는 법입니다.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는 겁니다!


/


이보시오, 선생.

젊은 사람들은 너무나 자주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찾지요.


그건 자기 자신을 지탱할 수 없을 때나 하는 짓입니다!

외로움을 지워버리기 위해 자기 자신을 지워버리는 것과 같지요.

설사 그것이 우정 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나타난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렇게 살바에는 차라리!

외로움을 부둥켜안고 사는 게 낫지요.

예? 아시겠습니까? 아시겠소?


명심하십쇼.

당신이 외로움을 견디며 자신의 길을 잘 가고 있는지를 당신 자신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


젊은 양반.

외로움은.

오직 이 세상에 혼자 내던져졌다는 상황에서 우러러 나온 것이지요.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근원적 외로움인 겁니다!


그래서 우린 뒷걸음질로 걸을 때가 종종 있단 말입니다!



들으셨습니까? 듣고 계시나요?


우리는 아무 의미도, 목적도 없이 이 세계에 그냥 내던져져 있다는 겁니다.


/


그러나, 선생.

그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죽음으로 내쫓기는 불안과 공포이며, 권태와 무력감이니까요!


음... 그래요. 사실 우리는 이런 존재론적 외로움에 대해 속수무책입니다.


외로움이 장전되어 있는 녹슨 총구는, 필경 어디를 향해있는지 아십니까?



보십쇼!

끝끝내 자신의 뇌리를 겨누고 있다고 하잖습니까!


/


외롭지 않기 위해 밥을 많이 먹고

괴롭지 않기 위해 술을 조금 마신 사람을 아십니까?

그 사람이 뭐라 했는지 선생은 아십니까?



온밤내 시계 소리만이 빈 방을 걸어 다녔다는 겁니다...

자신의 부재를 슬퍼하는 신발을 본 적 있느냐는 겁니다...


/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간혹 너무도 길고 지루한 밤에 일으킨 혁명 말입니다!

그런 혁명도 필요한 것 아닙니까, 예?


근데 그건 언제나 불발의 혁명이랍니다!


선생은 혁명을 위해 목숨 바친 그 순교자가 불쌍한가요, 아닌가요?


/


친애하는 선생, 사람들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사는지 아십니까?


그냥 다른 사람들과 휩쓸려 그들이 사는 대로 따라 살면서 그들과의 일체감을 형성하는 겁니다.

하이데거는 이걸 '편안한 자신감과 자명한 느긋함'을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다른 사람도 다 그런대!"

그게 뭐 어쨌단 말입니까!

다른 사람이 뭘 어쨌단 말입니까!


/


프롬도 소환할까요?

아니, 듣고 계십니까?



우린 말이죠

획일화되기를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치되기를 원해서 그런 겁니다.


자유로부터 도피하지 마십쇼.


/


그래서 반항이 필요한 겁니다.

자기 존재 의미에 대한 끈질긴 탐구가 필요한 거지요.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려는 단호한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외로움을 환대하십쇼!

그것을 통해서만 본래적 자기를 찾아 삶을 의미 있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

기억하십쇼 선생.


고독을 빼앗기면

물을 빼앗긴 물고기처럼 되는 겁니다.


외로우니까 사람인 것이 아니고, 외로워야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야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죠.


아시겠습니까?








<참고문헌>

표도르 도스또예프스끼, 『죄와 벌 (상)』, 홍대화 옮김, 열린책들, 2009.

김용규,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 웅진지식하우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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