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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Mar 06. 2022

푸틴의 인성(人性)

독재자의 전쟁

세계인이 알고 있듯이 블라디미르 푸틴은 러시아 정보국 KGB 국장을 지내고 러시아 정계로 입문해 많은 요직을 거치며 오늘에 이른 러시아의 독재자이다.

크림반도 합병 이후 세계의 비난과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있었으나 푸틴의 행보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주범으로까지 오고야 말았다.

푸틴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상이군인의 아들로 푸틴의 할아버지는 블라디미르 레닌과 이오시프 스탈린 시절 요리사였고 푸틴의 아버지는 소련 해군에 징집되어 잠수함에 근무하다 소련 육군으로 전임된 후 독소전쟁에 참전해 한쪽 팔이 절단된 상이군인이었다.
청소년기의 푸틴은 본인도 인정한 싸움을 잘하던 비행청소년이었고 학교생활도 순탄치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학창 시절 유도에 매진하며 학교생활을 이어갔고 대학생 때에는 유도 지도자 자격을 취득할 정도로 실력을 갖추고 지방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KGB에 들어가 독일에 파견된 푸틴은 그곳에서 동독의 붕괴를 직접 목격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후 시청에서 보리스 엘친의 절친이었던 아나톨리 소브차크 시장의 보좌관으로 재직한다.

당시 소련은 고르바초프가 좌익, 우익의 반체제 인사들을 포용하며 개혁개방을 이어가지만 보수파 중심으로 고르바초프를 강제로 별장에 연금시키면서 쿠데타가 일어난다.

이후 쿠데타는 제압되고 우익진영의 친에 의해 소련은 해체되는 과정을 겪는다.

푸틴은 소브차크 시장 밑에서 부시장으로 일하지만 소브차크 시장이 95년 선거에서 패배하자 푸틴도 함께 부시장 자리에서 물러난다.

이후 엘친 선거캠프에서 일하다 친의 선거가 성공한 후 친의 측근으로 활동하며 KGB 국장, 러시아 연방보안국 장관, 대통령 행정실 총무실장, 내무담당 수석보좌관 등 다수의 요직을 거치고 1999년 8월 보리스 친에게 총리로 발탁된다.

그러나 푸틴이 총리로 임명될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푸틴이 누구인지 조차 알지 못했고 푸틴 총리의 지지율은 1999년 9월 1.7% 밖에 되지 않았다.

그 해 9월 러시아 도심 곳곳에서 발생하는 체첸의 테러 행위에 국민들이 공포를 느끼고 있을 당시 푸틴 총리는 체첸에 군대를 몰고 들어가 체첸 군을 몰살시키고 체첸을 러시아로 합병시키는 업적을 세운다.

체첸은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러시아에 대한 강한 저항을 외치며 테러 또한 서슴지 않았던 러시아의 암적인 존재였으나 푸틴의 군사작전으로 국민의 강한 지지를 얻었고 푸틴을 러시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푸틴은 계속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며  차기 권력을 확보하게 된다.

보리스 친의 건강이 악화되자 푸틴은 대통령 권한을 대행했으며 엘친은 푸틴을 차기 대통령으로 지명하고 권좌에서 물러난다.

보리스 엘친의 후원에 힘입어 블라디미르 푸틴은 2000년 3월 대선에서 52.9%의 득표율로 승리를 하고 정식으로 대통령직에 오른다.

그 후 2004년 대선에서 인권탄압, 언론통제와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재선에 성공한 푸틴은 헌법상의 문제로 2선 이상의 장기집권이 불가능하자 대통령직에 집권여당의 중견 인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대통령 자리에 앉히고 자신은 총리로 재임한다.

그러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는 상트페테부르크 대학 후배였고 푸틴이 대통령 자리를 3선 금지법으로 비운 사이 잠시 대통령직을 지키고 있었던 실제 푸틴의 하수인이었다.

메드베데프의 임기가 끝나고 다시 세 번째 집권에 성공한 푸틴은 3기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4기 취임을 이틀 앞둔 2018년 5월 5일 푸틴 취임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자 자국민 1600여 명을 연행하는 독재자의 모습을 보이면서 자신의 권위를 드러낸다.

이로써 푸틴이 2024년까지 네 번의 임기를 모두 마친다면 무려 24년간 장기 집권하는 스탈린 이후 최장기 정권이 된다.

