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발전하고 국민들의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 스포츠에 열광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잦아들기 마련이고 20년 전 붉은 악마의 물결이 세상을 놀라게 했을 때와는 많이 달라진 현상이다.
예나 지금이나 문화란 경제와 맥박을 함께 하기 때문에 문화 수준의 향상은 다양한 선택을 부여하고 먹고사는 것 이외의 한 차원 높은 대상에 관심을 갖게 된다.
문화 수준의 상승은 교육이 없다면 불가능하고 문화의 질이 향상은 경제적 안정이 선행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의 취향은 높아지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발소에 머리를 손질하러 가면 열띤 정치적 토론이 오고 갔고 택시를 타도 정치 얘기는 항상 기사님들의 공통된 화제였다.
한정된 TV 채널의 공영 방송이 대중문화를 주도했고 베스트셀러 소설이 문학의 주류를 형성했던 시절은 바로 우리 부모님의 시대였다.
우리나라도 경제 서열 11위에 오르면서 사회의 관심이 많은 분야에서 달라졌으며 사람들 대화의 화제도 많이 달라졌다.
이런 현상은 GNP의 상승과 비례하는 것이며 한 나라의 GNP는 그 나라의 문화 수준과 직결되는 것으로 사회의 관심이 편향적이지 않은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획일화된 환경에서 살지만 취향은 다양해졌다는 뜻이며 각자 추구하는 가치도 성장했다는 의미이다.
여러 분야의 다양한 성장은 경제적 문화적 관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일이지만 주목해야 할 사안은 한국처럼 유행에 민감한 정서는 쉽게 편향되고 그릇된 문화를 전파할 수 있다는 것으로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이른바 핫하다는 장르가 화제가 되면 뜨거워진 열기는 유행의 기류를 형성하고 그 유행이 길어지면 곧바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문제는 유행하는 문화가 부정적일수록 파급력이 더욱 증가한다는 사실이며 이것은 자극적일수록 사회적 관심이 급증하는 것과 동일한 현상이고 여기에 매스컴의 영향이 작용하면 그 파급 효과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기류가 긍정적이고 생산적이라면 문화와 사회는 성장하지만 반대로 부정적 물결이 범람을 하면 긍정의 가치는 부정의 물결에 쉽게 수몰될 위험이 있다.
이런 유행은 많은 사람들의 취향과 연결되는 것이며 공통된 취향이 증가하면 곧바로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쉽게 볼 수 있는 유행이라면 흥행작 영화의 주인공이 입은 패션은 금방 핫한 패션으로 부각되고 며칠 후 거리에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유행하면 대기업이 꼭 같은 옷을 대량 생산하고 핫하다는 스타의 광고와 결합할 때 곧바로 새로운 유행이 탄생하는 것이고 그 유행의 수명이 길어지면 문화로 자리를 잡는다.
우려해야 할 문제는 이와 같은 전파력이 강한 유행이 일부의 현상이라면 관계된 산업에만 영향을 미치지만 정치적 사상적 관점의 화제는 쉽게 점화되어 발화될 가능성이 있고 특히 정치적 문제가 뜨거워지면 과열된 열기는 대중을 현혹시키는 특성이 있다.
특히 정치적 이슈가 포장이 되어 설득력을 얻게 되면 사회의 단면이 전체를 대변하는 오류를 낳고 기존의 질서가 흔들리고 부정이 긍정으로 둔갑하는 모순에 빠질 위험이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양극화된 분열은 이처럼 사상으로 무장한 세력들이 만든 결과이며 이미 깊게 파인 갈등의 골은 많은 시간이 걸려도 회복하기 힘들다.
니체는 정치는 권력의 흥정이며 그 흥정의 이익에 현혹된 대다수를 파리 떼에 비교했고 지혜가 있는 자들은 파리 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침묵을 지키라고 강조했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나 오랜 역사와 시행착오를 통해 이룩한 질서와 규범이 존재하고 사회의 구성원들의 저마다의 위치에서 생산하는 다양한 가치가 사회를 성장시키는 법이다.