그러나 푸틴의 집권에 대한 욕망은 끝나지 않고 2020년 7월 투표절차를 황당하게 바꾼 국민 투표를 통해 2024년 4기 집권 이후에도 장기 집권이 가능한 헌법 개정으로 2036년 84세까지 대통령이 가능할 수 있게 헌법을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러시아 대다수 국민의 대통령에 대한 정서는 다른 나라의 국민들과 달리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일지라도 국왕으로서의 존엄이 존재하고 과거에 비해 성장한 러시아의 경제 상승이 푸틴의 장기 집권이 가능한 가장 큰 이유이다.

푸틴은 결국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지만 이번 전쟁의 결과에 따라 푸틴의 장기 집권의 향방이 갈릴 수 있는 푸틴 정치생명의 위기이기도 하다.

베이징 올림픽 이전 푸틴과 시진핑이 만난 자리에서 시진핑이 처음으로 나토의 확장은 막아야 한다는 언급을 하며 푸틴과 뜻을 함께 하기도 했지만 세계의 시각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신 냉전의 시기로 국제정세가 긴장상태로 변하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과거 역사에 기록된 독재자들의 특징을 볼 때 정권을 잡은 독재자가 장기집권을 성공적으로 유지하게 되면 자기애에 스스로 도취하는 극심한 나르시즘에 빠지고 자신이 아니면 이 나라가 유지될 수 없다는 망상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자신의 모든 불법적인 정책과 개인적 행위도 국가를 위한 합리화로 귀결시키는 특성이 있는데 때로는 목적을 위해서는 살인도 정당한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푸틴의 경우 불우했던 어린 시절 잘못 형성된 반항적인 그의 인성에도 원인을 찾을 수 있고 험난한 격변의 정치, 군사적 환경에서 정상적이지 않은 불법 행적들이 반복되는 시간 속에 독재의 광기가 자연스럽게 익숙해진 까닭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거대한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전쟁을 일으키고 군인이던 민간인이던 수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독재자의 심리는 정상적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하고 예측 또한 할 수 없는 것이며 전쟁은 어떤 경우, 어떤 사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는 영원히 종식되어야 하는 지구 상의 가장 큰 악행일 뿐이다.


사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예전부터 계획된 전쟁이었다는 예측과 함께 우크라이나 국경의 긴장은 고조되었고 조 바이든 대통령의 확신도 있었지만 요즘 같은 현대 글로벌 시대에 실제로 푸틴이 전면 전쟁을 감행하리라는 여론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조성되지 않았다.

세계의 경찰 역할을 지속해 오던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 임기 중에 우크라이나 문제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고 돈바스 내전, 크림 반도 합병 때에도 선진국 정상들과 공통된 반대만 했을 뿐 미국 정부의 특별한 정치적, 군사적 움직임은 없었다.

14~15세기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을 겪으며 1787년 러시아의 승리 이후 크림반도는 러시아에 완전히 병합되었던 영토였지만 소비에트 연방이 수립될 무렵 보리스 엘친 러시아 대통령과 레오니드 쿠치마 우크라이나 대통령, 알렉산드로 루카센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1991년 12월 벨라베자 조약을 통해 자치국들이 독립을 하자는데 합의를 하며 크리미아 반도가 러시아에 귀속된 것이다

크림반도는 동토의 땅 러시아 지역에서 유일하게 겨울에도 얼지 않는 항구가 있고 흑해를 통해 지중해와 대서양으로 가는 길목으로 군사적으로 러시아에게 매우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이다. 

그러한 중대한 이유 때문에 엘친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인정하면서 9,700만 달러의 임대료를 주고 1997년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에 주둔하기로 계약을 하며 러시아, 우크라이나는 동반자 조약을 맺는다.

그 당시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의 경제는 GDP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경제가 낙후되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국가의 분개선 자체가 문제가 되지 않았고 먹고사는 게 그 지역 나라들의 가장 큰 현안이었으므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물론 서방 국가들도 국경선에 관심조차 없었다.

그러나 2000년대에 이르러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들의 경제가 성장하자 자국의 정체성에 대한 우크라이나 정치권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고 우크라이나의 3대 대통령 빅토르 유센코는 서방 자유진영의 입장에서 나토에 가입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러시아 푸틴의 입장에서는 역사적으로 원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영토였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는데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빅토르 유센코가 친 서방 정책을 펴고 나토에 가입하겠다는 입장표명을 하자 푸틴은 빅토르 유센코와 나토 가입국에 대한 분노가 끓기 시작했으며 우크라이나 정부를  여러 방면으로 압박하기 시작한다.

이후 빅토르 유센코 대통령에 이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오렌지 혁명이라는 우크라이나의 시위를 통해 러시아의 앞잡이, 부패의 상징이라는 비난을 받지만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이 된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친 러시아 정책을 펼치고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을 무기한 연기하자 2013년 야누코비치의 탄핵과 친 러시아 정책에 반대하는 유로마이단 시위가 일어났고 그 결과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결국 탄핵되고 러시아로 도피한다.

최근 뉴스에서 총을 들고 민병대와 거리로 나온 프로센코 대통령이 야누코비치의 뒤를 이어 취임하자 강력한 반 러시아 정책으로 러시아 언어, 러시아 방송, 러시아 교육을 금지하는 정책을 펼친다.

더 이상 참지 못한 푸틴은 2014년 무력으로 크림반도를 침입하고 러시아 합병과 우크라이나의 독립에 대한 국민의 찬반 투표를 하지만 역사적으로나 상식적으로 군인들이 무력으로 점령한 영토에서 실시한 찬반 투표가 96%가 넘는 합병 찬성의 투표 결과를 믿을 사람도 없거니와 세계 정상들의 입장에서는 푸틴의 침략 명분을 위한 부정 선거로 확신하기 때문에 UN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크림반도와 러시아 합병을 인정하는 나라는 없다.

그러나 당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크림반도의 러시아 합병에 대해 선진국 정상들과 꼭 같은 입장에서 비난과 경제적 제재에 동참한 것 외에 오바마 정부의 강력한 움직임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이 러시아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여론도 많았고 부시 대통령 임기 때처럼 불법적 침략과 전쟁에  대한 강력한 대응이 없었다는 비난도  많았다.

하지만 국가 간의 입장을 먼저 고려할 때 사실 미국뿐 아니라 유럽 연합(EU)의 선진국과 많은 UN 가입국도 자국의 국익에 막대한 피해가 없는 상황에서는 선뜻 남의 나라 전쟁에는 나서지 못하는 법이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유럽연합(EU)과 나토(NATO)에 가입이 안 된 나라이기 때문에 지원과 경제제재 외에 동맹국 입장으로 직접 전쟁에 개입하는 것은 어려운 현실이다.

어쩌면 러시아 푸틴의 입장에서는 크림반도 합병 당시 미국의 강력한 대응이 없었던 이유가 우크라이나 침략에 간접적인 영향이 있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유럽 국가들이 대량의 에너지 천연가스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도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푸틴은 클린턴 대통령 임기 중에는 친미 성향이 강한 인물이었지만 두 번째 임기부터 미국과 서방 유럽국과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는데 고르바초프 임기 당시 유럽은 나토의 세력이 동쪽 러시아로 진입은 없을  것이라는 약속을 했지만 유럽 나토의 영향력이 증가하면서 과거 친 러시아 정책을 따르던 동유럽 국가들도 나토에 가입하기 시작하자 당연히 위기감을 느낀 푸틴은 우크라이나 서쪽에서 유럽의 세력이 확대되는 것을 지속적으로 미국과 나토의 계약위반으로 주장해 왔다.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 1990년에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4개국 정상이 모여 독일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미국과 각국 정상은 나토가 러시아 국경 근처로 동진하지 않을 것이란 약속을 구두로 한 것은 사실이지만 서류상의 문서는 없었다.

푸틴은 현재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을 미국과 유럽 나토의 팽창으로 몰아가고 있으며 미국과 나토의 입장은 계약도 안 했고 서류도 없는 논의가 계약위반은 절대 아니며 나토에 가입하는 국가들을 미국과 나토 가입국은 반대할 이유는 없다는 대립이 지속되어 왔다.

분석은 많아도 독재자 푸틴의 정치적 의도를 짐작은 하지만 절대 독재자의 속내를 알 수는 없는 법이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은 지속될 전망이며 러시아의 공격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저항이 예상 밖이고 막강한 러시아의 공군력도 우크라이나의 영공은 장악하지 못한 상태이다.

세계의 비난이 러시아로 집중되고 있는 현실에서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는 최고의 수준으로 강화되었으며 13만 명이 넘는 외국 국민들이 우크라이나 의용군에 지원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평화에 대한 염원은 국경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경제와 자본으로 전쟁하는 이 시대에 설마 무력 전쟁이야 있겠냐고 예상 못했던 국가들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지금, 인류의 가장 잔인한 참상인 전쟁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기 위해 전 인류가 뜻을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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