그릇된 문화가 유행하면 대중은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그 유행을 따르지만 유행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는 능력은 그 유행의 물결 속에 가라앉고 곧바로 부정적 측면이 일반화되면 그릇된 문화도 시대의 특성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즉 다수의 문화가 비록 잘못된 것이어도 매스컴의 조명으로 비치면 어두운 부분은 보이지 않고 긍정과 부정이 계속해서 공존하는 사회를 조장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
우려해야 할 사실은 이러한 공존은 사회 모든 분야에 적용되고 확대되기 때문에 일부의 주장이 파급력을 얻으면 사회의 단면이 전체의 목소리로 들릴 수 있는 인지적 오류를 낳게 되는 것이다.
문화란 사회적 논란도 흡수하는 것이며 보편, 타당하지 않은 것도 시대적 특성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수 있는 힘이 있다.
먹고 또 먹는 몰상식한 먹방이 이제는 어색하지 않은 방송 프로그램이 되었고 트로트의 열풍은 음악의 모든 장르를 무너트렸다.
데모 현장에서 선동을 일삼던 코미디언의 목소리가 고액의 출연료를 받는 인문학 강의로 둔갑했고 클래식 음악가는 연주할 무대가 없다.
다양한 문화가 장르 별로 사랑받기 보다 이윤이 있는 분야에 매스미디어가 볼륨을 높이면 곧바로 새로운 유행이 출현하고 유행은 자본의 관리를 받으며 긴 수명을 얻고 성장하는 것이 오늘날의 문화이다.
문화는 시대의 특성을 여과 없이 반영하기 때문에 정치가 어수선하면 주소 없는 문화가 등장하고 경제가 어려우면 저렴한 문화가 유행을 한다.
다시 말해 현시대는 굳이 긍정과 부정을 가릴 필요 없는 문화의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한 것으로 개성과 자유는 사회가 용인하는 범위 안에서 용인돼야 하지만 현대의 개성은 사회의 시선을 외면한지 이미 오래되었다.
컴퓨터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은 인터넷이 문화를 주도하고 대변하는 시대가 되었고 인류는 이제 컴퓨터의 노예로 인터넷과 매스미디어의 명령대로 살고 있다.
특히 인터넷의 영향은 우리라는 공동체를 불필요한 존재로 만들었고 획일화된 세상 속에 획일화된 가치를 추구하며 바쁜 일상을 경쟁하며 살고 있다.
돈으로 거래되는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돈으로 거래되는 예술을 사고 음악적 가치는 단지 입장권 티켓이 비쌀수록 훌륭한 음악이며 유명인이 쓴 책은 무조건 베스트셀러가 되고 사람들은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만 본다.
스타가 좋아하는 음식은 비싸도 잘 팔리고 방송에 자주 출연하는 한의사가 파는 약은 만병통치약이다.
더 이상 문화는 즐기고 향유하는 개념이 아니라 따라가고 편승하는 것이 이 시대의 문화이며 새로운 문화가 등장할 때마다 거기에 합류하지 않으면 문화의 문외한이 되는 시대이다.
이것은 개성도 취향도 획일화된 현상을 말하는 것이며 자본이 주도하는 매스미디어의 유행에 적응하는 사람들만이 이 시대의 문화인으로 치부하고 있다.
익숙한 것은 수명이 짧고 새로운 것을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적응하기 무섭게 다시 새로운 것이 등장하는 문화를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진화라 일컫고 발전이라 말한다.
그러나 변화에 필요한 재화는 대중이 부담하지만 정작 문화의 변화에서 이윤을 얻는 이들은 다름 아닌 소수의 자본가이다.
문화의 변화는 자본가의 계획된 전략이고 변화된 문화에 적응하려면 새로운 도구가 필요한데 변화에 필요한 도구는 자본이 만든 상품이다.
결국 진화하고 발전한 세상은 첨단화된 시스템이며 편익이 제공하는 문화를 짧은 유행에 맞춰 즐기는 모습이 이 시대 문화의 현주소이다.
그러나 자본은 문화의 긍정과 부정적 영향은 절대 관심이 없고 자본이 만든 문화를 독려할 뿐이다.